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는 미국 본토에서도 최고의 인기 골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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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는 미국 본토에서도 최고의 인기 골퍼였다.<박지은>

일요시사 0 1707
한때 그는 미국 본토에서도 최고의 인기 골퍼였다.

비록 세계 랭킹 1위는 하지 못했지만 그의 스윙은 항상 힘이 넘쳤고 도전적이었다. 유창한 영어와 반듯한 외모, 그리고 골프에 대한 강렬한 눈빛은 한국은 물론 미국의 골프팬까지 사로잡았다.

2004년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곤, 관례대로 연못에 몸을 던졌을 때, 전세계 남성 골프팬들은 그의 물에 적신 매력적인 자태에 숨을 멈추어야 했다.

미국 골프기자들은 그에게 '그레이스 박(우아한 박)'이라는 애칭을 아낌없이 붙여 주었다.

박세리(35), 김미현(35)과 함께 한국 여자골프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박지은(33·사진)이 아무 미련 없이 골프채를 놓았다. 이미 미국무대를 은퇴한다고 발표했던 박지은은 20일 자신의 아버지(박수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음식점 '삼원가든'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앞으로 국내대회에도 출전하지 않겠다"고 정식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은은 또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네살 연상의 사업가 김학수씨와 11월27일 결혼한다"고 밝혔다.

박지은의 표정엔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강해 보였다. "타지에서 20년 넘게 살다보니 많이 지쳤다. 몸도 성치 않다."

박지은은 다른 골퍼보다 일찍 미국 땅을 밟았다. 서울 리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공부를 잘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배운 골프도 남들보다 뛰어났다. 아버지는 스탠퍼드대학을 가라고 했지만, 박지은은 골프 명문 애리조나주립대학을 선택했다. "수업을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4년 동안 4점 만점에 평균 3.35를 유지했다."

박지은은 전미 주니어랭킹 1위, 미국 아마추어랭킹 1위, 미국 대학랭킹 1위의 성적을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다. 유에스(US)아마추어선수권 우승, 웨스턴아마추어선수권 우승, 위민스트랜스내셔널 우승을 하며 전미 여자아마랭킹 1위 등을 기록했다.

그런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안고 2000년 프로에 데뷔한 박지은은 통산 6승을 거두긴 했으나 아쉽기만 하다. 고교 시절 체육수업 때 허리를 삐걱했는데, 제대로 고치질 않아 고질병이 됐다. "사실 난 세리, 미현 언니보다 더 힘들었다. 가정은 부유했지만 학업과 골프를 같이 해야 했고, 어린 나이에 혼자 미국 가서 적응해야 했다. 다른 프로들은 10년 객지 생활 했다면 저는 타지에서 20년 넘게 생활해야 했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갑자기 은퇴하는 특별한 이유는 있을까?

"미국에서 활동한 한국 여자골퍼 1세대로서 흐지부지하게 사라지는 것보다 자존심있게 물러나고 싶었다. 올 하반기에 한국 골프투어에 참가하려고 한때 마음을 먹기도 했다. 최고령 신인왕을 노려보았지만…" 우승 가능성 없는 선수생활을 하기는 싫다는 것이다.

40대를 훌쩍 넘기면서도 전성기를 맞는 미국 골퍼들을 보면서 박지은은 느낀 것이 많다.

"그들은 진정으로 골프를 즐겼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슬럼프면 못하는 대로, 때로는 맥주도 마시고, 즐겁게 골프를 했다. 반면 우리는 죽고 살기로 한다. 그러니 생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본인도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이제 아무리 잘 쳐도 5언더파 이하로 못 친다. 후배들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미국 골프시장은 아직도 한국 프로골퍼나 꿈나무들에겐 '약속의 땅'이다. 그런 후배들에게 들려줄 충고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 미국여자프로골프 시장은 미국 광고주들에겐 큰 매력이 없다. 한국 선수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프로답게 치는 골퍼들을 보기 어려워서다. 점수에만 연연하고, 소극적인 골프를 할 때 팬들은 외면한다."

박지은은 세계랭킹 2위까지 했다. 그래서 아쉽다. 정상의 골퍼가 느끼는 긴장감과 카리스마를 느끼고 싶었다.

은퇴 후 가장 확실한 계획은 현재로서는 결혼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오빠이다. 미국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국제전화로 많은 격려와 사랑을 주었다. 고려대 석사과정 논문도 마무리하고 싶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에서는 박지은의 은퇴 소식을 듣고 협회에 와서 미디어 관련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박지은은 사양했다. 은퇴 경기도 사양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짐을 쌌다.

한국 여성의 매력을 미국에 흠뻑 뿌린 박지은이 환하게 웃는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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