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
'봄날은 졸린다. 고양이는 쥐잡기를 잊어버리고, 사람들은 빚진 것도 잊는다. 때로는 자기의 혼이 있는 것 조차 망각하고 정신이 흐려진다.'고 하는 봄입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을 다 펴지 못하고 나른해지며 일어나기 싫고 일어나도 졸리는 것입니다. 학생은 교실에서, 주부는 집안에서, 직장인은 직장에서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의욕이 없으며 졸리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춘곤증입니다.
봄은 오행으로 보아 木의 기운이 왕성한 계절로 솟아오르는 기운이 강한 때입니다. 영어에도 봄은 Spring, 곧 솟아오른다는 뜻이니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춘곤증은 겨울동안 움츠리고 감추어진 기운이 아직 풀리지 않은 데서 발생하는 일종의 부적응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체내의 봄의 기운인 발진(發陳)의 힘이 부족한 상태인 것입니다. 온도가 올라가고 사물의 활동이 활발해지며 생물체도 신진대사가 왕성해지는데 체내에서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탓입니다.
한의학은 그 시작이 자연 속에서 비롯되었고, 자연의 관찰을 통한 자연과의 조화를 이상으로 삼았으며, 자연 속의 천연 약초들을 주로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였으니 한의학은 자연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의학에서 섭생(攝生) 혹은 양생(養生)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 둘은 같은 말로써 생명을 북돋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질병이 이미 났을 때 치료하는 것은 하급의 의술이고 최고의 상급의 의술은 질병이 나기 전에 평소 섭생을 잘 하여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한의학 원전인 <황제내경>의 서두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미 이천년 전에 나온 오래된 이론이 현대의학의 첨단에서 주장하는 최신이론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보건지도를 통한 예방의학의 구현이 미래의학의 방향이며, 천연약물과 자연치료를 미래의학의 도구로 하는 여러 징후는 세계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세계를 이천년 전에 미리 이룩한 것입니다.
한의학의 양생은 자연의 섭리에 맞춰 사는 것이 그 원리입니다. <황제내경>에 수록된 계절의 양생법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봄에 늦게 자고 점차적으로 일찍 일어나라. 아침에 일어나서 정원을 큰 걸음으로 걸어 가볍게 운동을 하라. 봄에는 간장병에 걸리기 쉽다. 싹이 움트는 약동의 기운을 몸안에서도 느끼도록 움직이라는 것이다.
여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 해뜬 뒤에 늦게 일어나지 말아라. 그리고 땀을 적절히 흘려라. 여름에는 심장병을 얻기 쉽다. 울창한 여름의 기운을 따라 부지런히 활동하는 것이 좋다.
가을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가을에는 폐병을 얻기 쉽다. 정리정돈하는 결실의 기운을 따라 안정하되 함부로 날뛰지 말라.
겨울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라. 밤이 길지만 어두워지면 일찍 자고 아침에 해뜨기를 기다려 늦게 일어나라. 겨울에는 심장병을 얻기 쉽다. 겨울은 감추고 저장하는 계절이니 조용히 근신하며 살아라." 이상의 내용입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이상의 지침을 실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황제내경>의 권장 사항은 오늘날의 상식으로 볼 때도 매우 합리적인 것이며 실현 불가능한 것만도 아닙니다. 단순하게 잠사는 시간만 보면 그 요지는 태양의 일조시간에 활동과 수면시간을 맞추는 것입니다. 밤이 길 때는 오래 자고, 짧으면 조금만 자는 것이지요.
춘곤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늦게 잠자리에 들고 점차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낮에는 자리를 박차고 야외에 나가서 햇빛을 많이 쪼이며, 산보, 소풍을 다니는 것이 나른함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일조시간을 늘려 생체리듬을 조절해 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봄에 나는 봄나물을 많이 먹어서 나물이 가지고 있는 봄의 기운을 섭취하여 체내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봄만 되면 어느 누구나 춘곤증을 앓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춘곤증을 잘 앓는 타입 즉 봄을 잘 타는 타입이 있습니다. 대게 몸이 마르고 약한 편이고, 상복부의 늑골 각도가 좁은 편이며, 흉곽이 편평하고, 복근이 약하고, 복강내의 물흐르는 소리가 잘 들리고 평소 잇몸이 잘 헐고, 피부가 건조하며, 편식의 경향이 있는 사람이 이런 타입에 대체로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이런 타입인 경우엔 특히 섭생에 신경을 써야겠지요. 평소에 체력을 단련하고, 복부의 단련운동을 하며, 찬 음식을 피하고, 편식습관을 바꾸도록 해야하겠습니다.
또한 뉴질랜드에서 봄철은 수험생들의 중요한 시험시기와 겹치게 되어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경우에 공부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위에 언급한 섭생을 하면서 최대한 몸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공부의 질적인 면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차로는 오미자차가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총명과 청뇌(淸腦)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한약 처방이 또한 도움이 됩니다.
수험생 뿐만아니라 일반적으로도 하면 좋은 봄철 지압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배꼽을 중심으로 양손을 겹쳐 놓고 5초 동안 압박한 후에 이를 10여 회 반복하고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복부 마사지를 합니다. 이 때 반드시 시계 돌아가는 방향으로 마사지해야 좋습니다. 그리고 '천주(天柱)와 용천(湧泉) 경혈을 지압합니다. '천주'는 후두부 머리털 언저리에서 목덜미 방향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서 좌우 3cm부위로 목을 앞뒤로 운동할 때에 움직이는 근육의 가장자리에 있는 혈입니다. 이 부위를 지압해 보면 그 즉시 머리속이 상쾌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용천'이라는 경혈은 발바닥에 '사람 인(人)'자가 생기는 교차점 움푹한 곳이지요. 역시 호흡을 편안하게 하고, 호흡을 내쉴 때, 지긋이 눌러주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