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9) 더욱 넘쳐나는 감사 <골로새서 1:3~8>

오늘 본문에도 보면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해 편지하면서, 1절과 2절에 문안의 인사를 하자마자, 곧바로 3절에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감사하네요.”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감사하네요.”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겪은 감사한 일에 함께 공감함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의 감사가 이런 겁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네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신앙적인 모습입니다.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 성도님들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삶이라면, 날마다 주님 닮아가는 성화의 모습이 보여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흡족해하시겠습니까? 먼저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사랑에 더욱 넘쳐나는 감사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실 때에 하나님의 마음도 흡족하게 할만한 신앙의 모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해 편지하면서 4절과 5절에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기 보면 기독교의 3대 덕목이 다 나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라는 사람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바브라는 평신도 지도자였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아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믿음으로 잘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겁니다.
이에 바울은 감사와 더불어 저들을 향해 권고합니다. “내가 참 감사한다. 그 이유는, 먼저 너희들이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그 믿음 때문이요, 또 하나는 성도들간에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그 사랑 때문이요, 또 하나는 하늘을 향한 소망이 너희에게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살아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말씀하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일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죠.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 사랑이라.” 사랑이 왜 제일이 되는가?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출발은 무엇인가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의 사랑, 그 사랑을 내 것으로 받아 누리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믿음입니다. 그럼 소망은 무엇인가요? 이 모든 것의 근거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4절에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이 믿음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이어서 4절에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로서 성도들간에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소망에 대해서는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앞선 믿음과 사랑이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다.” 소망이 이 모든 것의 근거가 됨을 말씀합니다. 반드시 실현될 확실한 소망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삶은 심플한 것입니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예수 십자가를 향한 견고한 믿음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로서 나도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확실한 소망, 내가 이 땅의 삶을 마치면 천국에 간다.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 이게 다입니다. 또한 성도들간에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참 감사하다. 아무개 집사님도, 아무개 권사님도,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신앙생활 잘 감당하는구나. 감사하네요.”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감사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우리 교회 안에 더욱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복음은 지난 주간 새벽에도 말씀드린대로, 그 뜻을 그대로 풀어보면 복된 소식입니다.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입니다. 이 말은 본래 전령이 전쟁터에서 승전보를 들고 오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복음은 “예수 십자가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 복음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이는 우리 믿는 자에게 복음은 승전보입니다. 하지만 사탄 마귀의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저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복음이 아니라, 가장 나쁜 소식입니다.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라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고향 땅 골로새에 돌아가서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 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맺은 구원의 열매가 다시 또 하나의 씨앗이 되어 골로새교회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6절의 말씀처럼,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이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에 전해지고, 그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을 통하여 또 다른 곳까지 확장되어갑니다.
이는 골로새에서만이 아니죠. 한국의 선교 역사를 보십시오. 저 미국에서, 저 호주에서, 저 캐나다에서 미지의 땅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 후 140여년이 지난 시점에, 일천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복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더불어 그 모든 역사 속에서 한국의 교회는 다시금 온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씨앗을 뿌려 나갑니다.
2천여년전, 초대교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온 복음의 역사요, 오늘도 우리가 감당하고, 또한 감당해가야 할 복음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도 복음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열매는 예수 십자가 부활을 향한 믿음으로 내 신앙이 견고히 세워가며 내 안에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열매를 맺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뉴질랜드광림이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우리 교회 안에서 주어진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복음의 열매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걸음이, 우리의 기도가 닿는 곳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복음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심령에, 삶에, 걸음에, 또한 여러분의 가정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우리 가족들에게, 더불어 우리 교회 안에, 예수 십자가 부활,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고, 날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 더욱 넘쳐나는 감사를 고백하는 우리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신앙의 본이 되는 삶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우연히 웹툰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제목이 이렇습니다. “당신의 가격을 알려드립니다.” 사람에게 값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주제 자체는 흥미를 끕니다. 근래에 워낙 예의가 없는 사람도 많고, 이른 바 진상으로 취급받을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많다보니까, 웹툰에서도 이런 주제를 다루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받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요? 본문 7절과 8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에바브라에 대한 바울의 평가입니다. 에바브라는 평신도 지도자로서 골로새교회의 설립자입니다. 에바브라는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부활하셨다. 승천하셨다.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만 전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에바브라라는 인물을 높여줍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종 된 자다.”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성령 충만한 인물이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라.” 에바브라는 저들 모두 사랑으로 품어 안고, 좋은 것만 전한 거죠. 이처럼 에바브라는 신앙의 본이 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지식적으로도 부족한데, 경험적으로도 부족한데, 그럼에도 힘을 다해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더불어 그 안에 속한 성도들이 또 에바브라를 섬겨주고 그러면서 교회를 세워갑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우리는 믿는 자로서 영적인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더불어 믿는 자로서 영적인 부담감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또한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신앙적으로 본이 될만한 삶, “아! 예수 믿는 자는 그래도 뭔가 다르구나.” 인정받을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대할 때에, “참 감사하다. 저분이 이렇게 성장해가고 있구나.” 감사를 고백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흡족한 모습을 가진, 더욱 넘쳐나는 감사를 고백하고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