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33) 스마트폰보다는 엄마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33) 스마트폰보다는 엄마

일요시사 0 2986

<사진: 김인식> 

 

 

 매장 안의 음악이 경쾌하다. 마네킹에 걸린 원피스의 큼직한 빨간색 꽃무늬가 눈길을 끈다. 하늘하늘 한 옷감 재질이 몸매를 다 드러낸다. 키가 훌쩍 크고 피부도 우유 빛이면 잘 어울릴 것 같다. 짜리 몽땅하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나는 공짜로 줘도 못 입는다. 그림의 떡이다. 그래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봄은 봄인가 보다.

 나는 지금 시내 브리토마트에 새로 생긴 대형 옷 매장에 있다. 딸과 함께 윈도우 쇼핑 중이다. 며칠 날씨가 좋더니 오늘 아침에는 진눈깨비가 날린다. 뉴질랜드에 산 지 이십 년이 다되어도 이놈의 날씨는 적응이 안 된다. 그러면서 나이만 먹는 듯싶다.

 ‘하늘의 뜻을 안다’(知天命)는 나이가 되고부터 부쩍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 나이 드는 것이 무섭다. 이전에는 나이든 이에게 역할이 있었다. 젊은이에게 지혜를 전달해 주는 일이다. 요새는 나이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스마트폰이 다하는 것 같다. 지혜까지는 몰라도 지식, 정보는 스마트폰 안에 다 있다.

 예전에 스마트폰 없이 어떻게 살았나 싶다. 어제 저녁만 해도 냉장고에 돌아다니는 가지가 있어 반찬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전 같으면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을 것이다.

 “적당히 잘라서 볶다가 간장 적당히 넣고 깨소금, 참기름 넣어.”

 엄마의 ‘적당히 요리법’은 특별한 조리법은 아니어도 대충 감을 잡고 음식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억이 조금씩 살아난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스마트폰을 켜고 검색한다. ‘가지 볶음’ 네 글자를 치면 답이 나온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요리 연구가부터 초보 가정주부의 요리법 대여섯 개가 화면에 뜬다.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른다.

 아마 내 딸아이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스마트폰이 해 줄 수 없는 것을 딸아이에게 주려고 나왔다.

 

 딸아이는 대학을 가면서 시내로 독립해서 나왔다. 혼자서 씩씩하게 잘 살아간다. 물론 내가 가끔 해다 주는 밑반찬과 김치도 한 역할을 한다. 올해 대학을 졸업했다. 이곳 저곳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있다.

 나는 대학을 나오면 자동으로 취직되는 시절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취직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친구를 통해 들었을 때만 해도 남의 이야기였다. 한국도 아닌 뉴질랜드에서 딸아이 구직과정을 지켜보니 내 상상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 곳은 다 넣으라고 했다. 일단 사회에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연락이 잘 오질 않는다. 사실 아이 성(姓)만 보아도 인종이 다른 걸 금방 알 수 있다. 괜스레 인터뷰 조차 잘되지 않는 것도 아이 이름 때문 인 것 같다. 왜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들까?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면서 본인에 관해 설명하는 과정도 만만하지 않다. 항상 겸손하라고 가르쳤는데 이것이 이곳 사람들 눈에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어제도 저녁을 먹고 카톡 영상 통화를 했다. 화면 속의 아이 얼굴이 심상치 않다.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눈이 너무 퉁퉁 부어있다. 그날 있었던 면접이야기를 한다. 오후 4시 하루가 끝나가는 피곤한 시간에 약속이 갑자기 잡혔다고 한다. 처음에는 30대쯤 되는 남자가 들어와 면접을 시작했다. 얼마 후 직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말을 심하게 한 모양이다. 딸아이가 듣기에는 인격적으로 모독이 되는 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하루의 스트레스를 딸아이에게 다 풀은 듯싶다.

 딸아이는 자기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는 네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면 됐을 텐데. 왜 그런 심한 말을 나에게 하지. 딸아이는 한글로 영어로 몇 번씩 말을 읊조린다.

 아이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속으로 수십 번 되새기면서 그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고 한다. 참고 참은 울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터져서 집에 와서는 30분은 펑펑 울었다고 한다.

 “왜 엄마에게 연락 안 했어?”

 “엄마 걱정할까 봐. 친구하고 이야기하고 아이스크림 먹었어.”

 엄마 걱정을 할 나이가 된 것이다.

 “내일 같이 놀까?”

 나의 제안에

 “응”하고 대답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벌써 밝아져 있다.

 오랜만의 시내 나들이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시내로 나왔다. 활기찬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나도 기운이 난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 커피도 마시고 예쁜 치즈 케이크도 하나 주문해서 나눠 먹었다. 그리고 새로 생겼다는 옷 매장을 구경하러 왔다. 아이가 기분이 많이 나아진 모양이다. 꽃무늬 원피스를 바라보고 있는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와선 말 한마디를 흘린다.

 “그래도 계속 이력서를 넣어야겠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글_아보카도 나무(필명)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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