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31) 내 마음의 오륙도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31) 내 마음의 오륙도

일요시사 0 3408

<사진: 김인식>  

 

 “앞에 보이는 것은 요술의 섬입니다. 어떤 때는 다섯 개로 보였다 어떤 때는 여섯 개로 보입니다. 착한 사람은 여섯 개가, 마음이 나쁜 사람은 다섯 개로 보입니다. 사실은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됩니다. 자~ 이제 섬 앞을 지나갑니다. 아이를 원하시는 분은 저 섬을 지날 때 기도를 하시면 아들을 점지해 줄 겁니다.” 

 부산 광안리 선착장에서 출발해 오륙도로 향하는 유람선에서는 앳된 16세 소녀의 목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진다.

 “그냥 드가라! 낮에 내한테 맛있는 거 마이 줬다 아이가.”

 텔레비전 드라마 ‘여로’를 보기 위해 저녁 6시가 되면 주인집 작은방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지금으로 치면 소규모 영화관이라고 해야 할까. 1972년, 텔레비전이 동네에 한두 집 있을 때다.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던 우리는 당연히 무료상영이 가능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인집 할아버지는 내게 중대한 임무를 주셨다. 여덟 살이었던 나는 영화관, 아니 영화방 앞에서 전대를 메고 영화비를 받아야 했다. 돈 5원을 내는 사람에게만 방에 들여보내 주는 문지기였다. 방안에 빈 곳이 없도록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차곡차곡 자리를 배정하는 것 역시 내가 하는 일이다. 친한 친구 한두 명 정도는 내 ‘빽’으로 무료도 가능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종종 내게 과자나 연필 같은 뇌물을 주기도 했다.

 한여름 밤의 작은방 안에는 땀 냄새와 발 냄새로 범벅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 한마디 없이 숨죽이며 ‘여로’를 감상한다. 어떡하든 빼곡히 방안을 메워야 한다는 주인집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모두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코에 세 번 바르는 이들이 많았다. 이것은 옛 어르신들이 다리가 저리면 사용하는 민간요법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면 누구나 다 한두 번은 코에 침을 바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른이 될 때까지 이 방법을 사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지 못할 치료 방법이지만 코에 침을 몇 번 바르면서 생각을 코에 집중하면 저린 발이 자연 치유가 되는 것에 유래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처한 나의 환경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경제적 관념이 저절로 배워진 것 같다. 오클랜드에서 토요 마켓이나 선데이 마켓을 가면 어린아이들이 옷가지나 손때가 묻은 장난감들을 가지고 나와 파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는 아이를 봐주는 아르바이트나 잔디를 깎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서로는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일이다. 여름이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출발하는 부산 오륙도 유람선은 성수기가 된다. 이웃에 사는 아저씨가 그 오륙도 유람선을 운영하는 선장이었다. 길에서 만난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배에서 방송하는 안내원이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방학이고 하니 이웃을 도와주라고 하는 바람에 난 한 달 동안 유람선 안내방송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선장 아저씨가 건네준 원고를 반쯤은 외워서 드디어 안내방송을 했다.

 곧 출발하니 빨리 선승하라며 발길을 재촉한다. 드디어 뱃고동 소리와 함께 유람선은 오륙도를 향한다. 오륙도가 가까워져 오면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된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오륙도’라는 시가 있다.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가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라

오늘은 빗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이렇게 조수간만의 차이로 보는 사람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어떨 때는 다섯 개, 어떨 때는 여섯 개로 보이기 때문에 오륙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오륙도는 조류의 흐름이 빨라 뱃길로 가기는 위험한 곳이라 옛날부터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은 기도로 바다신을 달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이야기는 선장 아저씨가 웃음을 주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조숙했다지만 앳된 소녀가 할 멘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선장 아저씨가 손에 쥐여준 내용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헛웃음이 난다.

 최근에는 이기대와 광안대교 같은 새롭게 만들어진 상징들에 밀린듯하지만 지금도 부산의 명물 중 하나로 오륙도 유람선이 있다. 친정인 부산을 방문할 때면 고층아파트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면 오륙도로 향하는 유람선이 보인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해운대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하는 경쾌한 노랫소리와 함께 각종 깃발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유람선에서는 걸쭉한 남자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하지만 내 눈에는 40년 전 두 갈래머리를 딴 소녀가 아직도 그곳에 있는 듯하다.

글_메이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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