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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일요시사 2013Mon, 02 Sep 2013 17:21:09 +1000pm95Australia/SydneyMon, 02 Sep 2013 17:21:09 +1000Australia/Sydney02
“단순히 행복을 위한 행복은 참 행복이라 말할 수 없다. 참 행복은 우리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단순한 무소유의 삶이 참 행복이 아니라, 진리 안에 참 자유가 있고, 참 행복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서 일도 하고, 결혼도 하고, 여러 취미생활도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운동도 하고, 건강도 챙긴다. 돈도, 건강도, 외모도, 일도, 사회적 지위도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생활도 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이란 인간의 지상명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다 행복한 삶을 찾아 뉴질랜드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건, 자신의 삶의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건,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을 위해서건, 보다 행복한 삶을 찾아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우리 이민자들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쉽지 않은 큰 결단을 하고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기득권을 뒤로 하고 고향을 떠난 지독한 사람들이 이민자들이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모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번 죽는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나고, 뿌리를 내리고 살던 모국을 떠난다는 것은, 모국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터전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뜻에서 이민자들은 한 번은 죽은 사람들이다.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한 번은 죽은 사람들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죽을 줄도 아는 사람들이 이민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민자들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모든 것을 버리고 온 것 같지만, 실은 버린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몸만 이민을 왔지, 기존의 가치관은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이 아닐까? 행복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민자들이야말로 행복에서 더 멀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으려면 제대로 죽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긍정의 힘’이란 책이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언제나 입에서 불평불만의 소리와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사람이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가급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의 힘은 위대하다. 가급적 ‘yes’라고 말하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no’라고 말하지 말라. ‘yes’는 당신을 행복으로 이끌 것이고, ‘no’를 많이 말할수록 당신은 행복에서 그 만큼 멀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이 사실을 믿고 믿음으로 구하라. 그러면 당신의 삶은 행복해질 것이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조차도 인간의 행복을 도와주시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시다. 나의 행복을 위해 밤낮없이 수고하고 애쓰시는 하나님,,,, 정말 감사한 하나님이시다. 당신도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런 하나님을 만나시라! 그런데 이런 행복지상주의가 문제다. 돈이나,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나, 건강이나, 심지어 종교도 행복의 조건이 되는 한 진정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큰 행복은 불행의 원천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의 원천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불행의 원천은 무엇일까?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하고, 더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행복은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많은 철인(哲人)이나 종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소유의 삶에 있는지도 모른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는 곳에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행복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인가? 행복이 유일한 목적이 될 때, 진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예수는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단순히 행복을 위한 행복은 참 행복이라 말할 수 없다. 참 행복은 우리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단순한 무소유의 삶이 참 행복이 아니라, 진리 안에 참 자유가 있고, 참 행복이 있다. 만물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 내 생명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리이며,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진리다. 그 안에 참 행복이 있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목사는 리무에라에 있는 오클랜드정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신앙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09) 410 5353, 021 154 3398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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