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에서 바라본 인생
일요시사
2013Mon, 02 Sep 2013 17:47:37 +1000pm95Australia/SydneyMon, 02 Sep 2013 17:47:37 +1000Australia/Sydney02
“루마니아의 서푼차 마을의 사람들처럼 죽음을 행복으로 승화시키건, 스티브 잡스처럼 죽음 앞에서 불꽃 같은 의지를 불태우건 간에,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삶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십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일년에 서너 번 알바니 공동묘지를 찾는다. 한국의 공동묘지와는 사뭇 다르다. 분봉이 없는 평지무덤이고, 집에서 가까워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단장이 잘 되어 있고, 풍광도 수려하다. 묘비 마다 고인의 사진과 함께 연민과 그리움을 나타내는 짤막한 글들이 새겨져 있다.
루마니아 북서부에 위치한 서푼차라는 마을에는 ‘행복한 묘지’라는 이름을 가진 공동묘지가 있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여느 묘지와는 사뭇 다른 화려한 모습에 깜짝 놀란다고 한다. 묘비마다 사투리로 쓰인 시와 그림들이 알록달록하게 빽빽이 그려져 있는데, 고인의 살아있을 때 모습이나 교통 사고 등 사망 원인이나 생전에 저지른 기행 등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죽음 또한 인생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행복으로 승화시키려는 그곳 사람들의 마음이 묘비에서 묻어나고 있다.
애플 신화를 일구어낸 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앞두고 2005년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연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꽃 같은 삶의 의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잡스는 그 전 해에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사실상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는 연설에서 자신이 살아온 불우했던 어린 시절, 암 투병 과정, 좌절과 성공 등에 대해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당시 강연에서 잡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오히려 삶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이렇게 피력했다.
"곧 죽을 것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좌절과 실패 등은 모두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죽음은 우리 모두의 도착지”이기에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며 학생들에게 치열한 삶을 살 것을 주문했다. 그는 “남의 인생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남들의 의견이 내는 잡음에 당신 내면의 목소리가 휩쓸려 가게 내버려두지 말라”며 자신만의 삶을 살 것을 젊은이들에게 충고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닥친 고난과 고통, 심지어는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불꽃으로 승화시켰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맞이하게 될 인생의 종착역이다. 호흡하는 모든 육체는 때가 되면, 호흡이 끊기고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어 있다. 덧없이 살다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도 있고, 죽음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행복으로 승화시켜 ‘행복한 묘지’에 묻히는 인생도 있다. 그런가 하면 스티브 잡스처럼 죽음 앞에서 불꽃 같은 의지로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한 가지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에 주어진 삶을 불태운 인생도 있다.
최초의 인간의 이름은 아담이다. ‘아담’은 ‘땅’ ‘흙’ ‘티끌’을 뜻하는 ‘아다마’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로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이는 사람이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창세기 2장 7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영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영혼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모든 육체는 이 세상에서 주어진 삶을 살면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어있다. 그러나 공동묘지는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다. 모든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야 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뜻하는 히브리어 ‘네페쉬’의 원래 의미는 ‘목구멍’으로, ‘갈망’ ‘욕망’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이 말은 인간의 영혼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존재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아담이 그랬듯이 아담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쉽게 버린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든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마음으로는 헛된 욕망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은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8:12). 어두운 데란 죽음의 처소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영원한 흑암의 세계다. 거기서 이를 갈며 사는 게 죽음이요, 지옥이다.
이빨은 음식을 씹으라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간다는 것은 입안에 먹을 것, 씹히는 것도 없는데, 계속 씹어대는 모양을 말한다. 헛된 욕망을 씹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헛것을 씹어대는 삶, 그러나 결코 배부름은 없고 언제나 굶주림 속에서 사는 삶, 이것이 어둠 속에 사는 자, 영혼이 죽은 자들의 모습이다.
죄를 그리스어로는 ‘하마르티아’라고 한다. 이 말은 원래 ‘과녁을 벗어나다’ 라는 뜻이다. 창조의 주요,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삶이 죄와 죽음의 삶이다. 헛된 욕망을 씹어대는 죄의 삶이요, 어둠에 갇힌 죽음의 삶이다. 루마니아의 서푼차 마을의 사람들처럼 죽음을 행복으로 승화시키건, 스티브 잡스처럼 죽음 앞에서 불꽃 같은 의지를 불태우건 간에,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삶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