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17) 감기와 닭죽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17) 감기와 닭죽

일요시사 0 1196

<사진: 김인식> 

 

목이 아프다. 감기에 또 걸렸다. 콜록거리다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니 기침이 심해진다. 가래가 올라온다. 기침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흉부감염일까? ‘올해는 항생제를 복용하지 말자.’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매년 찾아오는 감기는 종종 흉부감염을 낳았고 항생제를 복용한 뒤에야 사라졌기 때문에 걱정은 있다.

 

감기 치료제 중에서 유명한 렘십 맥스(Lemsip Max) 한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신 뒤에 회사로 갔다. 약 덕분인지 몸이 덜 아프다. 몇 차례 기침을 하자 여러 동료가 찡그린 얼굴로 쳐다본다. 아프면 집에 가란다. 그들의 말은 이해가 되면서도 기분이 나빠진다. 어려서부터 배웠던 충성심을 이해를 못 하다니. 따스한 말 한마디가 그립다.

 

아주 오래간만에 병가를 냈다. 예전에 들었던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라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어릴 때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이 뼛속 깊숙이 숨어들었나 보다. 이런 소리를 무시하며 오전 내내 침대 속에서 뒹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게 즐겁기보다는 외롭다. 아플 때는 누가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눈치를 보더라도 회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목사탕 몇 개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목 아픈 게 빨리 낳았으면 좋겠다. 혼자서 중얼거린다. 넋 놓으면서 누워있기도 지쳤다. 무엇을 할까. 큰아들놈한테 아프다고 전화나 해 볼까. 그놈도 바쁜데 그냥 놔두자. 생각해보니 아프다고 하소연할 사람들이 별로 없다. 괜스레 가슴이 아파져 온다.

 

 ‘불후의 명곡’이나 볼까. 유튜브에 들어간다. 추천하는 화면이 나온다. 한동안 정치를 봐서 그런지 정치인들부터 나온다. 눈으로 쭉 훑고 있는데 한국과 터키가 공동 제작한 ‘아일라’라는 영화가 보인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 병사와 전쟁고아였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터키 병사 술레이만은 전쟁 중에 만났던 아일라를 딸처럼 돌봐 주었다. 하지만 그는 귀국할 때에 아일라를 터키로 데려가지 못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2010년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용사를 기리는 행사를 통하여 기적같이 만날 수 있었다.

 

 예고편을 보는데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솟는다. 60년 동안 기다리면서 느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워도 전쟁을 통해 맺어진 이들 부녀의 아픔이 떠나질 않는다. 그들이 만났다는 기쁜 소식은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픔이 너무 커서일까.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당기며 잠을 청하는데도 정신은 맑아만 간다.

 

  큰아들한테 안부 전화를 받은 적이 별로 없다. 멀지 않는데 살고 있어 평상시에는 개의치 않았다. 아파서 민감해져서일까. 전화 한 통 없는 게 오늘은 서운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우울하게 앉아 있다가 과거에 내가 바랐던 거를 생각해보았다. 한번 부정적인 생각을 하니 눈에 거슬리는 행동과 농담으로 했던 말들이 잇따라 떠오른다. 수영장에서 내 머리를 물속에 처박았던 모습과 “아빠가 늙으면 양로원에 보낼 거야.”를 포함해서 말이다. 괜스레 짜증이 몰려온다.

 

 “부정적인 생각은 찍찍이(Velcro)처럼 잘 달라붙고 긍정적인 생각은 테플론(Teflon)처럼 잘 달라붙지 않는다”고 미국의 신경심리학자인 릭 핸슨(Rick Hanson)이 말했다. 그가 주장한 대로 아프고 우울해서 그런지 나한테 잘했던 게 생각이 안 난다. 예전에는 요구도하고 부탁도 했는데 나이 육십이 다가오니 기다리는 게 늘었다. 무엇을 기다렸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슬프다. 그리고 조금은 외롭다.

 

어머니는 한국전쟁 전에 함경북도 청진에서 친구와 단둘이서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 후로는 부모와 형제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2001년에 오클랜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십 년 이상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그리워하면서도 가족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어머니는 전쟁이 남긴 상처와 분단의 아픔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나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몰랐다. 돌아가시면서 ‘고향 청진을 그리워하며’를 묘비명으로 써 달라고 부탁하셨을 때 어머니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던 그 응어리진 아픔이 전해왔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혼자 몰래 우는 것밖에는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술레이만과 아일라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을 기다려왔던 어머니한테 느꼈던 아픔과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식들을 더 많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들을 통해 느꼈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이 분단 속에서 기약 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는 사람도 아프다.

 

아프다는 핑계로 내일 오후에는 큰아들한테 전화해야겠다. 기다리며 아파하지 않으려면 내가 다가서야지. ‘나 아파. 감기에 걸렸거든. 닭죽 좀 해다 줄래.’라고 연습도 한다. 내가 아플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닭죽을 먹을 생각을 하니 기운이 솟는다. 밤은 깊어 가는데 졸리지 않는다.

글_정인화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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