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골프를 쓰러뜨린 사나이,바보 양용은
세계 골프를 쓰러뜨린 사나이,바보 양용은
"용은이가 저보다 몇 달 늦게 골프를 배웠어요. 머리도 저보다 한 달쯤 나중에 올렸는데 처음 필드 나가서 103개 쳤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머리 올린 스코어랑 비슷했죠." 양용은의 오랜 친구 박경구의 이야기이다.
"그땐 스무 살 갓 넘었을 때였죠. 저희가 제주도 오라골프장 연습장에서 볼 줍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필드에 나가려면 손님들 조에 한 명씩 끼어서 나가야 하니까 함께 라운드 돌 수는 없었어요. 서로 손님들 틈에 끼어서 나갈 기회만 보다가 겨우 따라 나서면 마냥 좋았던 거죠. 그런데 용은이가 두 번째 필드 나갔다 와서는 97개를 쳤다고 제게 이야기 해요. 그 며칠 전에 제가 두 번째 나가서 90대 후반 쳤었거든요. 그래서 또 비슷하구나 했었죠. 그런데 다음날 용은이와 함께 라운딩 한 손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용은이 스코어가 83개였다는 거예요. 다그쳐 알아 보니 정말 83개 쳤는데 제게는 97개라고 한 거였어요. 함께 배울 때는 묘한 경쟁심이 있잖아요. 제가 마음 다칠까 봐 그렇게 얘기했던 친구죠"
제주도 푸른 바다 너머 머나먼 나라 미국에 PGA라는 큰 무대가 있는 지는커녕, 국내에 프로골프 리그가 있는지도 모르던 소년들이었다.
흔히 젊은 날을 떠올릴 때면 누구나 흔히 '그땐 나도 푸른 꿈이 있었지' 하고 눈동자가 아련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땐 꿈이 뭐였어요? 하는 막연한 질문에 이제 마흔이 된 장년의 양용은이 계면쩍다는 듯이 씨익 웃는다.
"꿈이요?…… 글쎄요……"
"프로가 되려고 골프를 시작했나요" 하고 고쳐 묻는다.
"아뇨, 그땐 프로가 뭔지 알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골프장에서 일하면 밥은 먹을 수 있을까 했던 것뿐이죠."
세상에 골프만큼 우스꽝스러운 게 또 있을까.
경복궁터 세 배는 되고도 남을 드넓은 경기장에서 겨우 탱자 열매만한 공을 쥐구멍만한 홀컵에 넣으려고, 살집 좋은 과부 보쌈 자루만큼 커다란 가방에 조자룡 칼만한 쇳대를 열네 개씩이나 넣고 다니며, 심각한 모습으로 번갈아 휘둘러 패며 애쓰는 운동 말이다.
머리가 허옇게 쇤 노인들이 명지털 보송보송한 청년들과 뒤섞여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구멍 쪽으로 쳐 보내려 애면글면하면서, 나이도 체면도 잊고 으르렁대다가 기고만장하기도 하고, 이내 어깨가 축 처지기도 했다가 다시 해해거리곤 하는 게임 말이다.
그냥 평탄한 잔디밭에서 점잖게 하는 것도 아니다. 공연히 물 웅덩이와 모래구덩이 함정을 파놓고 나무와 숲 덤불로 얄궂게 막아놓은 들판에서, 비바람이 불거나 한여름 뙤약볕에서나 살이 시린 겨울날에나, 몸살이 나고 근골이 상하면서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취미 말이다.
딱히 심판이 따로 없는데 규칙은 국가고시 문제만큼 많고 엄격한데다가, 경기장은 너무 넓고 숨을 데도 많아서, 18홀 도는 동안 스스로의 마음 속 유혹과 몇 번은 싸워야 하고, 누구나 언젠가 한번 이상 남모르는 전과를 저지른 적 있는, 이상한 규칙경기 말이다.
한 번에 다섯 시간 씩이나 걸리는 라운드를 하루에 한 번씩 나흘 동안이나 하는 지루한 일정인데도, 고급 스폰서가 내거는 대회 상금이 매번 수억 수십억 씩이고, 그걸 한 번도 빠짐없이 중계를 하는 전문방송국이 있고, 중계를 보면서 선수들이 채 휘두를 때마다 함께 몸을 쓰며 자기 폼과 닮았다고 착각하는 시청자가 수억 명 씩이나 되는 프로그램 말이다.
배우는데 시간과 돈이 적지 않게 들어서 가난한 이는 시작하기도 어렵기 때문인지, 애호가 가운데 일부는 우쭐한 과시욕에 과시하고 싶어하기도 하고, 입이 간지러워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게 되는, 군대 이야기보다 더 결론 없이 으쓱대는 대화 말이다.
초급 수준을 벗어날 실력이 될 무렵이면 골프가 곧 인생의 축소판이니 도(道)니 하면서 짐짓 도인처럼 경지를 논하고 고수와 하수를 가름하려 하는, 점잖은 어른들이 그렇게 유치한 짓을 스스럼 없이 하게 하는, 한 번 빠지면 시도 때도 없이 몸이 스윙동작을 하려 하고 생각은 파란 잔디밭으로 내달아 다른 일은 생각도 하기 싫게 만드는……
골프는 바보들의 스포츠다.
메이저 대회 우승의 의미
"작대기질 해서 백억 원 넘게 벌었어요. 그만하면 성공한 편이죠"
양용은. 이 남자는 꾸밈이 없다. 표정은 소박하고 목소리와 몸짓이 공손하다. 골프라는 고급 스포츠에서도 세계 최고라 손꼽는 PGA 메이저 대회 챔피언이니 대하기 까다롭겠다는 선입견은 그냥 접어두어도 좋다. 약간 수줍은 듯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것 같으면서도, 건네는 질문마다 세심한 대답이 돌아온다. 큰 대회를 끝내고 모처럼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이라 꽤 힘들다고 하면서도, 간간이 부드럽게 웃는 표정을 내내 잃지 않는다. 눈빛에서 피곤함이 아니라 외로운 기색이 살짝 비친 것 같기도 하다. 정상에 오른 이의 권태감 때문일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 특히 골프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과 기자들 사이에서 그는 꽤 좋은 평판을 듣는다. 성공한 뒤에도 옛날 고생할 때와 다름없이 사람 대하는 모습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십 몇 년 전 박세리가 처음 여자 골프 메이저 대회인 < us자오픈 > 에서 우승했을 때,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던 것 같지만 사실 그때 국민들은 박찬호에 더 많이 열광했었다. 박세리의 메이저 우승에 더 높은 경의를 보인 것은 오히려 일본 골프 팬들이었다. 박세리가 일본 골프대회에 참가했을 때, 국내에서보다 훨씬 많은 플래시 세례와 갤러리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었다. 이유는 한 가지, 메이저 우승자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한 일본 언론사의 한국 특파원은 한국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박찬호는 수많은 메이저리거들 가운데 조금 뛰어난 한 사람이지만 박세리는 오로지 한 사람뿐인 세계 최고 메이저 대회 우승자인데 한국 사람들이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며 아쉽다고 쓰기도 했었다.
그때 박세리의 우승 상금은 26만 불 정도였다. 여자 대회 상금으로는 상당한 액수이지만 사실 LPGA 여자대회의 규모는 PGA 남자대회의 십분지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양용은은 2009년 < pga챔피언십 > 우승으로 135만 불의 상금을 받았다. 상금 액수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세계 프로골프에서 PGA 메이저 대회 우승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높은 경지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프로골프 대회 연간 상금왕이 미국 PGA 출전자격 시험에서 간신히 턱걸이 하거나 낙방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 시험을 통과해서 출전자격을 따더라도 매 대회마다 150여 명의 선참자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나마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도 없다. 좀 중요하다 싶은 대회들은 참가 자격을 랭킹 순, 우승 경력 순 등으로 제한하기 일쑤이고 그 가운데서 가장 참가자격이 까다로운 것이 메이저 대회 들이다. < 브리티시오픈(The OPEN) > , < us오픈 > , < 마스터스 > , 그리고 양용은이 우승한 < pga피언십 > 의 네 개 대회가 그것이다.
메이저 대회의 상금은 일반 대회보다 훨씬 많고 무엇보다 역사와 권위가 있기에 세계 톱 랭킹에 드는 선수들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두 참가한다. 코스도 어렵고 갤러리도 몇 배 많으므로 세계 최강의 경쟁자들, 가장 어려운 코스, 구름 같은 갤러리의 움직임과 환호,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두 이겨야 하고, 무엇보다 신의 선택을 받아야만 우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우승한 사람은 다른 대회 우승자와는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우승을 여러 번 했다 해도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으면 초일류 선수 축에 들지 못한다. 단 한 번만 메이저 우승을 해도 소개되는 이름 앞엔 언제나 메이저 우승자라는 존경 어린 호칭이 따라붙는다.
"주제도 모르고 무슨 골프냐"
'작대기질 해서 이 정도면 성공한 셈'이라는 말은 어린 시절 막막했던 형편을 빗대어 하는 이야기일 터다. 알려진 대로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체격이 단단해서 보디빌딩과 운동을 좋아하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우연히 친구 일터에 놀러 갔다가 골프 연습장 '볼보이'를 하게 되면서 골프에 빠져든다. 골프채를 처음 잡은 날부터 흥미를 느낀 그는 연습장이 문을 닫는 야간에 불을 켜고 연습하고, 연습장의 변변찮은 월급으로 부족해서 나이트클럽 웨이터, 공사장 막노동꾼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골프를 익혔다고 한다. 군 보충역 복무 기간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연습을 하고 제주 오라 골프장에서 일과 연습을 병행하여 24세에 KPGA 프로테스트에 합격한다.
"PGA 메이저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쯤부터 했나요?"
"글쎄요. 프로 자격증을 딴 뒤에도 한참 동안은 메이저 대회 우승 같은 건 꿈꿀 형편도 아니었죠. 현실 사정이 너무 급했으니까요. 다만, 저는 그저 좀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욕망은 늘 놓지 않고 달려왔던 거 같습니다."
제주 태생이라 '바람의 아들'이라는 그럴싸한 별명을 얻은 그이지만 가만히 보면 단단히 다져진 근골이 꼭 제주마(馬) 같다. 177cm에 88kg이니 한국사람 치고는 건장한 체격이지만 보통 키가 185cm 이상 되는 PGA 거한들 사이에서 옹골지게 걸어가는 그는 작지만 강인한 제주마의 모습에 영락없다.
그 제주마도 추운 눈밭을 헤매던 어리고 여린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골프를 어떻게 하느냐며 농사나 지으라고 했고 사람들은 '주제도 모르고 무슨 골프냐'고 비웃었다. 어렵사리 프로가 됐지만 먹고 사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다. 프로가 됐다고 1부 투어에서 바로 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눈 딱 감고 골프에만 전념해서 1997년 KPGA 1부 투어에 데뷔한 첫 해 상금랭킹 9위로 신인왕이 됐지만 1년 동안 번 상금은 60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그 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첫째 아이도 낳았으니 생활이 참 막막했을 터이다.
"결혼하는데 돈이 정말 싸게 들었어요. 두 사람 반지, 시계 결혼 예물 다 합해서 100만원으로 다 했으니 알뜰했죠?"
그가 회상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그 이듬해 상금 총액은 1,200만원, 그 다음 해는 1,800만원이었다 한다. 그것도 세금으로 절반 가까이 떼이고 받았다. 그 돈으로 생활을 하고 애도 키우고 골프도 해야 했으니 사정이 어땠는지는 짐작하기도 안쓰럽다. 돈을 벌기 위해 아마추어를 상대로 레슨을 하려고도 했지만 대회에 나가려면 병행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돈이 없으니 아예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끊고 연습만 하면서 2년 넘게 지낸 적도 있는 무명시절이었다. '열 번을 얻어먹으면 한두 번은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 사람 구실 못할 바에야 차라리 만나지 말자'고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그저 공만 쳤다고 한다.
"친구가 여주CC 부속 연습장에 헤드프로로 있었거든요. 여주CC 헤드프로는 김태연 프로님이라고 고마운 선배님이셨구요. 그래서 거의 매일 여주까지 가서 신세 졌어요. 가면 친구 덕에 연습장에서 연습 볼도 마음껏 치고 골프장 맨 막팀 뒤를 기다렸다가 선배님 배려로 필드 라운딩도 했구요. 얻어먹기도 많이 했죠. "
그러나 그 '친구'인 박경구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용은이는 한 번 얻어먹으면 꼭 한 번은 자기가 사야 하는 친구였어요. 매일 골프로 내기를 했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별로 신세 진 것도 없는 셈이예요."
결혼할 때 아내에게 딱 5년만 기다려달라고 했던 그는 2002년 < sbs강전 > 에서 첫 우승을 한다. 골프를 시작한지 꼭 10년 만에 이룬 우승이었다. 그 상금이 2,700만원이었는데 당시로는 처음 벌어본 큰 돈이라 꿈 같았다고 한다.
세 차례나 큐스쿨 - '지옥의 시험'에 들다.
성공하는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하나는 꿈을 점점 키워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꿈을 크게 꾼 사람보다는 작은 꿈을 한 단계씩 키워간 사람들이 어느 순간엔가 큰 꿈까지 실현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양용은은 첫 우승을 한 후 아내에게 다시 5년을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해외에 나가서 좀 더 큰 무대에서 뛰는 선수가 되겠다고…… 그리고 다음 해에 일본 프로골프 퀄리파잉 스쿨(투어프로 자격시험)에 수석 합격해서 일본투어에 진출한다. 데뷔한 2004년 2개 대회에서 우승하고 2005년과 2006년 연달아 1승씩을 보태 4승을 달성한다. 그때는 '정말 한참 잘 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감도 넘쳐서 슬슬 더 큰 무대로 진출하고픈 욕심이 커져가기도 했다. 그리고 막내 돌잔치 하러 귀국한 김에 우연히 참가한 2006년 < 한국오픈 > 에서 뜻하지 않게 덜컥 우승하는데 그 덕에 세계랭킹 포인트가 상승해서 유러피언투어 < hsbc챔피언스 > 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는다.
"생각해 보면 전 참 운이 좋았어요. 중요한 순간에 우연한 기회가 생기곤 했는데 그걸 덥썩덥썩 잘 받아먹은 거죠."
그리고 2006년 < hsbc챔피언스 > 대회에서 그는 덥썩 우승해 버린다. 그 대회는 한국 투어나 일본 투어와는 격이 다른, 세계 골프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유러피언 투어' 대회였다. 더구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참가한 대회였다. 그 전까지 이룬 우승과는 의미도 차원도 완전히 다른 성과였다. 그야말로 '한 방 날린' 것이다. 그 한방으로 그는 유러피언투어 풀시드까지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그 뒤론 쉽지 않았어요. 세계 무대는 만만한 게 아니더라구요."
그는 곧바로 미국 PGA 투어 자격시험인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했다. "1년을 뛰더라도 미국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라고 공언했던 그에게는 당연한 행보였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고 2007년에는 유럽투어 우승자에게 허락된 PGA투어 9개 대회와 유럽투어 대회를 오가며 번갈아 출전해야 했다. 그 해엔 성적도 시원치 않았고 마지막 대회인 < hsbc챔피언스 > 에선 룰 위반으로 실격 당하기도 했다. 다시 PGA 큐스쿨에 재도전하여 어렵사리 합격하고 2008년 꿈에 그리던 PGA 투어에 뛰어들지만 역시 미국무대의 벽은 높았다. < atT페블비치내셔널 > 대회 9위를 최고성적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채 다음해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한 그는 결국 큐스쿨에 또 한차례 재응시해서 아슬아슬한 끄트머리 성적으로 2009년의 '조건부 시드'를 받는다.
그 몇 년간을 양용은은 자기 골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로 기억한다. 2009년 < 소니오픈 > 때는 대기자 신분으로 하와이까지 가서 기다리다 끝내 결원이 생기지 않아 짐을 싸서 돌아온 적도 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도 멋쩍고 해서 대회 기간 내내 하와이에 머물며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공을 치고 퍼팅연습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만든 게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오직 연습 또 연습 밖에 할 게 없더라고 한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조건부 대기선수로 기다리다가 불참자가 생겨서 출전한 < 혼다클래식 > 에서의 우승, 그리고 메이저 대회인 < pga피언십 > 에서 타이거 우즈를 꺽고 우승한 이야기……
운 좋은 골퍼의 '김 새는' 골프
그는 말끝마다 "운이 참 좋았어요."라고 한다.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스무 살 넘어서 골프채를 처음 잡아본 시골 청년이 어떻게 < 한국오픈 > 대회는 물론 일본투어와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 최강의 고수들의 싸움터인 PGA 투어에서 우승하며, 어떻게 메이저 대회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천하의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미스 샷 하나 없이 완벽한 플레이로 역전승할 수 있었겠는가. 타이거 우즈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PGA 선수들은 발걸음 떼기 시작할 때부터 골프 기본기를 익혀온 '모태 골퍼'들이고, 체격 조건도 운동환경도 경제 형편도 훨씬 유리한 이들이며 대회 장소는 그들의 홈 그라운드다. 그 틈에서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한다는 것이 운이 좋지 않고는 어찌 가능한 일일까 말이다. 더구나 그는 메이저 우승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 골프 팬들에게도 '그저 가능성 있는 선수'에 불과했다. 한국에는 그보다 까마득하게 앞서가는 듯하던 선배 최경주가 있었고 당연히 한국사람의 첫 메이저 우승은 최경주의 몫이라고 자타가 공언하던 터였다.
그런데 그가 "운이 좋았다"고 자기를 낮추는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가 정말로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한국 투어에서는 그저 시골뜨기를 면한 정도로 보이던 그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 최고의 메이저 챔피언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니 당시의 동료, 선배들 가운데는 적응이 잘 안 되는 사람도 있겠다. 게다가 "운이 좋았다"고 하니 그들 가운데는 자신의 '운 없음'을 한탄하는 이도 있겠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PGA 작은 대회 우승 한 번만 해도 영웅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는데, 그가 메이저 챔피언이 되고도 영웅처럼 굴지 않고 옛날 모습 그대로 옛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메이저 챔피언을 꿈꾸는 이들이 '김 새는' 기분도 가질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골프 스타일도 그 '김 새는' 느낌에 한 몫 하는 듯하다.
"제 골프가 멋있지는 않잖아요. 로리 맥일로이 같은 아이들 스윙 보면 제가 봐도 아름다운데 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죠. 남들이 보기에는 잘 치는 거 같지도 않은데 어찌어찌 해서 핀 근처까지 가고, 퍼팅 스트로크도 이뻐 보이지 않는데 슬그머니 파나 버디를 하고, 그러다가 보면 탑텐에 들고 우승도 하고, 뭐 이러니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겠죠."
그의 골프는 그의 말대로 첫눈에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파워풀한 스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플레이 스타일이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맥일로이처럼 영웅적이지도 않다. 영어 소통이나 플레잉 매너 연출이 세련된 것도 아니고 리액션도 별로 멋 없게 한다. 그런데 그는 그런 골프로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 pga챔피언십 > 에서 우승한 뒤 타이거 우즈와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칠 때 안 떨렸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타이거 우즈가 골프채로 나를 때리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두려울 게 뭔가." 라는 유명한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 질문을 똑같이 다시 하니 이렇게 말한다.
"성적이 좋은 날은 그냥 제 경기에 몰입하는 날입니다. 준비가 잘 된 날은 누가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잘 모를 만큼 집중이 잘 돼요. 그날은 마음이 편했어요. 잃을 게 없다. 세계 최고 선수와 마음껏 쳐보자. 이런 기회는 돈 주고도 못 얻는다. 그런 마음을 먹으니 두려울 게 없고 제 경기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그런 날 사고를 치는 거죠."
큰 경기에 발휘되는 집중력
그러나 그는 메이저 챔피언이 된 뒤로는 PGA 투어에서 다시 우승을 거머쥐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원아시아투어 < 볼보차이나오픈 > 과 < 한국오픈 > 에서 우승하고 올해 < 혼다클래식 > 에서 준우승, < us픈 > 에서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로리 맥일로이와 겨루다 공동3위를 했지만 미국 투어 다른 대회에서는 기대만큼의 일관성 있는 성적을 내지 못해서 특별히 잘하고 있다는 느낌은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 < 한국오픈 > 에서는 마지막 날에 무너져 선두와 11타 차로 벌어지며 4위로 쳐졌다. 얼마 전 벌어진 대륙간 대항전 < 프레지던츠 컵 > 대회에서도 1승 3패를 했으니 메이저 챔피언에 걸맞는 성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세계랭킹도 44위로 밀려서 15위인 최경주는 물론 24위인 후배 김경태보다 아래에 있다. 정말 그의 말대로 메이저 챔피언은 '운'이 많이 따라서 된 것일까.
올해 7월에 열린 한일 프로골프 대항전 < 밀리언야드컵 > 에서 그가 플레이 하는 모습을 직접 따라다니며 본 적이 있다. 작년 한일 대항전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아쉬운 1점 차 패배를 당했다는 소식에 PGA 대회 몇 개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청해서 대표팀에 합류한 양용은은 대회 기간 3일 내내 압도적인 내용으로 전승을 기록했다. 그때 느낀 점은 메이저 우승자는 역시 '클래스'가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냥 슬슬 치는 것 같은데도 이시카와 료, 가타야마 신고 등 일본의 골프 영웅들을 압도했다. 객관적인 실력차도 있겠으나 한일 국가대항전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집중하게 한 것 같았다. 꼭 이기겠다는 의지, 국가를 대표한 팀의 맏형이라는 책임감이 경기 내내 그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그때 보면서 '양용은에게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구나. 집중력이 살아나면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내공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얼마 뒤 미국에 돌아가서 그는 < us픈 >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경기하며 3위를 기록한다. 막판에 맥일로이가 너무 멀리 도망가서 쫓아가다 맥이 빠지는 바람에 저지른 실수로 3위로 내려앉았지만 충분히 준우승은 할 수 있던 경기였다. 메이저 대회에서 그 정도 성적은 사실 훌륭한 것이다. 역시 큰 경기에 집중력이 강한 선수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타이거 우즈를 망가뜨린 책임을 지시오."
"이제 마흔 살을 넘어가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운 목표가 있나요?"
"얼마나 더 투어를 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승도 몇 번 더 했으면 좋겠고, 되도록 오래 선수 생활 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해야죠."
좀 더 큰 포부를 말해주기 기대했으나 좀 맥 빠지게 평범한 어투로 이야기 한다. 그는 잘 하겠다는 말을 근사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은 그냥 소박하게 하고 행동으로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결국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작대기질로 이만하면 성공한 거죠' 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타이거 우즈가 양프로한테 진 다음부터 기가 빠진 것 같은데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좀 그런 것도 같은데요(웃음)……어떻게 책임지죠?"
"양프로가 타이거 우즈를 대신하는 방법 밖엔 양프로가 할 수 있는 게 없죠."
(웃음……)
웃을 이야기만은 아니다. 타이거 우즈가 부진에 빠지면서 세계 프로골프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갤러리는 줄어들고 대회 스폰서는 흥행 추이를 지켜보면서 후원의 지속 여부를 저울질 하고 있다. TV중계 시청률은 절반 가까이 뚝 떨어지고 광고 수입도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골프 시장이 지금만큼 큰 데에는 타이거 우즈 공이 결정적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번 < 프레지던츠 컵 > 에서 우리 선수가 들어있는 팀과 타이거 우즈가 든 팀이 경기를 할 때 타이거를 응원하는 한국 골프 팬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일 만큼 세계 골프계는 영웅의 부활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타이거 우즈는 양용은에게 패하기 전에는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져 본 적이 없는 불패의 영웅이었다. 메이저 대회에서만 14번 챔피언 조에 들어서 14번 모두 우승 했다. 15번 째에 양용은이 그 기록을 깼고 어쨌든 그 뒤로 타이거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버렸으니 그냥 우연으로 볼 일 만은 아니겠다. 섹스 스캔들 탓이라고 하지만 그런 추문이 세상에 드러날 만큼 타이거의 자기 관리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라는 뒷얘기도 들린다. 그러니 양용은이 '작대기질 해서 이만하면 성공한 편'이라고 만족하는 것은 어쩌면 무책임한 발뺌이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무협지 같은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영웅을 쓰러뜨린 자는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 방법은 두 가지다. 쓰러뜨린 다음 곧바로 은거를 해서 전설로 남든지 아니면 계속 영웅적인 승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애매한 중간 자리는 없는 것이 영웅의 세계이고 그 책임은 자기 스스로 벗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웅은 이미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인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이 된 순간 이미 그는 자기 혼자만의 양용은이 아니라 그에 환호했던 사람들의 대리자가 되어버렸고, 사적인 개인으로는 당분간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다. '이만하면 성공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는 순간, 그는 혼자 소박하게 행복해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미 사람들이 기억하고 원하는 양용은은 아니게 된다.
영화 스파이더 맨의 유명한 대사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말처럼 그는 이미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진 영웅이 되었기에 과거의 소박한 양용은으로 자유로이 돌아가기 어렵다. 이제는 그가 '아직 나는 배가 고프다' 하고 갈망해야 진정성 있는 양용은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가 그저 타이거 우즈를 경기에서 이겼을 뿐인데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생뚱맞은 비약일 수도 있겠다. 영웅이라는 거창한 표현도 요즘 같은 대중 권력의 시대에 뜬금없어 보일 수 있으며, 골프라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영웅의 운명이 어떻다느니 하냐고 실소를 머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프로골프 투어라는 것이 쇳덩이 무기를 들고 주유하는 검객들의 세계와 흡사할진대 우리는 프로골퍼들이 등장하는 투어 대회를 보면서 무협지에 나오는 강호 영웅들과 비슷한 캐릭터를 투영하며 환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의 들머리에 적은 것처럼, 골프라는 것이 원래 '바보들의 스포츠'이니 골프를 말하다가 바보 같이 흥분해서 하는 이야기로 이 정도는 약과다.
어쨌든 양용은은 '이만하면 성공'이라는 생각보다는 '아직 멀었다'는 갈망으로 매진하면 메이저 대회 몇 번은 더 우승하는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는 골퍼다. 얼마 전 < 프레지던트컵 > 대회에서 성적과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은 중에도 타이거 우즈 팀과 상대가 되어 맞붙은 셋째 날 포볼 경기를 이겨냈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메이저 영웅급' 집중력을 본다.
후배들 보살피려 시작한 사업
"좋기도 하지만 좀 답답할 때도 많아요."
양용은이 한국에 설립한 회사 직원의 말이다. 양용은은 지난해부터 한국에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물론 그는 투어 대회에 전념하고 회사는 몇 명의 임직원들이 맡아서 운영하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회사 일을 챙긴다. 회사는 프로골퍼를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매니지먼트 사업과 골프대회 운영 대행 등의 일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직원이 '답답하다'고 하는 것은 도통 이익에 신경 쓰지 않는 그의 사업 방향 때문이다.
"어차피 후배들 키우고 보살피려 한 일이니 돈 남기려 하는 거 아녜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돈 좀 손해 보더라도 PGA 대회처럼 선수들을 잘 배려해서 진행하는 대회 진행도 선보이고 싶어요. 우리나라 대회에 오랜만에 참가해 보면 솔직히 동네 잔치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 안에 드라이빙 레인지도 없는 데가 많아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사설 연습장에서 몸을 풀고 와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선수들 식사 장소에 대한 배려도 중구난방이고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될 일인데 큰 무대에서 어떻게 하는지 직접 체험해본 사람은 훨씬 잘 할 수 있는 거죠. 이동식으로 설치할 수 있는 소형 드라이빙 레인지 같은 것도 있거든요. 그런 것도 제 돈 들여서라도 갖다 놔주고 싶고, 뷔페 서비스를 불러서라도 근사하게 먹여주고 싶죠. 대회 진행 대행 사업은 그런 생각 때문에 하려는 거에요."
나중에 따로 들어보니 직원들이 선뜻 이해 못하는 게 또 있었다. 이번에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그가 갑자기 직원들을 불러서 어딘가 가자 했다고 한다. 어딜 가나 싶었는데 뭘 잔뜩 사서 싸 갖고 장애우 시설에 찾아갔던 것이었다. 가서 선물도 하고 그냥 하루 종일 장애우들과 놀다 왔는데 양용은 혼자만 너무 스스럼없이 장애인들과 살 부비며 어울리는데, 직원들은 어색하게 겉돌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약간 볼멘 소리를 한다. 기자들한테도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참 못 말린다'고 하면서도 직원들은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다.
바보가 되라, 영웅이 되라
대면 인터뷰를 마치고 글을 쓰는 중에 호주에서 대륙간 대항전 < 프레지던트 컵 > 이 열리고 그 개막식에서, 2015년 프레지던트 컵의 한국 개최 확정 소식이 발표되었다.
골프라는 스포츠는 아직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종목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상류층 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라고 비뚜름하게 보기도 한다. 실제로 골프는 '바보들의 운동'이라서 골프를 하는 사람은, 운동으로서의 골프 자체의 매력에 빠져서 온통 스윙과 필드 생각밖에 못하는 경우도 많고, 골프를 하는 사회적 모임 밖에 있는 다른 이들의 가치를 헤아릴 여유를 잃곤 한다. 골프를 한다는 것만으로 우쭐대는 좀 모자란 사람이 간혹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심지어는 골프가 경제적 양극화의 상징처럼 매도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우리나라 땅 안에 지어진 골프장은 400여 개를 넘어서고 있고, 축구로 치면 월드컵에 버금갈 만한 행사인 < 프레지던트 컵 > 이 국내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 큰 대회를 직접 치른다는 것은 선수들의 골프 경기력은 물론 산업으로서의 골프를 크게 발전시킬 돌파구적인 기회이기도 하고,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 보면 골프가 양극화의 상징으로서의 이미지를 깨고 상식적인 여가문화로 크게 대중화될 수 있는 문화 변혁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골프라는 것이 일부에게만 즐거움을 안기고 다수에게 열패감을 주는 경우에는 거만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비록 모든 이들이 직접 즐기지는 않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계기가 마련될 때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 프레지던트 컵 > 대회 같은 이벤트가 열린다는 것은, 2002년 월드컵 때 경험했듯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상을 여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겉치레 행사와 가식적 연출로는 불가능한 일일 터이지만.
이런 때에 양용은 같은 사람은 골프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은 존재일 수 있다. 그는 이미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 무대에서 꿈을 이루었고 그 성공 가운데서도 겸손함으로써 골프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을 듣고 있으며, 무엇보다 메이저 대회 우승자라는 영웅적 배경을 활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국내 유일의 존재이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거다"라고 소극적이 되는 순간 할 일이 별로 없겠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고 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국민적 결집력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겠다.
쓸데 없는 사설이 좀 길었다.
하지만 양용은은 아시아에서 최초이고 유일한 메이저 챔피언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메이저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이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이룬 성공 스토리의 재탕이 아니라 앞으로 이룰 새로운 승리의 모습일 것이다.
양용은. 그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은 대개 그의 변함없음을 칭송한다. 메이저 챔피언이 되어 성공한 뒤에도 국내에 돌아오면 옛날처럼 꾸밈 없이 옛사람들을 대한다고 한다. 그는 골프도 굳이 멋지게 하려 하지도 않고 실속을 우선한다. 겉모습과 매너도 세련된 연출과는 거리가 좀 있게 투박하다. 실제 속을 들여다 보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옛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그것을 그의 큰 장점으로 본다.
그가 그 장점을 그대로 밀고 나가길 기대한다. '이만하면 성공'이라는 생각은 접고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처럼, 처음 프로가 됐을 때처럼, 처음 바다를 건널 때처럼, 첫 우승을 했을 때처럼, 변함없이 바보처럼 골프만 하기를. 골프가 바보들의 운동이라는 것은 절반은 농담이고 조롱이고 자조이지만, 양용은 그만은 바보가 되어 골프에만 미쳐서 다시 처음처럼 매진하고, 다시 계속 이기기를 기대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 일리아드 > 에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오딧세우스는 무적의 전사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트로이로 함께 참전할 것을 청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트로이로 떠나면 죽을 운명이라며 만류한다.
"떠나지 않고 남으면 평범한 행복을 누릴 것이고, 떠나면 전사하되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분연히 참전한다. 그는 영웅의 운명이었다.
양용은은 이미 골프의 역사에 또렷하게 기록된 영웅적 존재이다. 그 영웅의 크기와 깊이가 앞으로 어떻게 가늠되어 남을 지는 아직 모른다.
글로 쓰다 보니 인터뷰가 칼럼이나 사설처럼 되어버렸다. 거창한 비유와 혼자 목소리 높이 주장이 살짝 생뚱맞더라도, 골프가 '바보들의 스포츠'라는 것을 감안하여 조금은 이해하여 주시길.
"그땐 스무 살 갓 넘었을 때였죠. 저희가 제주도 오라골프장 연습장에서 볼 줍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필드에 나가려면 손님들 조에 한 명씩 끼어서 나가야 하니까 함께 라운드 돌 수는 없었어요. 서로 손님들 틈에 끼어서 나갈 기회만 보다가 겨우 따라 나서면 마냥 좋았던 거죠. 그런데 용은이가 두 번째 필드 나갔다 와서는 97개를 쳤다고 제게 이야기 해요. 그 며칠 전에 제가 두 번째 나가서 90대 후반 쳤었거든요. 그래서 또 비슷하구나 했었죠. 그런데 다음날 용은이와 함께 라운딩 한 손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용은이 스코어가 83개였다는 거예요. 다그쳐 알아 보니 정말 83개 쳤는데 제게는 97개라고 한 거였어요. 함께 배울 때는 묘한 경쟁심이 있잖아요. 제가 마음 다칠까 봐 그렇게 얘기했던 친구죠"
제주도 푸른 바다 너머 머나먼 나라 미국에 PGA라는 큰 무대가 있는 지는커녕, 국내에 프로골프 리그가 있는지도 모르던 소년들이었다.
흔히 젊은 날을 떠올릴 때면 누구나 흔히 '그땐 나도 푸른 꿈이 있었지' 하고 눈동자가 아련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땐 꿈이 뭐였어요? 하는 막연한 질문에 이제 마흔이 된 장년의 양용은이 계면쩍다는 듯이 씨익 웃는다.
"꿈이요?…… 글쎄요……"
"프로가 되려고 골프를 시작했나요" 하고 고쳐 묻는다.
"아뇨, 그땐 프로가 뭔지 알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골프장에서 일하면 밥은 먹을 수 있을까 했던 것뿐이죠."
세상에 골프만큼 우스꽝스러운 게 또 있을까.
경복궁터 세 배는 되고도 남을 드넓은 경기장에서 겨우 탱자 열매만한 공을 쥐구멍만한 홀컵에 넣으려고, 살집 좋은 과부 보쌈 자루만큼 커다란 가방에 조자룡 칼만한 쇳대를 열네 개씩이나 넣고 다니며, 심각한 모습으로 번갈아 휘둘러 패며 애쓰는 운동 말이다.
머리가 허옇게 쇤 노인들이 명지털 보송보송한 청년들과 뒤섞여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구멍 쪽으로 쳐 보내려 애면글면하면서, 나이도 체면도 잊고 으르렁대다가 기고만장하기도 하고, 이내 어깨가 축 처지기도 했다가 다시 해해거리곤 하는 게임 말이다.
그냥 평탄한 잔디밭에서 점잖게 하는 것도 아니다. 공연히 물 웅덩이와 모래구덩이 함정을 파놓고 나무와 숲 덤불로 얄궂게 막아놓은 들판에서, 비바람이 불거나 한여름 뙤약볕에서나 살이 시린 겨울날에나, 몸살이 나고 근골이 상하면서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취미 말이다.
딱히 심판이 따로 없는데 규칙은 국가고시 문제만큼 많고 엄격한데다가, 경기장은 너무 넓고 숨을 데도 많아서, 18홀 도는 동안 스스로의 마음 속 유혹과 몇 번은 싸워야 하고, 누구나 언젠가 한번 이상 남모르는 전과를 저지른 적 있는, 이상한 규칙경기 말이다.
한 번에 다섯 시간 씩이나 걸리는 라운드를 하루에 한 번씩 나흘 동안이나 하는 지루한 일정인데도, 고급 스폰서가 내거는 대회 상금이 매번 수억 수십억 씩이고, 그걸 한 번도 빠짐없이 중계를 하는 전문방송국이 있고, 중계를 보면서 선수들이 채 휘두를 때마다 함께 몸을 쓰며 자기 폼과 닮았다고 착각하는 시청자가 수억 명 씩이나 되는 프로그램 말이다.
배우는데 시간과 돈이 적지 않게 들어서 가난한 이는 시작하기도 어렵기 때문인지, 애호가 가운데 일부는 우쭐한 과시욕에 과시하고 싶어하기도 하고, 입이 간지러워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게 되는, 군대 이야기보다 더 결론 없이 으쓱대는 대화 말이다.
초급 수준을 벗어날 실력이 될 무렵이면 골프가 곧 인생의 축소판이니 도(道)니 하면서 짐짓 도인처럼 경지를 논하고 고수와 하수를 가름하려 하는, 점잖은 어른들이 그렇게 유치한 짓을 스스럼 없이 하게 하는, 한 번 빠지면 시도 때도 없이 몸이 스윙동작을 하려 하고 생각은 파란 잔디밭으로 내달아 다른 일은 생각도 하기 싫게 만드는……
골프는 바보들의 스포츠다.
메이저 대회 우승의 의미
"작대기질 해서 백억 원 넘게 벌었어요. 그만하면 성공한 편이죠"
양용은. 이 남자는 꾸밈이 없다. 표정은 소박하고 목소리와 몸짓이 공손하다. 골프라는 고급 스포츠에서도 세계 최고라 손꼽는 PGA 메이저 대회 챔피언이니 대하기 까다롭겠다는 선입견은 그냥 접어두어도 좋다. 약간 수줍은 듯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것 같으면서도, 건네는 질문마다 세심한 대답이 돌아온다. 큰 대회를 끝내고 모처럼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이라 꽤 힘들다고 하면서도, 간간이 부드럽게 웃는 표정을 내내 잃지 않는다. 눈빛에서 피곤함이 아니라 외로운 기색이 살짝 비친 것 같기도 하다. 정상에 오른 이의 권태감 때문일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 특히 골프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과 기자들 사이에서 그는 꽤 좋은 평판을 듣는다. 성공한 뒤에도 옛날 고생할 때와 다름없이 사람 대하는 모습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십 몇 년 전 박세리가 처음 여자 골프 메이저 대회인 < us자오픈 > 에서 우승했을 때,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던 것 같지만 사실 그때 국민들은 박찬호에 더 많이 열광했었다. 박세리의 메이저 우승에 더 높은 경의를 보인 것은 오히려 일본 골프 팬들이었다. 박세리가 일본 골프대회에 참가했을 때, 국내에서보다 훨씬 많은 플래시 세례와 갤러리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었다. 이유는 한 가지, 메이저 우승자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한 일본 언론사의 한국 특파원은 한국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박찬호는 수많은 메이저리거들 가운데 조금 뛰어난 한 사람이지만 박세리는 오로지 한 사람뿐인 세계 최고 메이저 대회 우승자인데 한국 사람들이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며 아쉽다고 쓰기도 했었다.
그때 박세리의 우승 상금은 26만 불 정도였다. 여자 대회 상금으로는 상당한 액수이지만 사실 LPGA 여자대회의 규모는 PGA 남자대회의 십분지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양용은은 2009년 < pga챔피언십 > 우승으로 135만 불의 상금을 받았다. 상금 액수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세계 프로골프에서 PGA 메이저 대회 우승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높은 경지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프로골프 대회 연간 상금왕이 미국 PGA 출전자격 시험에서 간신히 턱걸이 하거나 낙방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 시험을 통과해서 출전자격을 따더라도 매 대회마다 150여 명의 선참자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나마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도 없다. 좀 중요하다 싶은 대회들은 참가 자격을 랭킹 순, 우승 경력 순 등으로 제한하기 일쑤이고 그 가운데서 가장 참가자격이 까다로운 것이 메이저 대회 들이다. < 브리티시오픈(The OPEN) > , < us오픈 > , < 마스터스 > , 그리고 양용은이 우승한 < pga피언십 > 의 네 개 대회가 그것이다.
메이저 대회의 상금은 일반 대회보다 훨씬 많고 무엇보다 역사와 권위가 있기에 세계 톱 랭킹에 드는 선수들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두 참가한다. 코스도 어렵고 갤러리도 몇 배 많으므로 세계 최강의 경쟁자들, 가장 어려운 코스, 구름 같은 갤러리의 움직임과 환호,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두 이겨야 하고, 무엇보다 신의 선택을 받아야만 우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우승한 사람은 다른 대회 우승자와는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우승을 여러 번 했다 해도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으면 초일류 선수 축에 들지 못한다. 단 한 번만 메이저 우승을 해도 소개되는 이름 앞엔 언제나 메이저 우승자라는 존경 어린 호칭이 따라붙는다.
"주제도 모르고 무슨 골프냐"
'작대기질 해서 이 정도면 성공한 셈'이라는 말은 어린 시절 막막했던 형편을 빗대어 하는 이야기일 터다. 알려진 대로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체격이 단단해서 보디빌딩과 운동을 좋아하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우연히 친구 일터에 놀러 갔다가 골프 연습장 '볼보이'를 하게 되면서 골프에 빠져든다. 골프채를 처음 잡은 날부터 흥미를 느낀 그는 연습장이 문을 닫는 야간에 불을 켜고 연습하고, 연습장의 변변찮은 월급으로 부족해서 나이트클럽 웨이터, 공사장 막노동꾼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골프를 익혔다고 한다. 군 보충역 복무 기간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연습을 하고 제주 오라 골프장에서 일과 연습을 병행하여 24세에 KPGA 프로테스트에 합격한다.
"PGA 메이저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쯤부터 했나요?"
"글쎄요. 프로 자격증을 딴 뒤에도 한참 동안은 메이저 대회 우승 같은 건 꿈꿀 형편도 아니었죠. 현실 사정이 너무 급했으니까요. 다만, 저는 그저 좀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욕망은 늘 놓지 않고 달려왔던 거 같습니다."
제주 태생이라 '바람의 아들'이라는 그럴싸한 별명을 얻은 그이지만 가만히 보면 단단히 다져진 근골이 꼭 제주마(馬) 같다. 177cm에 88kg이니 한국사람 치고는 건장한 체격이지만 보통 키가 185cm 이상 되는 PGA 거한들 사이에서 옹골지게 걸어가는 그는 작지만 강인한 제주마의 모습에 영락없다.
그 제주마도 추운 눈밭을 헤매던 어리고 여린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골프를 어떻게 하느냐며 농사나 지으라고 했고 사람들은 '주제도 모르고 무슨 골프냐'고 비웃었다. 어렵사리 프로가 됐지만 먹고 사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다. 프로가 됐다고 1부 투어에서 바로 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눈 딱 감고 골프에만 전념해서 1997년 KPGA 1부 투어에 데뷔한 첫 해 상금랭킹 9위로 신인왕이 됐지만 1년 동안 번 상금은 60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그 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첫째 아이도 낳았으니 생활이 참 막막했을 터이다.
"결혼하는데 돈이 정말 싸게 들었어요. 두 사람 반지, 시계 결혼 예물 다 합해서 100만원으로 다 했으니 알뜰했죠?"
그가 회상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그 이듬해 상금 총액은 1,200만원, 그 다음 해는 1,800만원이었다 한다. 그것도 세금으로 절반 가까이 떼이고 받았다. 그 돈으로 생활을 하고 애도 키우고 골프도 해야 했으니 사정이 어땠는지는 짐작하기도 안쓰럽다. 돈을 벌기 위해 아마추어를 상대로 레슨을 하려고도 했지만 대회에 나가려면 병행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돈이 없으니 아예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끊고 연습만 하면서 2년 넘게 지낸 적도 있는 무명시절이었다. '열 번을 얻어먹으면 한두 번은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 사람 구실 못할 바에야 차라리 만나지 말자'고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그저 공만 쳤다고 한다.
"친구가 여주CC 부속 연습장에 헤드프로로 있었거든요. 여주CC 헤드프로는 김태연 프로님이라고 고마운 선배님이셨구요. 그래서 거의 매일 여주까지 가서 신세 졌어요. 가면 친구 덕에 연습장에서 연습 볼도 마음껏 치고 골프장 맨 막팀 뒤를 기다렸다가 선배님 배려로 필드 라운딩도 했구요. 얻어먹기도 많이 했죠. "
그러나 그 '친구'인 박경구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용은이는 한 번 얻어먹으면 꼭 한 번은 자기가 사야 하는 친구였어요. 매일 골프로 내기를 했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별로 신세 진 것도 없는 셈이예요."
결혼할 때 아내에게 딱 5년만 기다려달라고 했던 그는 2002년 < sbs강전 > 에서 첫 우승을 한다. 골프를 시작한지 꼭 10년 만에 이룬 우승이었다. 그 상금이 2,700만원이었는데 당시로는 처음 벌어본 큰 돈이라 꿈 같았다고 한다.
세 차례나 큐스쿨 - '지옥의 시험'에 들다.
성공하는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하나는 꿈을 점점 키워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꿈을 크게 꾼 사람보다는 작은 꿈을 한 단계씩 키워간 사람들이 어느 순간엔가 큰 꿈까지 실현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양용은은 첫 우승을 한 후 아내에게 다시 5년을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해외에 나가서 좀 더 큰 무대에서 뛰는 선수가 되겠다고…… 그리고 다음 해에 일본 프로골프 퀄리파잉 스쿨(투어프로 자격시험)에 수석 합격해서 일본투어에 진출한다. 데뷔한 2004년 2개 대회에서 우승하고 2005년과 2006년 연달아 1승씩을 보태 4승을 달성한다. 그때는 '정말 한참 잘 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감도 넘쳐서 슬슬 더 큰 무대로 진출하고픈 욕심이 커져가기도 했다. 그리고 막내 돌잔치 하러 귀국한 김에 우연히 참가한 2006년 < 한국오픈 > 에서 뜻하지 않게 덜컥 우승하는데 그 덕에 세계랭킹 포인트가 상승해서 유러피언투어 < hsbc챔피언스 > 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는다.
"생각해 보면 전 참 운이 좋았어요. 중요한 순간에 우연한 기회가 생기곤 했는데 그걸 덥썩덥썩 잘 받아먹은 거죠."
그리고 2006년 < hsbc챔피언스 > 대회에서 그는 덥썩 우승해 버린다. 그 대회는 한국 투어나 일본 투어와는 격이 다른, 세계 골프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유러피언 투어' 대회였다. 더구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참가한 대회였다. 그 전까지 이룬 우승과는 의미도 차원도 완전히 다른 성과였다. 그야말로 '한 방 날린' 것이다. 그 한방으로 그는 유러피언투어 풀시드까지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그 뒤론 쉽지 않았어요. 세계 무대는 만만한 게 아니더라구요."
그는 곧바로 미국 PGA 투어 자격시험인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했다. "1년을 뛰더라도 미국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라고 공언했던 그에게는 당연한 행보였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고 2007년에는 유럽투어 우승자에게 허락된 PGA투어 9개 대회와 유럽투어 대회를 오가며 번갈아 출전해야 했다. 그 해엔 성적도 시원치 않았고 마지막 대회인 < hsbc챔피언스 > 에선 룰 위반으로 실격 당하기도 했다. 다시 PGA 큐스쿨에 재도전하여 어렵사리 합격하고 2008년 꿈에 그리던 PGA 투어에 뛰어들지만 역시 미국무대의 벽은 높았다. < atT페블비치내셔널 > 대회 9위를 최고성적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채 다음해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한 그는 결국 큐스쿨에 또 한차례 재응시해서 아슬아슬한 끄트머리 성적으로 2009년의 '조건부 시드'를 받는다.
그 몇 년간을 양용은은 자기 골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로 기억한다. 2009년 < 소니오픈 > 때는 대기자 신분으로 하와이까지 가서 기다리다 끝내 결원이 생기지 않아 짐을 싸서 돌아온 적도 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도 멋쩍고 해서 대회 기간 내내 하와이에 머물며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공을 치고 퍼팅연습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만든 게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오직 연습 또 연습 밖에 할 게 없더라고 한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조건부 대기선수로 기다리다가 불참자가 생겨서 출전한 < 혼다클래식 > 에서의 우승, 그리고 메이저 대회인 < pga피언십 > 에서 타이거 우즈를 꺽고 우승한 이야기……
운 좋은 골퍼의 '김 새는' 골프
그는 말끝마다 "운이 참 좋았어요."라고 한다.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스무 살 넘어서 골프채를 처음 잡아본 시골 청년이 어떻게 < 한국오픈 > 대회는 물론 일본투어와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 최강의 고수들의 싸움터인 PGA 투어에서 우승하며, 어떻게 메이저 대회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천하의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미스 샷 하나 없이 완벽한 플레이로 역전승할 수 있었겠는가. 타이거 우즈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PGA 선수들은 발걸음 떼기 시작할 때부터 골프 기본기를 익혀온 '모태 골퍼'들이고, 체격 조건도 운동환경도 경제 형편도 훨씬 유리한 이들이며 대회 장소는 그들의 홈 그라운드다. 그 틈에서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한다는 것이 운이 좋지 않고는 어찌 가능한 일일까 말이다. 더구나 그는 메이저 우승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 골프 팬들에게도 '그저 가능성 있는 선수'에 불과했다. 한국에는 그보다 까마득하게 앞서가는 듯하던 선배 최경주가 있었고 당연히 한국사람의 첫 메이저 우승은 최경주의 몫이라고 자타가 공언하던 터였다.
그런데 그가 "운이 좋았다"고 자기를 낮추는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가 정말로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한국 투어에서는 그저 시골뜨기를 면한 정도로 보이던 그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 최고의 메이저 챔피언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니 당시의 동료, 선배들 가운데는 적응이 잘 안 되는 사람도 있겠다. 게다가 "운이 좋았다"고 하니 그들 가운데는 자신의 '운 없음'을 한탄하는 이도 있겠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PGA 작은 대회 우승 한 번만 해도 영웅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는데, 그가 메이저 챔피언이 되고도 영웅처럼 굴지 않고 옛날 모습 그대로 옛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메이저 챔피언을 꿈꾸는 이들이 '김 새는' 기분도 가질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골프 스타일도 그 '김 새는' 느낌에 한 몫 하는 듯하다.
"제 골프가 멋있지는 않잖아요. 로리 맥일로이 같은 아이들 스윙 보면 제가 봐도 아름다운데 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죠. 남들이 보기에는 잘 치는 거 같지도 않은데 어찌어찌 해서 핀 근처까지 가고, 퍼팅 스트로크도 이뻐 보이지 않는데 슬그머니 파나 버디를 하고, 그러다가 보면 탑텐에 들고 우승도 하고, 뭐 이러니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겠죠."
그의 골프는 그의 말대로 첫눈에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파워풀한 스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플레이 스타일이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맥일로이처럼 영웅적이지도 않다. 영어 소통이나 플레잉 매너 연출이 세련된 것도 아니고 리액션도 별로 멋 없게 한다. 그런데 그는 그런 골프로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 pga챔피언십 > 에서 우승한 뒤 타이거 우즈와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칠 때 안 떨렸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타이거 우즈가 골프채로 나를 때리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두려울 게 뭔가." 라는 유명한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 질문을 똑같이 다시 하니 이렇게 말한다.
"성적이 좋은 날은 그냥 제 경기에 몰입하는 날입니다. 준비가 잘 된 날은 누가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잘 모를 만큼 집중이 잘 돼요. 그날은 마음이 편했어요. 잃을 게 없다. 세계 최고 선수와 마음껏 쳐보자. 이런 기회는 돈 주고도 못 얻는다. 그런 마음을 먹으니 두려울 게 없고 제 경기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그런 날 사고를 치는 거죠."
큰 경기에 발휘되는 집중력
그러나 그는 메이저 챔피언이 된 뒤로는 PGA 투어에서 다시 우승을 거머쥐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원아시아투어 < 볼보차이나오픈 > 과 < 한국오픈 > 에서 우승하고 올해 < 혼다클래식 > 에서 준우승, < us픈 > 에서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로리 맥일로이와 겨루다 공동3위를 했지만 미국 투어 다른 대회에서는 기대만큼의 일관성 있는 성적을 내지 못해서 특별히 잘하고 있다는 느낌은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 < 한국오픈 > 에서는 마지막 날에 무너져 선두와 11타 차로 벌어지며 4위로 쳐졌다. 얼마 전 벌어진 대륙간 대항전 < 프레지던츠 컵 > 대회에서도 1승 3패를 했으니 메이저 챔피언에 걸맞는 성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세계랭킹도 44위로 밀려서 15위인 최경주는 물론 24위인 후배 김경태보다 아래에 있다. 정말 그의 말대로 메이저 챔피언은 '운'이 많이 따라서 된 것일까.
올해 7월에 열린 한일 프로골프 대항전 < 밀리언야드컵 > 에서 그가 플레이 하는 모습을 직접 따라다니며 본 적이 있다. 작년 한일 대항전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아쉬운 1점 차 패배를 당했다는 소식에 PGA 대회 몇 개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청해서 대표팀에 합류한 양용은은 대회 기간 3일 내내 압도적인 내용으로 전승을 기록했다. 그때 느낀 점은 메이저 우승자는 역시 '클래스'가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냥 슬슬 치는 것 같은데도 이시카와 료, 가타야마 신고 등 일본의 골프 영웅들을 압도했다. 객관적인 실력차도 있겠으나 한일 국가대항전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집중하게 한 것 같았다. 꼭 이기겠다는 의지, 국가를 대표한 팀의 맏형이라는 책임감이 경기 내내 그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그때 보면서 '양용은에게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구나. 집중력이 살아나면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내공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얼마 뒤 미국에 돌아가서 그는 < us픈 >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경기하며 3위를 기록한다. 막판에 맥일로이가 너무 멀리 도망가서 쫓아가다 맥이 빠지는 바람에 저지른 실수로 3위로 내려앉았지만 충분히 준우승은 할 수 있던 경기였다. 메이저 대회에서 그 정도 성적은 사실 훌륭한 것이다. 역시 큰 경기에 집중력이 강한 선수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타이거 우즈를 망가뜨린 책임을 지시오."
"이제 마흔 살을 넘어가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운 목표가 있나요?"
"얼마나 더 투어를 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승도 몇 번 더 했으면 좋겠고, 되도록 오래 선수 생활 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해야죠."
좀 더 큰 포부를 말해주기 기대했으나 좀 맥 빠지게 평범한 어투로 이야기 한다. 그는 잘 하겠다는 말을 근사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은 그냥 소박하게 하고 행동으로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결국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작대기질로 이만하면 성공한 거죠' 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타이거 우즈가 양프로한테 진 다음부터 기가 빠진 것 같은데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좀 그런 것도 같은데요(웃음)……어떻게 책임지죠?"
"양프로가 타이거 우즈를 대신하는 방법 밖엔 양프로가 할 수 있는 게 없죠."
(웃음……)
웃을 이야기만은 아니다. 타이거 우즈가 부진에 빠지면서 세계 프로골프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갤러리는 줄어들고 대회 스폰서는 흥행 추이를 지켜보면서 후원의 지속 여부를 저울질 하고 있다. TV중계 시청률은 절반 가까이 뚝 떨어지고 광고 수입도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골프 시장이 지금만큼 큰 데에는 타이거 우즈 공이 결정적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번 < 프레지던츠 컵 > 에서 우리 선수가 들어있는 팀과 타이거 우즈가 든 팀이 경기를 할 때 타이거를 응원하는 한국 골프 팬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일 만큼 세계 골프계는 영웅의 부활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타이거 우즈는 양용은에게 패하기 전에는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져 본 적이 없는 불패의 영웅이었다. 메이저 대회에서만 14번 챔피언 조에 들어서 14번 모두 우승 했다. 15번 째에 양용은이 그 기록을 깼고 어쨌든 그 뒤로 타이거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버렸으니 그냥 우연으로 볼 일 만은 아니겠다. 섹스 스캔들 탓이라고 하지만 그런 추문이 세상에 드러날 만큼 타이거의 자기 관리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라는 뒷얘기도 들린다. 그러니 양용은이 '작대기질 해서 이만하면 성공한 편'이라고 만족하는 것은 어쩌면 무책임한 발뺌이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무협지 같은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영웅을 쓰러뜨린 자는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 방법은 두 가지다. 쓰러뜨린 다음 곧바로 은거를 해서 전설로 남든지 아니면 계속 영웅적인 승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애매한 중간 자리는 없는 것이 영웅의 세계이고 그 책임은 자기 스스로 벗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웅은 이미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인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이 된 순간 이미 그는 자기 혼자만의 양용은이 아니라 그에 환호했던 사람들의 대리자가 되어버렸고, 사적인 개인으로는 당분간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다. '이만하면 성공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는 순간, 그는 혼자 소박하게 행복해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미 사람들이 기억하고 원하는 양용은은 아니게 된다.
영화 스파이더 맨의 유명한 대사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말처럼 그는 이미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진 영웅이 되었기에 과거의 소박한 양용은으로 자유로이 돌아가기 어렵다. 이제는 그가 '아직 나는 배가 고프다' 하고 갈망해야 진정성 있는 양용은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가 그저 타이거 우즈를 경기에서 이겼을 뿐인데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생뚱맞은 비약일 수도 있겠다. 영웅이라는 거창한 표현도 요즘 같은 대중 권력의 시대에 뜬금없어 보일 수 있으며, 골프라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영웅의 운명이 어떻다느니 하냐고 실소를 머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프로골프 투어라는 것이 쇳덩이 무기를 들고 주유하는 검객들의 세계와 흡사할진대 우리는 프로골퍼들이 등장하는 투어 대회를 보면서 무협지에 나오는 강호 영웅들과 비슷한 캐릭터를 투영하며 환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의 들머리에 적은 것처럼, 골프라는 것이 원래 '바보들의 스포츠'이니 골프를 말하다가 바보 같이 흥분해서 하는 이야기로 이 정도는 약과다.
어쨌든 양용은은 '이만하면 성공'이라는 생각보다는 '아직 멀었다'는 갈망으로 매진하면 메이저 대회 몇 번은 더 우승하는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는 골퍼다. 얼마 전 < 프레지던트컵 > 대회에서 성적과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은 중에도 타이거 우즈 팀과 상대가 되어 맞붙은 셋째 날 포볼 경기를 이겨냈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메이저 영웅급' 집중력을 본다.
후배들 보살피려 시작한 사업
"좋기도 하지만 좀 답답할 때도 많아요."
양용은이 한국에 설립한 회사 직원의 말이다. 양용은은 지난해부터 한국에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물론 그는 투어 대회에 전념하고 회사는 몇 명의 임직원들이 맡아서 운영하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회사 일을 챙긴다. 회사는 프로골퍼를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매니지먼트 사업과 골프대회 운영 대행 등의 일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직원이 '답답하다'고 하는 것은 도통 이익에 신경 쓰지 않는 그의 사업 방향 때문이다.
"어차피 후배들 키우고 보살피려 한 일이니 돈 남기려 하는 거 아녜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돈 좀 손해 보더라도 PGA 대회처럼 선수들을 잘 배려해서 진행하는 대회 진행도 선보이고 싶어요. 우리나라 대회에 오랜만에 참가해 보면 솔직히 동네 잔치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 안에 드라이빙 레인지도 없는 데가 많아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사설 연습장에서 몸을 풀고 와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선수들 식사 장소에 대한 배려도 중구난방이고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될 일인데 큰 무대에서 어떻게 하는지 직접 체험해본 사람은 훨씬 잘 할 수 있는 거죠. 이동식으로 설치할 수 있는 소형 드라이빙 레인지 같은 것도 있거든요. 그런 것도 제 돈 들여서라도 갖다 놔주고 싶고, 뷔페 서비스를 불러서라도 근사하게 먹여주고 싶죠. 대회 진행 대행 사업은 그런 생각 때문에 하려는 거에요."
나중에 따로 들어보니 직원들이 선뜻 이해 못하는 게 또 있었다. 이번에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그가 갑자기 직원들을 불러서 어딘가 가자 했다고 한다. 어딜 가나 싶었는데 뭘 잔뜩 사서 싸 갖고 장애우 시설에 찾아갔던 것이었다. 가서 선물도 하고 그냥 하루 종일 장애우들과 놀다 왔는데 양용은 혼자만 너무 스스럼없이 장애인들과 살 부비며 어울리는데, 직원들은 어색하게 겉돌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약간 볼멘 소리를 한다. 기자들한테도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참 못 말린다'고 하면서도 직원들은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다.
바보가 되라, 영웅이 되라
대면 인터뷰를 마치고 글을 쓰는 중에 호주에서 대륙간 대항전 < 프레지던트 컵 > 이 열리고 그 개막식에서, 2015년 프레지던트 컵의 한국 개최 확정 소식이 발표되었다.
골프라는 스포츠는 아직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종목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상류층 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라고 비뚜름하게 보기도 한다. 실제로 골프는 '바보들의 운동'이라서 골프를 하는 사람은, 운동으로서의 골프 자체의 매력에 빠져서 온통 스윙과 필드 생각밖에 못하는 경우도 많고, 골프를 하는 사회적 모임 밖에 있는 다른 이들의 가치를 헤아릴 여유를 잃곤 한다. 골프를 한다는 것만으로 우쭐대는 좀 모자란 사람이 간혹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심지어는 골프가 경제적 양극화의 상징처럼 매도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우리나라 땅 안에 지어진 골프장은 400여 개를 넘어서고 있고, 축구로 치면 월드컵에 버금갈 만한 행사인 < 프레지던트 컵 > 이 국내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 큰 대회를 직접 치른다는 것은 선수들의 골프 경기력은 물론 산업으로서의 골프를 크게 발전시킬 돌파구적인 기회이기도 하고,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 보면 골프가 양극화의 상징으로서의 이미지를 깨고 상식적인 여가문화로 크게 대중화될 수 있는 문화 변혁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골프라는 것이 일부에게만 즐거움을 안기고 다수에게 열패감을 주는 경우에는 거만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비록 모든 이들이 직접 즐기지는 않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계기가 마련될 때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 프레지던트 컵 > 대회 같은 이벤트가 열린다는 것은, 2002년 월드컵 때 경험했듯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상을 여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겉치레 행사와 가식적 연출로는 불가능한 일일 터이지만.
이런 때에 양용은 같은 사람은 골프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은 존재일 수 있다. 그는 이미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 무대에서 꿈을 이루었고 그 성공 가운데서도 겸손함으로써 골프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을 듣고 있으며, 무엇보다 메이저 대회 우승자라는 영웅적 배경을 활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국내 유일의 존재이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거다"라고 소극적이 되는 순간 할 일이 별로 없겠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고 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국민적 결집력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겠다.
쓸데 없는 사설이 좀 길었다.
하지만 양용은은 아시아에서 최초이고 유일한 메이저 챔피언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메이저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이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이룬 성공 스토리의 재탕이 아니라 앞으로 이룰 새로운 승리의 모습일 것이다.
양용은. 그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은 대개 그의 변함없음을 칭송한다. 메이저 챔피언이 되어 성공한 뒤에도 국내에 돌아오면 옛날처럼 꾸밈 없이 옛사람들을 대한다고 한다. 그는 골프도 굳이 멋지게 하려 하지도 않고 실속을 우선한다. 겉모습과 매너도 세련된 연출과는 거리가 좀 있게 투박하다. 실제 속을 들여다 보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옛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그것을 그의 큰 장점으로 본다.
그가 그 장점을 그대로 밀고 나가길 기대한다. '이만하면 성공'이라는 생각은 접고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처럼, 처음 프로가 됐을 때처럼, 처음 바다를 건널 때처럼, 첫 우승을 했을 때처럼, 변함없이 바보처럼 골프만 하기를. 골프가 바보들의 운동이라는 것은 절반은 농담이고 조롱이고 자조이지만, 양용은 그만은 바보가 되어 골프에만 미쳐서 다시 처음처럼 매진하고, 다시 계속 이기기를 기대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 일리아드 > 에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오딧세우스는 무적의 전사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트로이로 함께 참전할 것을 청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트로이로 떠나면 죽을 운명이라며 만류한다.
"떠나지 않고 남으면 평범한 행복을 누릴 것이고, 떠나면 전사하되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분연히 참전한다. 그는 영웅의 운명이었다.
양용은은 이미 골프의 역사에 또렷하게 기록된 영웅적 존재이다. 그 영웅의 크기와 깊이가 앞으로 어떻게 가늠되어 남을 지는 아직 모른다.
글로 쓰다 보니 인터뷰가 칼럼이나 사설처럼 되어버렸다. 거창한 비유와 혼자 목소리 높이 주장이 살짝 생뚱맞더라도, 골프가 '바보들의 스포츠'라는 것을 감안하여 조금은 이해하여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