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30) 또 하나의 꿈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30) 또 하나의 꿈 <글과 사진_김인식>

일요시사 0 2800

‘밝은 앞날을 향하여’ 

 

 

시간은 더디게 가는데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단순하고 지루한 하루하루인데 한 주일, 한 달, 한 해는 단위가 커질수록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다. 새천년이 온다고 지구가 들썩인 게 얼마 전이던가? 1~2년 전의 일 같은데 그새 2000년 새해맞이는 18년이 넘었다.

 

이민 올 때 내 나이 마흔넷, 느지막하게 왔다고 가는 곳마다 연장자 취급을 받았다. 가장 심하게 느낀 때가 영어 공부할 때다. 마누카우에 있는 한 대학의 이민자 영어 공부반에서 서른 명 남짓했던 학생 중 내 나이가 제일 많았다. 학부 과정을 공부하기 위한 영어 준비반이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사진학이나 관광 분야를 해 볼까 생각했었다. 사진을 하려면 작품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하고 뉴질랜드 사진 역사를 비롯한 이론과 실기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내게는 ‘하고 싶다는 생각’뿐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다.

 

당시 유망하다던 관광 분야를 해 보고 싶어 교수를 만났다. “나이가 많아서 너무 늦지 않았을까”하는 교수의 조언을 듣고 실망했다. 그런데 이틀 뒤 그분한테 전화가 왔다. 어제 웰링턴에 가서 관광 관계자 회의에 참석해보니 당신 같이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면서 받아 줄 테니 지원서를 내 보라고 한다.

 

다음 날 관광학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보았다. 18~19세 정도의 젊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일곱 명의 백인과 마오리 두 명 그리고 중동인 한 명이었고 여학생이 절반 정도였다. 빈 책상에 내 자신을 앉혀 보았다. 그 학생들 보다 스무 살 많은 머리 희끗희끗한 동양인.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끄럼을 많이 탔다. 두 살 위인 형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도 학교에 가겠다고 졸라대자 부모님은 이듬해에 학적부 생일을 여섯 달 앞당겨 친구들보다 한 살 빨리 학교에 보냈다. 체구는 조그맣고 성격은 조용한 나는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초등학교 2학년에 고향인 대구에서 서울로 전학을 했다. 새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또 시간이 필요했다. 촌놈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싫어했던 건 선생님으로부터 호명을 받아 책을 읽는 일이었다. 내 책 읽는 목소리가 벽에 반사되어 내 귀로 되돌아 들려올 때 현기증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크면서 두 가지 생각이 늘 있었다. 대인 공포증(?)으로 인한 두려움과 어떻게든 극복해야만 한다는 생각. 그래서 그런 기회를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어떻게 하면 다른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무섭지 않게 될 수 있을까를 늘 혼자 고민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 성격은 바뀔 줄 몰랐다. 키가 컸으면 좋겠다면서도 운동은 체육 시간에만 마지못해서 했다. 그것마저도 달리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날 보고 친구들이 놀려대서 더 고민에 빠졌다.

중3 때 별난 짝을 만났다. 집에서 라디오 가게를 하는 친구였는데 장난이 아주 심해 ‘잉크장사’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였다. 늘 손에 잉크를 묻히고 다녔다. ‘해리 포터’ 같이 생겼는데 어느 날은 안경을 잃어버렸다고 난리를 쳤다. 나는 속으로 ‘눈앞에 걸려 있는 안경을 왜 잃어버리지?’하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잉크장사와 짝을 하면서 일 년 동안 많이 바뀌었다. 내성적이던 성격이 함께 장난도 치고 방과 후에는 전차를 타고 가서 동대문시장이나 청계천 전자 재료상을 돌아다니며 지경을 넓히고 안 하던 짓도 해보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친구 따라 YMCA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새로운 사람과 알게 되는 것에 익숙해졌다. 군 복무를 하면서 또 다른 무리 속에서 그 환경에 어울리는 나 자신을 만드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이민 와서 여러 일을 했다. 법률사무소, 은행, 병원, NGO 모임 자원봉사와 상담. 취미로 해 온 사진 클럽 활동. 꾸준히 노력한 덕분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언젠가부터 대인 공포증이 없어졌다. 현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서도 될 수 있으면 한마디라도 더 거든다.

 

석 달 전부터 뉴질랜드사진협회에서 하는 ‘사진 심사위원’ 양성 코스를 밟고 있다. 협회에서 주관하는 워크숍을 마치고 키위 사진 심사위원 한 사람을 ‘멘토’로 배정받아 이론과 실습을 하며 지도를 받고 있다.

한 달 전에 소도시의 사진 클럽회원이 찍은 작품 수십 점을 택배로 받아 하나하나에 대한 심사평을 보냈다. 클럽 미팅 때 내 심사평을 사진 아래 붙여서 서로 읽어 보면서 각 사진에 대한 장단점을 회원들끼리 나눴다고 한다.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다음 달에는 또 다른 키위 사진 클럽에 가서 스무 명의 회원들 앞에서 심사 실습을 해야 한다. 역시 부족한 것은 영어와 키위 사회의 문화, 관습 및 이 나라의 새, 꽃, 명소 등 사진 모델 소재에 대한 이해다. 힘들고 떨리면서도 한 달 후의 모임이 기대된다.

 

사진의 장점은 동호인들과 서로 교류하면서 영감을 주고받고, 사진이라는 예술 안에서 나만의 세계에 매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있는 것 같다.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알려진 사진은 특히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아주 훌륭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갈 길은 멀지만, ‘사진 심사’라는 새로운 도전은 나 자신에게 건강 80세를 맞이할 수 있게 할 좋은 자극제라고 믿는다.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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