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4)] 어린아이가 보는 눈과 생각
한 살 반 조셉의 사진사 입문 자세
“찍어요, 찰칵.”'
사진을 좋아하는 내게 첫 손자는 날 때부터 멋진 모델이었다. 2007년 7월 7일에 태어난 조셉(Joseph)은 첫돌이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카메라를 움켜쥐고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진지했다. 렌즈는 자신을 향하고, 위아래가 뒤집어져 있다. 두 손은 그럴싸하게 디지털카메라를 꽉 쥐고 있다. 눈은 카메라 위로 모델을 응시한다.
렌즈가 자기를 향한 건 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을 때 본 카메라를 그대로 내게로 당겨서 그런 것 같다. 디카의 위아래가 뒤집힌 것은 놓여 있는 대로 들다 보니 그렇게 잡힌 게 아닌가 싶다. 뷰파인더(view finder)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찍고 싶은 것을 카메라 위로 뚫어지게 바라본다. 본 대로 해본다.
둘째 손자 조슈아(Joshua)는 2010년 4월 1일에 태어났다. 조슈아가 여섯 살 반이 되던2년 전 말 아이는 내 침대에서 서 있는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다가 들고 있던 흰 종이에 내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멋지게 그려주렴.”
조슈아는 얼굴 윤곽선을 잡은 뒤 눈과 코, 입과 머리카락을 그렸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얼굴은 턱부위가 넓고 눈과 머리 부분은 아주 조그만 게 삼각형에 가까운 타원 모양이다. 코는 아주 작지만 뚜렷한 두 개의 콧구멍을 갖추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슈아가 그린 얼굴은 광각 렌즈 카메라로 찍은 모습이다.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넓게, 멀리 있는 것은 아주 조그맣게. 왜곡된 광각사진 그대로다. 어떻게 ‘보이는대로 그대로’ 그리지?
아차, 그게 맞는 거야!. 그런데 왜 나는 얼굴이 달걀 모양이고 눈 코 입은 증명사진에 있는 대로 그리는 걸까? 이미 오래전에 얼굴은 그렇게 생긴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앞에서 본 얼굴은 그렇게 그려야 한다고. 그러니 사람 얼굴을 가까이 바로 밑에서 올려다본 모습은 조슈아가 그린 삼각형 광각 사진 모습이 맞는 거다. 아이의 눈에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는구나. 자신이 그린 그림을 쳐다보는 할아버지에게 조슈아는 그 그림이 잘 못 그려졌으니 달라는 몸짓을 한다. 금방이라도 찢어버릴 기세다.
여섯 살 반 조슈아가 그린 할아버지
“아냐, 아주 잘 그린 그림이야. 할아버지는 이 그림이 참 좋아.”
그리곤 혼자 생각해 본다. 왜 내게는 그런 고정관념이 생겼지?
며칠 후 조슈아는 할아버지에게 불쑥 이렇게 물었다.
“할아버지…. 다이(die)할 때까지 하우 롱(How long) 남았어?”
여섯 살 반인 손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세상 떠날 때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이 아이는 할아버지가 언제 죽을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난 언제까지 살 수 있지?’ ‘오래 사는 게 좋은 건가?’
손자가 “~ 하우 롱 남았어?"라고 물은 다음 날 손자에게 되물었다.
“너 어제 할아버지한테 ‘다이 할 때까지 하우 롱 남았느냐’고 했는데 왜 그런 걸 물었니?”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할아버지가 좋은데…. 올드(old)하면 씨크(sick)하고, 씨크하면 다이(die)할 거고, 다이하면 새드(sad)할 거라서….”
할아버지가 좋은 데 나이 들면 아플 거고, 아프면 죽을 거고, 죽으면 슬플 거라고?
‘어떻게 여섯 살 반짜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그걸 돌직구로 물어보나?’ 하는 기특해 보이기까지 하는 손자의 말에 혼자 생각에 잠긴다.
내가 남은 시간 동안 손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글_김인식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