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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 ①존 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

일요시사 0 5079

“당신만의 풍경과 별을 찾을 수 있는 기회”

[일요시사 사회팀] 전창걸 영화칼럼니스트 = 개그맨, 영화인, 영화평론가 등 다양한 옷을 입고 한국 대중문화계를 맛깔나게 했던 전창걸이 돌아왔다. 한동안 대중 곁을 떠나 있었던 그가 <일요시사>의 새 코너 ‘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의 영화칼럼니스트로 대중 앞에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회자되는 MBC <출발! 비디오여행>의 ‘영화 대 영화’ 코너에서 전창걸식 유머와 속사포 말투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번에는 말이 아닌 글로써 영화로 보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존 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이다.

존 카니는 거칠고 투박하기에 오히려 덜 가공한 느낌의 음악 영화 <원스>를 연출한 감독이다. <원스>는 2007년 가을 감수성 풍부한 여인들의 심장을 녹여내고 통기타 좀 만지는 사내들의 18번을 ‘폴링 슬로우리’로 바꾸는 아리도록 포근한 긴 여운을 아직까지 퍼뜨리고 있다.

존 카니의 귀환

그리고 7년이 지난 2014년 여름 단언컨대 연기력 최절정의 키이라 나이틀리를 품고 <비긴 어게인>으로 돌아왔다. 굳이 강조하지 않고, 애써 긴장시키려는 그 어떤 흔적도 없지만 이 영화는 가슴을 후빈다.

“아 다음 장면은 이렇게 전개될지도 몰라…둘이 사귈까? 그녀의 남자 친구는 돌아올까? 아냐 안 만났으면 좋겠어…” 중간 중간 습관적이며 경험에 근거한 예측은 어김없이 빗나가고 영화는 아주 깨끗하게 막을 내린다.

섣부른 예측을 몇 번 하다 실패하며 부끄러움을 느끼긴 했지만 정말 좋은 영화다. 개인적으로 살면서 마음이 각박해진 순간 몇 번이고 돌아볼 영화리스트에 낙점했을 정도다.

좌절의 벼랑 끝에 선 남녀의, 우리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실현 가능한 신선한 도전. 어디선가 스칠 것 같은 현실 속의 이상형을 연기하는 키이라 나이틀리. 몇 곡의 음악 제목과 가수를 떠올리며 소통되는 풍경들까지 이 영화는 스토리보다 그들이 함께한 풍경이 두고두고 마음에 간직될 듯하다.

“내가 이래서 음악을 좋아해. 가장 따분한 순간까지 갑자기 의미를 갖게 되니까. 이런 평범함도 음악을 듣는 순간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해버려. 그게 음악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나이가 들수록 이런 진주들이 점점 보이지 않아. 진주까지 가는 줄이 점점 길어져…이 순간이 진주야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이 모든 순간들이 진주였어.”

좌절의 벼랑 끝에 선 남녀의 신선한 도전
강제적 자극의 세상…가슴 적시는 영화

우리는 강제적 자극의 세상에 살고 있다. TV를 틀면 수 없이 반복되는 광고와 가공된 뉴스들, 정적을 깨는 휴대폰 스팸메일과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뻥치는 광고전화까지…(혹시 케이블 TV 본 콘텐츠와 광고의 볼륨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건 느끼시는지…광고 시간이 되면 볼륨이 엄청 커짐)

개인적으로 다른 동네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는 횡단보도에 네모난 말뚝의 기계가 양쪽으로 설치돼서 신호 전에 대기선을 약간만 넘어도 큰소리로 ‘위험합니다. 뒤로 물러나 주세요. 위험합니다. 뒤로 물러나 주세요’ 하고 나온다.

그 소리는 사람이 열 명이 대기하다가 한 사람이 무심코 선에 걸쳐도 나오고 스무 명이 기다리다 한 사람이 무심코 걸쳐도 나오기 때문에 순식간에 횡단보도에 있던 사람의 생각을 부수고 원치 않는 집중을 시킨다.

‘아! 이건 뭐지?’ 무섭다.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돈 버는 사람이야 좋겠지만 그 명분의 결과 덕분에 깨지는 사유가, 그리고 그런 현상의 자극을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는 사람들이 무섭다.

버스를 타면 젊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어폰을 끼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버스가 제공하는 라디오 소리와 몇 년 전부터 달린 모니터에 시선을 두고 있다. 이어폰을 두고 버스를 탄 날 잘못 걸리면 별 관심 없는 라디오 소리를 크게 들으며 목적지까지 생각 없이 가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약속 시간이 남았을 땐 가끔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를 타곤 한다.

우린 그렇게 무차별적 공급용 소리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소리는 내게 공감을 자아내고, 어떤 소리는 도망치고 싶을까? 나의 답은 단연 풍경이다.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세뇌용으로 사적인의 탐욕을 채우려는 목적적 가짜풍경은 비극을 만들고 진실을 조롱하며 통제에 집착한다. 참 풍경은 존재하는 것의 자연스러운 조화의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발견한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과 질문들이다.

그 아름다운 추억과 질문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고, 연극, 영화, 드라마가 된다. 또 집이 되고, 밥이 되고, 평화가 되고,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며, 그리움이 되고, 사랑이 된다. 그리하여 참 풍경을 전달하는 메신저는 저절로 사람들 가슴에 영원히 그리운 별이 되어 남게 된다. 이 가을 나는 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에 별은 하나 새겼다.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사람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 수 있다니 참으로 흐뭇한 시간이다.

가슴 적시는 영화

요즘 뭔가 갑갑하면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 사운드클라우드, 팟캐스트를 뒤져 취향의 음악 목록을 만들어 놓고 때에 따라 바꿔서, 때론 새로운 장르의 음악까지 두려움 없이 듣는다.

음악이 나오는 순간, 그 이전까지 저절로 생각되던 원치 않는 복잡한 잡념이 사라지고 꽤 괜찮은 시간과 공간이 나타난다. 그 시공은 한 치 변함없지만 생각을 멈춘 마음이 바라보는 풍경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간을 일부러 내서 영화 <비긴 어게인> 꼭 보시고,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여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시라. 더 시간이 나시면 영화 <원스>를 안 본 사람은 꼭 보시고 스토리로만 기억하는 봤던 사람들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더 보시라. 그리고 당신의 풍경, 당신의 별을 찾길 바란다.

<www.전창걸.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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