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21) 착한 거짓말
<사진: 김인식>
글_정인화
글쓰기 모임에 나간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사이 글 쓰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지금은 지도를 해주시는 P 선생과 네 명의 학생이 서로의 글을 놓고 토론한다.
처음에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은 줄어들고 잘 쓴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구만 늘었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관해 글 쓰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 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좋은 말을 던지기도 한다. “M 선생님, 오늘 글은 참 잘 나가요. 막히는 데 없이 술술 읽히네요. 아니 어쩜 그렇게 빨리 늘어요?”라고 말이다.
예전에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할 때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것을 감추고자 내가 말하려고 하는 요점을 강조하며 더 세세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까 표정을 하나도 안 바꾸고 상대방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과장되게 칭찬하는 경우가 늘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금의 거짓말을 악의 없이 보태는 것이니까 사실 부끄럽지도 않았었다.
7월 초 모임 때에 P 선생이 O 선생을 모셔왔다. O 선생은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 오신 분이다. 그는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산 지식을 글 쓰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이 분은 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글에 대한 재주도 없으면서 노력도 안 하는 나를 속으로 힐난하고 있는데 K 선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O 작가님, 제 글 좀 봐 주세요?” 하면서 자기가 써 온 글을 읽기 시작한다. 한참을 읽다가 K 선생이 “제 글이 어때요?'라고 물어본다. O 선생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건 보고서에요.”라고 답한다. 그 순간 우리 다섯 명은 다 같이 큰소리로 웃었다.
영어로 ‘white lie’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 ‘악의 없는 거짓말’ 또는 ‘선의의 거짓말’로 번역되지만, 나는 ‘착한 거짓말’로 생각한다. O 선생이 K 선생의 글을 들으면서 그냥 편하게 ‘잘 쓰셨네요’라고 착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K 선생이 무엇을 듣기 원했든 간에 상관없이 보고서라 칭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당황스러워 크게 웃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거짓은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을 다치게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다시 쳐다봤다. 그가 가지고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정직하게 살기보다는 조그마한 거짓에 대해서는 모른 척 눈 감으면서 편하게 살라고 배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아갈 때는 조그만 거짓이 우리를 다치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또한 많은 사람이 거짓 없이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하기도 한다. 대세와 다르게 살 때 O 선생의 용기가 당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O 선생과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G 선생과 M 선생의 질문은 같이 있는 시간을 더 알차게 만든다. 이들과 같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게 내 느낌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고민한다. 어떤 이들은 거짓은 거짓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쁜 결과가 없거나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거짓이라도 괜찮다고 했다.
문화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착한 거짓말을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남을 해 하려는 의도가 없을 때는 ‘white lie’ 즉 선의의 거짓말도 괜찮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선의의 거짓말도 하다 보면 는다. 그러면 신뢰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 또는 누구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인가도 고려해 봐야 한다. 많은 경우에 내가 불편하니까 착한 거짓말이란 핑계로 불편한 순간을 피하려 하는 게 아니지 따져 봐야 한다.
‘제 글은 어떻게 보셨어요?’라고 물을까 하다가 입을 다문다. 아직은 내 글쓰기 능력에 대한 진실을 마주치기가 무서운가 보다. 다음에 O 선생을 만난다면 용감하게 물어봐야지.
“제 글에 대해 짤막하게 논평 좀 해주세요.”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