[글쓰는 사람들(7)] 레드(Red)처럼 강한 내 친구, 니콜렛
그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허리를 다쳤다며 나를 찾아왔다. 키는 작았지만 다부지게 생긴 모습에서 강렬함이 전해져 왔다. 온천 모텔을 운영한다는 그는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면 일어나 모텔 일을 본 뒤 헬스장에서 땀을 흘렸다.
그는 쾌활하고 밝은 성격을 지녔다. 언젠가 내게 물었다. ‘이름을 왜 메이(May)로 지었느냐’고. ‘5월의 신부’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는 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달이고, 또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에 태어나서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그러자 태어난 날이 며칠이냐고 물었다. 3일이라 답했다. 그 뒤 그는 한 번도 내 생일을 잊은 적이 없다. 진료 중일 때는 잠시 들러서, 자리에 없을 때는 문 앞에 예쁜 카드와 함께 선물을 두고 갔다.
2013년 어느 날, 그가 허리가 아프다며 오랜만에 진료실을 찾아 왔다. 얼굴은 아주 수척해 보였고, 예전에 탄력 있던 애플 힙(Apple hip)은 오간 데 없이 늘어진 살 속에 뼈가 만져질 정도였다. 내가 치료를 하는 동안 그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의사에게 내가 당신 미쳤냐고 했어. 글쎄 내가 두세 달 밖에 못 산다고 하잖아. 폐암 말기라나. 농담하지 말라고 하고 왔어. 내 평생 심한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고 날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데, 내가 암이라니. 정말 웃기지 않니?”
치료하다 말고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망부석이 되어 자기를 쳐다보는 내게 “메이야, 난 괜찮아. 암? 나랑 싸워 못 이겨. 내가 얼마나 강한데”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는 강했다. 3개월 시한부라고 못 박은 의사에게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스피드광인 그는 오토매틱 차를 거부한다. 수동 무스탕(Mustang) 차가 뉴질랜드에는 없어 미국에 주문할 때도 빨간색을 골랐다. 한번은 빨간 머리를 하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쇼핑할 때 빨간색 물건이 보이면 일단 그 앞에 선다. 옷이든 신발이든 부엌용품이든 뭐든. 한국에 주문해 받은 빨간 핸드폰 지갑을 내게 보여주면서 소리를 지르며 얼굴에 뽀뽀세례를 퍼부은 기억이 있다.
2년 전 한국 방문에 그와 함께했다. 암이 진행되고 있어 동행을 만류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이태원에서 무릎까지 오는 빨간 롱부츠를 찾아야 한다며 날 데리고 두세 시간을 다녔다. 나는 그와 환자로 만난 관계라 그때까지 진료실 밖에서는 차 한 잔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름 동안 24시간 함께 지내면서 절친이 되었다. 그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어디에 가나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그의 쾌활한 웃음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You are the happy virus.”(너는 행복을 전염시켜 주는 사람이야.)
한국에 머무는 동안 목욕탕에 가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전신을 드러내야 하는 목욕탕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줌마들 사이에서 물속 운동을 따라 하며 즐거워했다. 나만큼이나 물을 좋아하고, 김치를 즐겨 먹는다.
한 달 전, 그가 전화를 걸었다. 시간을 내 와 달라고 부탁했다. 64병동 4호실. 폐암이 전이되어 뇌로 퍼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는 하얀 침대 시트 대신 빨간색 담요를 덮고 있었다. 슬픔에 젖어 있는 내게 “괜찮아, 정말 괜찮아”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사이 우리는 오클랜드 랜턴 페스티벌(등불 축제)에 함께 했다. 음력 설을 맞아 중국인 단체에서 주최하는 축제다. 나는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등불 축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를 위해 휠체어 초보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왕관 모양의 머리띠를, 난 리본 모양의 머리띠를 하나씩 사서 쓰고는 동심의 세계로 향했다. 오르막이 있는 곳을 따라 끌어야 하는 휠체어 운전은 쉽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녀야 하는 내내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그가 나를 보며 한마디 한다.
“메이, 나랑 자리 바꾸자. 네가 여기에 앉아야 할 것 같아. 에너지가 하나도 남지 않은 얼굴이야. 내가 밀어줄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들켜버렸다. 다시 힘을 내 꿋꿋이 “익스큐즈 미’(Excuse me.)를 연발하며 사람들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
7년 동안 해마다 생일을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던 고마움을 이젠 내가 돌려줄 차례다. 뜸을 떠주고 지압을 해주는 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다지만 말이다.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그는 내가 눈물을 글썽일 때마다 웃으며 이렇게 지청구를 놓았다.
“그 슬픔의 에너지가 내게 전해지면 하나도 좋을 게 없어. 네 눈물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잠시 멈추세요. 그리고 깊게 다시 내쉬세요. 자~ 다시 한번 더. 기분이 한결 좋아지죠. 목소리가 처음보다 나아졌어요. 이제 언니에게 가서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전화로 호흡법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엄마를 챙기는 착한 딸, 역시 해피 바이러스 니콜렛이다.
요즘 나는 쇼핑몰에 가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자주 두리번거리곤 한다. 빨간색은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아 좋아한다는 니콜렛의 말처럼 그에게 줄 빨간 색의 무엇이 없나 하며 찾는다. 행운의 여신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
필명: 메이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