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크리스천
정원교회
2014Thu, 27 Mar 2014 14:31:12 +1100pm32Australia/SydneyThu, 27 Mar 2014 14:31:12 +1100Australia/Sydney27
박쥐는 눈이 퇴화돼서 앞을 보지 못한다. 장님이나 다름 없는 박쥐가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잘 날 수 있는 것은 초음파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쥐는 날아다니지만, 새는 아니다. 박쥐는 포유류다. 포유류지만 들짐승도 아니다. 날아다니지만 새도 아니고, 포유류지만 들짐승도 아닌 게 박쥐다. 그래서 박쥐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 즉 지조 없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사람이 박쥐 같은 사람이다.
박쥐는 대부분 빛을 싫어하는 야행성 동물이다. 낮에는 햇빛을 피해 동굴에서 잠을 자고, 주로 밤에 활동을 한다. 그런데 밤을 좋아하는 박쥐 크리스천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낮에는 집에서 잠을 자고, 밤에는 집에서 나와 술집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신분은 크리스천인데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이 박쥐 크리스천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어둠이라는 게, 밤 문화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화려하고 빛나는 인간의 영광을 좇아 사는 크리스천들이 박쥐 크리스천이다.
지난 2월 20일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수를 자랑하는 한국의 초대형교회의 조용기 원로목사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50억원의 벌금을 선고 받아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 국민일보 회장인 장남, 조희준씨는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대형교회 세습이 사회로부터 비난 받고 있다. 그러자 교묘한 편법 세습이 유행하고 있다. 가령 두 대형교회가 서로 상대방의 아들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는 것이다. 또는 교회를 새로 개척해주고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아들 목사를 청빙한다. 소위 편법세습이 유행이다.
이 정도 되면 박쥐 크리스천이 아니라, 베트맨이다. 악을 물리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배트맨이 아니라, 스스로를 우상화하는 대형 박쥐 크리스천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으로, 그리로 물론 본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형교회를 일구고, 수많은 성도들이 따르다 보면, 간덩이도 함께 커지나 보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게 되는 가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곳이 어둠의 세계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없다면, 그곳은 빛 없는 밤이며, 어둠이 지배하는 밤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닷새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이때 무리가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외치고, 이스라엘의 왕이라 부르짖으며, 열렬히 환영하였다. 이들의 뜨거운 환영의 함성이 불과 닷새만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분노의 함성으로 바뀌리라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무리가 원했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라면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인 자신들을 로마의 식민상태에서 해방시켜주고, 불의한 이방인들을 진멸하고, 자신들을 높이 세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알려주셨다.
십자가에 달려 무기력하게 죽는 메시아를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십자가가 없는 영광만을 구한다. 그러나 십자가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은 없다. 십자가가 없는 영광은 거짓 영광이고, 헛된 영광이다. 이처럼 거짓된 영광, 헛된 영광이 어둠의 세계고, 밤이다.
십자가는 지기 싫고, 영광만 얻으려는 것이 박쥐 신앙이다. 얼마 전 교회를 방문했던 어느 권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십자가 설교 잘 들었습니다. 옛날엔 설교에 십자가가 거의 항상 들어갔었는데, 요즘은 십자가 설교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설교강단에서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가 자꾸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십자가 설교 듣기를 싫어하기 때문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설교강단의 위기다. 십자가가 자꾸 부담스럽고, 듣기 거북하다면, 주님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다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다.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 하고, 영광만 바라는 게 문제다.
박쥐 크리스천이란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크리스천이다. 박쥐는 어둠 속에서도 잘 날아다니지만, 볼 수는 없다. 박쥐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세상영광을 구하면서도 잘 살 수 있지만,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과 참 은혜는 경험하며 살 수 없다.
십자가는 항상 역설의 자리다. 죽어야 사는 자리다. 이기적인 내가 죽고, 이타적인 나로 다시 태어나는 자리다. 십자가는 어둠에 붙잡힌 자가 빛의 아들로 거듭 나는 자리다. ‘거듭 난다’에서 ‘거듭’이란 말은 원래, ‘다시’라는 뜻도 있지만, ‘하늘로부터’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거듭 난다’라는 말은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땅에 속한 내가 죽고, 하늘에 속한 자로 다시 태어나는 곳이 십자가의 자리다. 십자가는 어둠의 세계에서 나오는 출구고,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십자가는 어둠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이며, 부활과 영생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십자가는 패배의 무기력한 자리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의 자리다. 십자가는 어둠에 속한 내가 죽어, 빛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진정한 승리의 자리다. 십자가는 썩어 없어질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진정한 영광의 자리다. 십자가는 천지창조 이래로 하나님의 모든 역량과 능력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집중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날 수 있다고 다 새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다 크리스천이 아니다. 박쥐 크리스천도 많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