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22) 내 여행의 끝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22) 내 여행의 끝

일요시사 0 2879

<사진: 김인식> 

 

 뉴질랜드에서 하는 직장 생활이 벌써 3년째다. 처음보다는 영어를 쓰는 직장 동료들과 아주 편해졌다.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갖는 모닝티(morning tea)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일하는 이들은 40대에서 60대 후반의 여성들이다. 나이가 이쯤 되면 영어를 쓰는 유럽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비슷하다. 이야기 주제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힘겹게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여행이다. 여행이 워낙 무난한 주제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휴가 때는 어디를 갔다 왔다, 다음 휴가 때는 어디 갈지를 예약했다, 기회가 되면 어디를 가고 싶다…. 이것이 대화 내용이 전부일 적도 있다. 이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여행 이야기는 듣기에 따라서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의 자랑질 같지만, 알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점심 먹으러 나가자고 하면 본인은 집에서 싸 온 샌드위치를 먹겠다고 한다. 여행을 가려고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한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값도 아낀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한다. 여행이 삶의 일부이다. 은퇴 후에 살던 집을 팔아서 전 세계 여행을 다녀오고 집을 렌트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사십이 다 되어 이민 온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집을 팔아 여행은 못 갈 것 같다.

 여행지도 다양하다. 동료가 말하는 오클랜드 주변의 아름다운 바닷가 이름은 마오리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이 그 말 같다. 들어도 기억을 못 한다. 주말이면 좀 더 멀리 웰링턴이나 남섬으로 훌쩍 떠났다가 온다. 장거리 여행으로는 당연히 유럽을 선호하는 것 같다. 프랑스, 이탈리아가 로망이다. 

 내 동료 페트리시아는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이탈리아어를 배운다. 사실 여행은 갔을 때 보다 가기 전에 계획하고 꿈꿀 때가 더 행복하다. 그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여행을 꿈꾸면서 일 년을 행복하게 보낸다.

 비가 많이 내리고 을씨년스러운 요새 같은 뉴질랜드 겨울에는 동남아 여행도 인기이다. 가격도 비교적 싸고 날씨도 따뜻해 좋은 도피처이다. 정원사인 친구는 겨울이면 한 달씩 베트남에 가서 산다. 겨울에는 어차피 일거리도 많이 없어 그렇게 즐긴다고 한다. 미리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고른다. 뉴질랜드 한 달 생활비에 조금만 더 보태면 겨울을 베트남에서 날 수가 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너도나도 여행을 하니 그 물결에 휩싸여서 나도 한동안 열심히 다녔다. 나는 트레킹(도보 여행)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해에는 일 년 내내 토요일마다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걸었다. 그 탄력을 받아서 뉴질랜드에서 자랑할만한 트레킹 코스인 나인 그레이트 워크(9 Great Walks)중에 4개를 돌았다.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 케플러 트랙(Kepler Track), 루트번 트랙(Routeburn Track), 아벨 타스만 코스트 트랙(Abel Tasman Coast Track)을 걸었다.

 케플러 트랙을 걸을 때는 센 바람에 균형을 잃어 산 정상 가까이에서 미끄러졌다. 동료가 얼른 붙잡아서 큰 사고를 겨우 면했다.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머지 코스를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걸어야 하는데 마음만 바쁘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을 다녀온 친구 이야기를 듣고 꼭 가보고 싶은 여행이 생겼다. 친구도 뉴질랜드 이민 온 지가 15년이 넘는다. 얼마 전에 홀로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 남도를 돌고 왔다. 원래는 중국여행을 계획했는데 어머니 체력이 따라 주질 못했다. 전에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던 지인이 조그마한 여행사를 한다. 그 사람이 여행 일정을 잡고 운전을 했다. 여자 3명이 움직이니 여행 일정도 여유 있게 어머니 좋아하시는 것 위주로 천천히 다녔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친구가 보기에는 비위생적으로 보이던 해수온천을 가장 좋아하셨다고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 나오는 음식도 두고두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는 호랑이띠이다. 지난해 말에 뵈었을 때만 해도 건강하셨다. 몇 달 전에 허리를 삐끗하시더니 계속 병원에 다니신다. 물리치료도 받고 침도 맞으시는데 회복 속도가 더디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전화로 상황을 들으니 답답하다. 사실 연말에 뉴질랜드로 모시고 와서 남섬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들도 함께 3대가 밀포드 사운드를 가려고 했다. 나 나름으로는 큰 결정이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나 혼자만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로 모시고 오는 것이 힘들면 연말에 한국에 나가야겠다. 그때 나도 친구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남도 여행을 하고 싶다. 

 이민 오기 전 바쁘게 사느라고 제대로 한국을 여행해 본 적이 없다. 수원에서 나고 자라서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다. 그때 만난 남편도 서울 남자. 시댁도 서울이다. 지방에 특별히 갈 이유도 없었고 여유는 더욱 없었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알게 된 키위 노부부가 있다. 한국 여행을 다녀와서 찍어온 남도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한국에도 저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좀 더 잘살아 보겠다고 다른 나라에 와서 둥지를 틀고 살지만, 항상 모국은 그리운 곳이다. 그곳에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전라도 밥상에는 반찬 수가 2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져 나온다. 그런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점심을 먹고 싶다. 물론 막걸리도 한잔 곁들여야지. 나는  우리 4남매 중 유독 아버지 식성을 닮았다. 깔끔한 맛보다 곰삭은 맛을 좋아한다. 술도 즐긴다. 싸한 홍어회를 안주로 해서 아버지와 막걸리 한 잔을 주고받고 싶다.  아마 나는 그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을 것이다. 더 이상 어디를 갈 필요가 있을까.

  글_아보카도 나무(필명)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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