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 두 전설 마운드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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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 두 전설 마운드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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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잔치’를 앞둔 프로야구계가 비통에 잠겼다. 시즌 막바지 일주일 간격으로 날아든 비보 때문이다. 지난 7일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지병인 간암으로 눈을 감더니 14일 오전에는 ‘무쇠팔’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우리 곁을 떠나간 시간만큼 비슷한 삶을 살았다. 나이도 업적도 심지어 인생의 굴곡까지도 빼다 박았다.

1316395449-57.jpg 최동원, 한국시리즈 나홀로 4승…장효조, 전설의 통산 성적
선수시절 승승장구→보복성 트레이드→2군 감독→별세


프로야구 초창기를 이끈 ‘불세출의 천재’ 최동원과 장효조는 묘하게 비슷한 삶을 살았다. 1958년생인 최동원과 1956년생 장효조는 나이차가 두 살이었지만 프로 데뷔년도(1983년)는 같았다. 프로에 뛰어들기 전 아마야구를 평정했고 각자 고향팀인 롯데와 삼성에 입단했다.
이들의 프로 생활은 강렬했다. 최동원은 1984년 불멸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284.2이닝을 던지는 동안 27승13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했고, 223개의 탈삼진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한 시즌 최다 기록이다.

선수시절 기록 ‘전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4승을 홀로 책임지기도 했다. 7전4선승제로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린 투수는 한국 프로야구 30년사에 최동원이 유일하다. 구원승 한 번을 제외한 3승이 선발 완투승이다.

장효조 역시 네 차례 타격왕 수상을 비롯해 0.331(역대 1위)이라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통산 성적을 기록했다. 프로 10년간 정규시즌 MVP 1회, 타격왕 4회, 골든글러브는 5회 수상했고, KBO가 프로야구 3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에서는 이만수, 한대화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아 외야수 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뛰어난 선구안과 최고의 배트컨트롤을 지닌 장효조는 어떤 코스로 들어오는 어떤 구질이든 다 쳐낼 수 있다고 해서 ‘타격의 달인’으로 불렸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두 선수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1989시즌을 앞두고 벌어진 이른바 ‘선수협 파동’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프로야구 선수들의 처우는 스타급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열악한 수준이었다. 노동조합은 아니더라도 프로야구선수에게도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기구나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들은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했다. 그러나 끝내 실패했다. 결국 구단에 괘씸죄로 낙인찍혔고 장효조와 최동원은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하게 된다.

롯데는 삼성에 최동원-오명록-김성현을 내주는 대신 김시진-전용권-오대석-허규옥을 받았다.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트레이드였다. 두 구단은 한 달 뒤 또다시 메가톤급 이적을 발표하게 된다. 이번에는 장효조를 중심으로 한 2대2 트레이드(삼성 장효조 장태수↔롯데 김용철 이문한)가 그것이었다.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된 두 선수는 이후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최동원에게 더 이상 다이나믹한 투구폼에서 쏟아지는 150km를 넘나드는 직구와 폭포수 같은 커브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최동원은 삼성에서의 2년간 고작 7승만을 올린 채 미련 없이 현역 유니폼을 벗어던졌다.

타격의 달인 장효조도 방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적 후 2년간 부진을 거듭했다. 1991년 타율 0.347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한 시즌을 더 뛴 뒤 은퇴를 결정했다.

은퇴 후에도 둘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최동원은 방송 출연 등 잠시 외도를 하다 2001년 한화의 투수코치로 야구계에 복귀했다.
장효조도 1994년 롯데 코치로 부임한 뒤 2000년 삼성의 타격 코치와 스카우트를 거쳐 지난해 2군 감독으로 정식 취임했다.

트레이드 후 쇠락

이후 두 전설은 눈을 감기 전까지 프로 1군 감독을 소망해왔다. 선수 시절 경력만 놓고 보면 현역 감독들 중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는 이만수 SK 감독대행 정도가 유일하지만 모진 풍파를 겪었던 두 사람에게는 끝내 1군 감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최동원은 끝내 고향팀인 롯데에 돌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에 대해 롯데는 고인을 기리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그를 추모하는 방법을 결정 하겠다”며 “명예감독으로 임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남은 홈경기 중 하루를 ‘최동원 데이’로 명명하는 것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효조와 최동원. 둘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무엇보다 프로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밑거름이 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또 이들이 있어 야구가 즐거웠고, 그들이 떠난 빈자리가 휑하리란 점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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