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5)] 뉴린 쇼핑몰에서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5)] 뉴린 쇼핑몰에서

일요시사 0 1136

3400129405_Lcf09j2g_f225822ebb13f77f1f1f979d3379e6b935a30581.jpg 포도밭의 대화 –오클랜드 근교에도 멋진 포도밭이 많다. 운이 좋은 날에는 하늘에 기묘한 모양의 구름도 만나게 되는데, 이날은 사람 형체의 두 흰 구름이 의미 있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사진 김인식)

 

 토요일마다 뉴린(New Lynn) 쇼핑몰로 향한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벌써 칠 년 정도 이어지고 있다. 뉴린 쇼핑몰에는 계단이 없다. 오르고 내려가는 수고가 없어 편하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 내가 단골 삼아 가는 에스프레소 카페에는 60대가 기본이다. 오랫동안 다녀서 그런지 카페에 오는 많은 이가 낯이 익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사람들은 커피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조용하게 앉아 있는 나이든 커플들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신기하게도 쇼핑몰에 오면 지나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난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걸어왔고 또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보통은 후회에서 시작한다. 마지막에는 고통을 피하지 말고 장단점을 연민으로 받아들이자로 훈계하면서 끝낸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곳이 이 카페인지도 모르겠다.

 삼월 삼 일이었다. 이날도 다른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뉴린 쇼핑몰로 향했다. 여러 번 주차장을 돌다가 겨우 차를 세웠다. 천천히 쇼핑몰의 자동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한 백인계 커플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져 신경이 쓰였다.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사십 대 초반의 남자는 삼사 미터 떨어져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걸어가는데 궁금증이 커진다. 무슨 일 때문일까.

  가지마.”

  여자가 울먹이며 말했다. 가슴을 핀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남자가 큰소리로 응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또 시작이야. 저번에도 설명했잖아. 돌아온다고 그랬지.”

짜증스러운 소리가 상대방을 밀어내는 것 같다. 모른 척하며 쇼핑몰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에 앉아 있는 몇몇 사람에게 간단하게 눈인사를 하고서 평소처럼 커피와 스콘(Scone)을 시켰다. 커피가 오늘은 너무 연했나. 커피 맛이 없다고 투덜대면서 거칠게 신문을 뒤적이는데, 갑자기가지마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한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헛소리를 들었나. 혼자 멋쩍게 웃는데 주차장을 지나면서 봤던 여자의 모습이 눈앞을 스친다.

  울먹이는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멀리 떨어져 서 있는 남자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아주 짧은 순간에 보았던 그들의 말하는 투와 행동거지를 가지고 그 백인 커플이 사랑을 놓고 어떻게 밀고 당기는지 상상해 본다.

  아마 여자는 혼자서 견뎌야 할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가지 말라고 했을 거다. 남자가 가야 한다 하니까 자기를 사랑하지 않나 보다 보고 상대방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남자가 듣고 보지도 않으니 자신은 사랑스럽지도 가치도 없는 존재로 느꼈을 테고, 그로 인해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지 말라고 더 떼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어땠을까. 처음에는 설명하려고 노력했을 거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의 두려움을 진정시킬 수 없으니 자신의 무능력을 실감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배우자 하나 제대로 감싸 안지 못하는 모습으로 인해 실패나 좌절감을 느꼈을 거다. 또한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지 않으려다 보니까 말수가 적어지고 거리를 두지 않았을까.

  이 커플은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당기고 관계를 개선 못 할 때 오는 좌절을 느끼지 않으려고 서로를 밀어내는 그들만의 사이클을 알까. 서로 이해받으면서 같이 더불어 잘 살고 싶을 텐데. 하지만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두려움이나 능력의 부족에서 느끼는 아픔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이 보였다. 다만 상대방에게 관심을 요구하고 좀 더 보호해 달라는 항의를 했을 거라 상상한다.

  세상을 살면서 무관심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으랴. 관심을 끌기 위해 서로 옳다고 싸우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밀고 당기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진전이 없을 때 포기한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 없이 문을 닫고 살기도 한다. 이 백인 커플은 어떤 상태에 있을까. 밀고 당기는 모습이었는데, 서로의 취약한 모습을 잘 감싸 안아 상대방을 포기하지 말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소설을 쓰고 있어요.'

어쩌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하라고 하는 응원의 소리를 내는 내면의 비평가가 있다. 얘기를 만들고 있다고 오늘도 나를 무시하듯이 말을 걸어온다. 조금은 민망한 기분으로 사방을 돌아본다. 서로 하는 행동은 다르지만, 나이가 지긋하게 든 노인들이 여전히 카페에 앉아 있다. 그들은 소설을 쓰고 있는 나한테 관심이 없는 듯하다. 괜히 부끄러워했나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차가워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시간이 지나도 그 백인 커플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왜 그럴까라고 물으면서 지난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다. 나는 관계를 어떻게 맺고 발전시켰을까. 20대와 30대를 생각하다 보니 가슴이 조금씩 아파져 온다. 어쩌면 그들을 통해 내 과거의 자랑스럽지 못한 면을 봤구나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친다.

  여러 관계 속에서 주고받았던 말과 그에 따른 행동이 되살아난다. 혼자서 편해지기 위해 또는 고통을 피하려고 상대방을 밀어낼 때가 많았다. 무서워서 피해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안 했다.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고 비겁한 행동이었다. 창피하고 후회스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몰라서 한 어릴 적의 행동은 용서해주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그렇게 살면 안 되지'하고 용서를 재촉하는 소리까지 겹쳐진다.

  '안돼. 잘못한 거는 인정해야 용서할 수 있지'라고 반박을 한다.

 

서로 다른 내면의 소리가 토론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두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다른 목소리들은 내 의식 밖으로 추방해 버렸다. 무섭고 어려워 피하려고 했다. 그것이 쉬웠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분열된 내가 아닌 여러 가지 내면의 소리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고 듣고 있다. 많이 커진 모습에 대견해 하며 지나간 잘못을 용서하고 연민의 눈으로 보자고 다짐한다. 

카페를 떠나면서 다시 한번 사람들을 둘러 봤다. 그중에서도 70대가 넘어 보이는 커플들을 눈여겨봤다. 특히 가깝게 앉은 사람들과 좀 떨어져 있는 커플들 말이다. 과거와 현재,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진다. 또한, 주차장을 지나면서 봤던 그 커플한테 그들은 무슨 말을 해줄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쌓아 왔던 그들의 지혜를 듣고 싶다.

  주차장 쪽으로 가면서 그 백인 커플을 찾는다. 이미 떠났는지 안 보인다. 그들에게 서로 이해하며 더불어 잘 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들어 올 때보다 주차장이 훨씬 더 복잡하다. 차를 어디에 세웠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차 세운 방향으로 걷는다.


글_정인화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SISA님에 의해 2018-07-02 20:55:22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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