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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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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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이 7년전 '운명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한국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오승환이 지난 12일 대구 KIA전에서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한 뒤 팬들에게 머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대구=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삼성 오승환이 7년전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뀌었을 지 모른다.

오승환은 지난 12일 개인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한국프로야구의 최연소 및 최소경기 신기록. 아울러 한-미-일 최소경기 200세이브 세계기록이다. 경기후 마운드에 다시 올라가 인사하는 오승환은 수줍은 듯 자세를 낮췄지만, 팬들은 그날 새로운 역사에 환호했다.

오승환에게도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모든 드래프트 대상 선수들이 그렇듯, 오승환도 프로 팀으로부터 지명받는 것 자체가 환희였던 때가 있다. 그리고 그즈음 한국프로야구 최고 마무리투수의 탄생 스토리가 있었다.

▶수술, 그것도 국내에서

2001년 단국대 1학년 재학중에 오승환은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훗날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이 오승환을 외면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게다가 오승환은 그 유명한 미국 LA의 조브클리닉도 아닌, 국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삼성 관계자는 "오승환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높지 않았다. 수술받은 것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선수가 재기할 가능성이 매우 낮게 보였던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미국도 아닌 국내 병원에서 수술받았다. 오승환은 크게 주목받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삼성은 2004년 여름에 열린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오승환을 2차 1라운드로 지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오승환은 대학 3학년인 2003년 가을부터 다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공을 던진다는 걸 확인한 삼성 관계자가 적극 추천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구단 내부에서도 '긴가민가' 분위기였다고 한다.

▶운명을 결정지은 간이 테스트

당시 프로야구에는 연고지역 선수를 우선으로 뽑는 1차지명 제도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구-경북 지역은 우수선수들이 많지 않았다. 어찌보면, 삼성 입장에선 전년도 성적 역순에 따라 뽑을 수 있는 2차 1라운드 지명권이 더 중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2차 1라운드 지명권을 팔꿈치 수술 경력의 투수에게 쓴다고?' 삼성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때였다. 당시 삼성 트레이너가 의견을 냈다. "수술 경력이 있어도 오른팔을 구부려 오른 어깨에 손이 닿으면 괜찮다. 그러면 던질 수 있다."

또다른 관계자가 급히 파견됐다. 당시 단국대와 서울 구단의 연습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모처였다. 남들 시선을 피해 야구장 밖에서 간이 테스트를 실시했다. "승환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해보자. 오른쪽 팔 구부려서 오른 어깨에 손을 대봐라."

이번엔 오승환의 기억. 오승환은 "그때 그런 테스트를 받았다. 손이 쉽게 닿았다. 왜 그걸 하는지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OK. 삼성은 그해 드래프트에서 오승환을 2차 1라운드로 지명했다. 1라운드 전체 순번에선 5번째였다. 삼성의 전년도 종합순위가 4위였기 때문. 이후 오승환은 추계리그에서 펄펄 날았다. 타구단들이 땅을 쳤다.

▶만약 삼성도 지명하지 않았다면

그때 오승환의 오른손이 어깨에 닿지 않았다면? 팔이 굽어있는 프로야구 투수들이 많다. 손이 어깨에 안 닿는 사례로 이어진다. 부상이나 수술 후유증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속구를 던지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투수의 던지는 팔은 포크레인의 움직임과 비슷하다. 어깨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관절이 움직여 마지막 순간 공을 챈다. 그중 한 관절이 꺾여 고정돼있으면 당연히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다.

그랬다면 삼성이 지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만큼 부담 가는 선택이었다. 그때 분위기로 봤을 때 1라운드는 그냥 통과됐을 것이다. 2차 2라운드에서 타구단에 뽑혔을 수 있고, 혹은 5,6라운드까지 밀렸을 수도 있다. 심지어 끝내 지명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두산 김현수가 그랬듯이 말이다.

모든 선택에는 가중치가 뒤따른다. 2차 1라운드로 지명받는 선수는 초기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삼성은 오승환을 중용했고, 그는 첫시즌 중반부터 주전 마무리투수가 됐다. 삼성은 이미 불펜 최적화가 진행중인 팀이었다. 스스로 밝혔듯, 삼성은 오승환이 뛰기에 가장 적합한 팀이었다.

▶오승환 "나는 그저 야구만 했다"

오승환과 뒤를 이은 몇차례 사례 덕분에 그 국내 병원은, 이제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의 대명사가 됐다. 미국 대신 국내 수술을 택하는 선수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질문했다. "삼성의 지명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오승환은 "사실 그 시기의 선수들은 어떤 팀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지명받느냐 못 받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질문을 바꿨다. "'끝내 지명을 못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었는가." 오승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었다. 지명에 대한 걱정 보다는 그냥 훈련만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당시 참 바보같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던 훈련만 했다."

수술 이듬해인 2002년, 오승환은 재활센터 일정을 마치고 단국대 숙소로 돌아가다가 주택가의 함성을 듣고서야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몰입하는 스타일. 드래프트 걱정 보다 그저 묵묵하게 훈련했을 뿐이다.

오승환의 인생과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바꿔놓은 몇 가지 우연적인 요소는 분명 있다. 하지만 모든 우연을 관통해 흐르는 단 하나의 필연이 있다. 오승환은 매순간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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