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

글쓰는 사람들(26) 그땐 그런 일도 있었지 <글과 사진_김인식>

일요시사 0 280

“아줌마들 내일 새벽이 되면 기자들이 몰려올 거요.”, “말을 시켜도 아무 대답도 하지 말아요.”, “절대로 대꾸하면 안 돼!”, “내가 나가기만 해봐라.”, “누가 찔렀는지 다 아니까.”, “이제 그놈은 죽었어, 내 손에.”,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아까부터 큰 소리로 맞은 편 철창 안에 있는 여덟 명의 아줌마들에게 계속 기자들을 대하는 법을 교육하고 있는 젊은 아저씨는 그가 하는 이야기로 봐서 ‘땐 선생’(무허가 댄스 교습소 강사)이고 함께 들어 온 아줌마들은 그의 ‘문하생’인 듯하다. 철창을 통해 서로 마주 보며 가운데 조그만 통로를 두고 나뉘어 있는 두 방에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들이 갇혀있다. 그 두 방을 바라보는 건너편 큰 철창에는 밤 아홉 시에 경찰서 앞을 지나다가 나와 함께 잡혀 온 스물두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내가 영문도 모르고 들어온 이곳은 노량진 경찰서 유치장. 온갖 잡범들이 잡혀 와 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일부는 훈계 방면되고 나머지는 즉결 심판에 넘겨진다고 한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이 태산 같다.

 

석 달 전 우리 회사가 미국의 자동화 시스템 전문회사인 해리스(Harris)와 공동으로 국제입찰을 통해 한국의 전력회사에 납품할 백만 달러짜리 초대형 전력 자동감시제어 시스템사업을 ‘턴키’(Turn-key, 일괄수주계약)방식으로 따냈다. 이 시스템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개발 및 기술 습득을 위해 회사는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엔지니어를 선발해 일 년 동안 미국으로 기술연수 차 파견하기로 하고, 그 사전 교육을 지난 두 달 동안 철저히 받았다. 출국 날짜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그 일을 준비하느라 회사에서 늦게까지 근무하고 귀가하는 길에 이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노량진 전철역 앞 육교를 건너 경찰서 앞을 지날 때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서 경찰관 셋이 내 주위에 지나던 남자들을 우르르 한쪽으로 몰아붙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근처에 소매치기가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난 잘 못한 게 없으니’ 하면서 당당하게 무리와 함께 경찰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니 말 한마디도 못하고 스물두 명의 남성들이 유치장 안에 갇혔다.

 

잡혀 들어 온 이유가 ‘장발’이었다는 것은 유치장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발한 지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내가 장발이라고?’ 기가 막히는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뒷머리가 와이셔츠 깃에 닿으면 장발’이고 여성은 치마 길이가 무릎 위 15cm가 넘으면 단속 대상이었다. 장발의 경우 즉결 처분의 벌이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지만, 법률 상식이 없는 나 같은 일반인은 구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출국할 수가 없다고 들어서 일주일 앞둔 미국 연수에 차질이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서슬이 퍼런 3공화국의 마지막 무렵이라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초 헌법적인 일들이 횡횡할 때였고, 우리 같은 소시민은 무엇에든 연루되면 꼼짝없이 힘든 고초를 겪어야만 하던 때였다.

 

앞쪽에 있는 ‘땐 선생’의 기자 방문 대비 교육이 끝나고 조금 조용해진 밤 9시 반부터 시작해서 통행금지가 임박한 이 시간까지 벌써 세 번째 면회 온 여성이 있다. 우리와 같은 방에 잡혀있는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는 그녀는 철창을 통한 만남을 못내 아쉬워하며 서로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우리 중 한 남자가 종이에 전화번호를 써서 돈을 주면서 면회 온 여성에게 건넨다. “당신 남자 친구와 같은 이유로 잡혀와 있다고 전해 주시오.” 여기저기서 “나도” 하면서 대여섯 명이 쪽지를 준다. 나도 덩달아 들고 있던 회사 봉투를 찢어서 내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쓰고 오백 원짜리 동전과 함께 주면서 전화를 부탁했다.

 

잠결에 ‘김인식’, ‘김인식’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깨었다. 두 살 된 딸을 등에 업고 내 동생과 함께 통행금지가 풀리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아내가 와있었다. 오밤중에 낯선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장발로 경찰서에 잡혀있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시동생을 불러 달려와 보니 사실인데 또 한 번 놀란다.

 

7시가 넘어 당직 경찰이 와서 일곱 명의 이름을 불러 한 줄로 세운다. 내 이름도 들어 있었다. 일곱 명의 머리를 보더니 네 명은 도로 앉으라 하고 나머지 세 명은 따라 오라고 한다. 세 사람은 머리가 짧은 편이라 하는데 아마도 누군가가 와서 무언가 건넸거나 아니면 힘 있는 사람의 전화 한 통화가 있었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더 짧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간단히 조서를 꾸미고 앞으로 장발 조심하라는 훈육과 함께 풀려났다.

 

전날 밤에 집에 전화를 걸어준 여성이 안 왔더라면 난 그냥 가만히 있다가 즉결에 넘겨졌을 것이다. 그 후의 일은 상상도 하기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으리라. 극적으로 풀려난 게 정말이지 하늘의 도우심이다. 그 뒤 일 년 간의 기술연수를 받으면서 두고두고 그날의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대뇌이며 감사했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일이 시간이 흐른 후에 실제로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계기였음을 깨달은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땐 그런 일도 있었지’가 아니라 ‘그때의 그 일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데 감사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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