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38);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지? 글_김인식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38);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지? 글_김인식

일요시사 0 2840

<사진: 김인식> 

 

“인식, 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 있어요?”

 

“예, 무슨 일 있나요?”

 

전에 같은 동네에서 살며 친하게 지내던 80대 키위 할아버지 데이브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어떤 모임에 가서 글쓰기 강의를 할 건데 와서 들어볼래?”

 

“그러지요.”

 

이렇게 해서 NGO 중 하나인 서로돕기센터에 참석해 데이브의 글쓰기 강의를 듣게 되었다. 데이브는 내가 뉴질랜드에 와서 가까이 지내는 열 명 남짓한 노인 친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책을 열댓 권 출간한 작가다. 우리 둘은 가끔 만나 서로의 생각과 생활 단상을 나누는 십년지기다. 같은 동네에 살 때는 자주 만나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는 내게 여러 번 그런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라고 권유했다. 내가 글재주가 없다고 했더니 요즘은 재주 있는 편집자가 많아서 열심히 써서 주면 아주 재미있는 글로 완전히 바꾸어주는 전문가들이 있어 걱정하지 말고 쓰라고 했었다. 그리고는 수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월요일에 모임 장소인 노스쇼어의 어느 교회에 갔다. 서른 명 가까운 키위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와 간식을 나누며 담소하고 있다. 그중 다섯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있고 또 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이마에 모자처럼 쓰는 띠를 두르고 거기 달린 마이크 모양의 끝으로 자판을 타이핑하는 할머니다. 한 문장이 입력되어 ‘엔터’를 누르면 스피커에서 하고자 하는 말소리가 나왔다. 그 옆에는 휠체어에 앉아서 이 할머니를 도와주는 조금 젊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시중을 들고 있다. 장애 노인이 다른 더 심한 장애 할머니를 돕고 있다.

 

이 모임은 65세 이상의 독거노인들이 모여 매주 한 번씩 초대 강연을 듣고, 게임을 하며, 대화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서로 도우면서 노년의 웰빙을 추구하는 모임이다. 데이브는 이날 주제인 ‘글쓰기’에 대한 연사로 초대되어 왔다.

 

데이브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뒤 강의를 시작했다. 우선 회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 중에 부모 두 분이 모두 생존해 계신 분 손을 들어 주세요.”

두 명이 손을 든다.

 

“한 분이 생존하신 분?”

다섯 명이다.

 

“예, 보시다시피 나이가 많아지면 부모들은 떠나가십니다. 후손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리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데이브는 자기가 쓴 최초의 글 묶음 파일과 출간한 도서 몇 권을 가져와서 견본으로 보이며 간단히 스토리를 소개한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글을 쓰세요. 우선 기억에 남아 있는.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형제자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세요.”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 질문한다.

 

“난 스트로크를 네 번이나 맞아서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해요?”

 

“혹시 형제자매나 친척 또는 옛 친구가 있으신지요?”

 

“예, 있어요.”

 

“다행이네요. 그들에게 물어봐서 써 보셔요.”

다른 할머니 한 분이 또 질문한다.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게 해요?”

 

“누구나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요. 그래서 난 글쓰기를 시작하며 상자를 두 개 준비해서 첫 상자에는 모두에게 알릴 말들을, 둘째 상자에는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글들을 모아 두기로 했지요. 이런 글을 쓰는데 좋은 방법은 사진을 중간 중간에 넣어 주는 거예요. 사진 설명과 함께 당시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쓰면 독자에게 실감 나게 그때의 상황과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어요.”

 

강의는 40분가량 계속되었고 그중 데이브가 소개한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난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가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쓸 때는 그들의 이름부터 사는 곳, 직업 등 신상에 관한 내용을 완전히 바꿔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실감 나는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지요. 이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가시면 오늘부터 글을 쓰세요. 한 달 후에 이 모임에 다시 와서 여러분이 쓰면서 느낀 점과 어려운 점에 관해 서로 대화해 보기로 해요.” 

 

데이브의 강의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지?’를 자신에게 물어본다. 언젠가 내가 찍은 사진들에 스토리를 담은 글을 쓰고 싶고, 손주들에게 할아버지의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위해서….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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