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18) 반딧불, 마음에 새기다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18) 반딧불, 마음에 새기다

일요시사 0 1568

<사진: 김인식> 

 

경치가 좋은 곳에 가면 아이들은 자기들 사진을 꼭 아빠에게 부탁한다. 엄마보다 아빠가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알량한 자존심에 삐치기도 하지만 귀찮지 않아 좋다. 연예인 모양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는 아이들을 남편이 쩔쩔매며 찍을 때 나는 그저 주위를 맴돈다. 풍경을 마음에 새긴다. 팔뚝 위 솜털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숨도 깊게 들여 마신다. 하늘에 있는 구름을 후루룩 들여 마시고 싶다. 달콤할 것 같다.

 

스마트폰이 나의 삶을 아주 많이 변화시켰다. 사진 찍기도 예외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사고도 처음에는 사진 찍기 기능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사진을 잘 못 찍는다고 세뇌되어 있어서 엄두도 못 냈고 무엇보다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하는 일이 바뀌면서 보고서에 행사 사진을 첨부해야만 했다. 보고서를 좀 더 모양새 나게 하고 싶은 욕심에 사진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남들이 찍은 사진도 주의 깊게 보고 흉내도 내보았다. 그러면서 재미를 붙였다.

 

요새는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스마트폰부터 꺼내 든다. 내 취향이 아니어도 주위 사람들이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찍으면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바심에 나도 한몫 낀다. 정신없이 찍어대는 순간에는 찍는 사람과 찍히는 대상만이 존재한다. 내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름값 하는 똑똑한 스마트폰이 알아서 시간과 장소별로 사진을 저장해 놓는다. 스마트폰이 내 기억을 가지고 있고 나는 실제 기억을 조금씩 잃어버린다.

 

최근에 케임브리지 근처의 핀레이 공원 모험 캠프장(Finlay Park Adventure Camp)에 갔다. 프로그램 중에 반딧불 탐험이 있었다. 나는 반딧불 탐험은 와이토모 동굴(Waitomo Glow Worm Caves)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오래돼서 기억도 많이 희미해졌지만 굳이 또 구경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사실 우리 식구들은 캠프에 하루 늦게 합류했다. 그 전날 미리 반딧불 탐험을 다녀온 중국 친구 부부에게 물어보았다. 영어로 길게 설명하는데 그 영어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강추(강력 추천)’였다.

 

행사를 주관하는 제이미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8시 30분, 9시 30분에 각각 35명씩 떠나는데 벌써 자리가 다 찼다고 한다.

“역시 사람들이 좋은 것은 귀신같이 아네.”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인맥으로 주최 측에 압력을 넣었다. 사실은 압력이라기보다 간청이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갈 유학생을 팔았다. 한국에 가기 전에 꼭 반딧불을 보고 싶어 한다고.

결국, 배 하나를 더 띄우기로 했다. 자정에 가까운 10시 30분. 구명조끼를 어른, 아이, 대, 중, 소로 나누어 각자 골라 입었다. 참하게 생긴 키위 아가씨는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앞섶을 당겨 보면서 몸 크기에 맞는 조끼를 입었는지 확인했다. ‘오케이’가 떨어지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바꾸어 입어야 했다.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면서 번거롭게 여겨졌다.  ‘달밤에 체조하고 있네. 가서 과연 뭘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반딧불 탐험을 위해 만든 배에 사람이 올라탔다. 한 치 코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을 선장 아가씨가 능숙하게 배를 운전해서 간다. 길을 완전히 익힌 모양이다. 배의 앞쪽 난간만이 형광으로 어둠에서 빛을 발한다. 

 

영어로 긴 설명이 이어진다. 적당히 알아듣고 적당한 분량의 영어는 귓등으로 넘어간다. 피곤하니 귓등으로 넘어가는 영어의 분량이 점점 많아진다. 그중에 귀를 파고드는 이야기. ‘스마트폰으로 반딧불을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제 사진에 담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왠지 마음이 급해진다.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날은 흐려서 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그 많은 별이 배가 지나가는 강가 좌우로 살포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땅에 정을 붙이려고 하는 동양 여자에게 반딧불은 고향의 수천 개의 별을 연상시켰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는 반딧불을 ‘물에 반영된 빛들(Titiwai)’라고 부른다. 어떤 표현이 더 어울릴지는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아가씨 선장님의 영어 설명이 이어진다. 반딧불이 빛나는 것은 먹이를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손전등으로 비추는 반딧불 밑으로 낚싯줄 같은 줄이 늘어져 있다. 유혹에 빠진 작은 벌레들은 이 끈끈한 실에 걸려든다. 내가 본 가느다란 실에는 물방울들이 잡혀있었다. 큰 물방울 하나, 그다음에 작은 물방울 하나, 그리고 중간 크기의 물방울 세 개.   이 물방울들이 차갑고 축축한 공기 안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보다 더 풍부한 기억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더 늘리고 싶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 아름다운 사물들 앞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숨이 차도록 사진을 찍어 스마트폰에 저장하기보다 그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이야기를 걸고 싶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글_아보카도 나무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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