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뉴질랜드에 핀 야생화, 여전사

교민뉴스


 

원더우먼 -뉴질랜드에 핀 야생화, 여전사

일요시사 0 1338 0 0

[에세이문학 해외통신] 뉴질랜드 편. 봄호. 2021.1.1


버스 회사 사장 딸, 켈리

뉴질랜드 12월 말, 한여름. 환상적인 날씨를 자랑하는 크리스마스 계절이 찾아왔다. 오클랜드 시내버스를 운전하다, 회사 앞 정거장에서 섰다. 불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버스 회사 건물 1층 차고에서 직원들이 고기 굽기에 여념 없었다. 사장 딸, 켈리가 산타 모자를 쓴 채, 고기 굽던 집게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프란시스! 빨리 마치고 와서 고기 드셔!


아직 한 트립이 남아서 서둘러 끝냈다. 버스를 데포에 주차하고 BBQ  파티하는 1층 차고로 뛰어갔다. 켈리가 큰 은박지 접시에 방금 구운 고기들을 한가득 담아 주었다. 비프, 램, 포크, 소시지 등이 먹음직스러웠다. 100여 명 버스 운전사 중 시간이 되는 대로 와서 먹고 있었다. 


85년간, 가업으로 지켜온 버스회사. 이를 운영하는 가족 멤버 중 한 명인 딸 켈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청바지 차림의 50대 중반의 금발 여성. 사무업무 총괄 매니저로 일하던 켈리가 즐거운 표정으로 고기를 구웠다. 크리스마스 산타였다. 모든 운전사 이름을 다 아는 터라 오는 족족 운전사 이름을 불러주며 고기 접시를 안겼다. 뉴질랜드는 여성의 주도적 역할이 눈에 띄는 나라다. 켈리가 가족 같은 느낌으로 사내 분위기를 선도했다.


뉴질랜드에서도 크게 보도된 땅콩 회항 사건. 문제를 일으킨 재벌 딸 뉴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켈리는 권위주의가 아닌 실제  업무 능력과 인간미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모든 회사원의 신뢰도가 높았다. 


지난달, 이른 아침 운전 중 신호등 앞에서 쉬는데, 옆에 지나던 버스에서 운전사가 손을 흔들었다. 눈을 들어보니, 웬걸 켈리였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켈리가 윙크를 보내왔다.


-피터가 갑자기 아프대서 대타로 나왔어. 


세상에나. 빨간 머리 앤이 다시 환생했나. 원더우먼이 따로 없었다. 켈리에게 엄지를 들어 올려줬다. 


토잉 트럭 여성 운전사, 미첼!

택시 운전 중에 사달이 벌어졌다. 오클랜드에서 공항 가는 손님을 태우고 가다 뚝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춰버렸다. 계속 시동을 걸어도 요지부동. 손님이 당황했다. 우선 긴급 S.O.S를 택시 회사에 보냈다. 다행히 5분도 안 돼 같은 회사 다른 택시가 도착해 손님을 싣고 사라졌다. 차량 보험사에 전화하니 한 시간 뒤에 견인 트럭 한 대가 달려왔다. 


가까이 다가온 트럭에서 여성 운전자가 내렸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일까. 까만 선글라스에 하얀 야구모자를 쓴 건장한 체구였다. 반바지와 반소매  복장에 등산화 같은 신발을 신은 여전사 차림이었다. 택시 앞에 트럭 꽁무니를 가져다 댔다. 익스텐션 지지대를 트럭에서 뽑아 길게 늘어뜨렸다. 택시 앞쪽 아래 땅바닥에 드러누워 기어가더니 쇠줄 와이어로프 고리를 택시 양쪽 견인 고리에 걸었다.  


장딴지와 허벅지가 특전사 버금가는 근육으로 탄탄해 보였다. 트럭 견인 장치 리모컨을 누르자  택시가 천천히 트럭 위로 끌려 올라갔다. 택시가 움직이지 못하게 택시 앞 뒷바퀴에 고정 로프를 걸어 채웠다. 


-내 옆 조수석에 타세요. 이제 목적지로 출발합니다.


목소리가 다부졌다. 부릉부릉 시동을 걸더니 트럭이 그대로 미끄러져 달렸다. 경쾌한 록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버 브리지를 달리자 그녀가 콧노래를 불렀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낙천성이 흘러나왔다. 미첼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다.


-미첼! 다루기 힘든 토잉 트럭 일을 즐겁게 하니 보기 좋아요. 

-운전사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달려가 해결해주는 일이라 즐거워요.


목적지 정비소에 갔는데, 택시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공간이었다. 미첼은 트럭을 앞뒤로 몇 번 넣다 뺐다 하더니 좁은 공간에 택시를 내려놓았다. 전문가였다. 그녀의 손에 엘리자베스 여왕 그림이 있는 녹색 지폐 한 장을 쥐여주었다. 그녀는 지폐를 들어 입에다 뽀뽀하면서 고마워했다. 유유히 빠져 나가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일터에서 만난 뉴질랜드 여성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인상보다 건강미에 생활력이 넘쳐났다. 초기 뉴질랜드 땅을 개간하고 옥토로 만든 그네들의 조상을 닮은 DNA가 솟구쳤다. 미첼 역시 뉴질랜드 야생화, 원더우먼으로 기억 저장고에 담았다.


뉴질랜드 최초 여성 총리, 제니 쉬플리!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국민당 제니 쉬플리가 36대 뉴질랜드 첫 여성 총리가 되었다. 이어진 선거에선 패했다. 제니 쉬플리는 국민당 당수로 계속 정계 생활을 이어갔다. 37대 총리를 노동당 여성 당수인 총리 헬렌 클라크에게 넘겨주었다. 


나와 인연은 2000년 밀레니엄 해였다. 그 당시, 내가 오클랜드 토요 한국학교에 3년간 교사로 봉사할 때였다. 한국학교 개교기념일에 그녀를 초대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라 한국 이민자 초등학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었다. 토요일 아침, 그녀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왔다. 제니 쉬플리가 강당에서 전교생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그때, 한 여성이 머리를 숙이고 강당 앞으로 살살 걸어 나가서 제니 쉬플리를 사진에 담았다. 오클랜드 지역 국회의원인 펜시윙 여성 의원이었다. 그녀는 아시안을 담당하는 일을 하던 터라 제니 쉬플리 당수와 함께했다. 


다른 수행원이나 보좌진의 도움은 없었다. 공과 사가 분명한 정치 지도자였다. 권위 의식 없는 소탈한 행동에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행사 참석을 마치자 다시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존중하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첫 뉴질랜드 여성 총리는 그렇게 내 머리에 오래오래 남았다. 슈퍼 히어로, 원더 우먼이었다.


한국 여성 국민당 의원(5선). 멜리사 리!

1996년에 뉴질랜드에 이민 온 우리 가족에게 2008년은 감회가 새로운 해였다. 뉴질랜드 첫 한국인 국회의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1988년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신문기자, 방송 앵커 등으로 20년간 활약했던 멜리사 리가 국회에서 감청색 한복을 입고 감격의 첫 연설을 했다. 뭉클했다. 


그녀가 아시안 관련 방송국을 운영할 때 인연도 떠올랐다. 내가 1998년부터 오랫동안 오클랜드 택시 운전을 할 때, 그 방송국에서 섭외가 와서 인터뷰 촬영에 임했다. 그 방송이 뉴질랜드 TV에 오르기도 했다. 멜리사 리는 그 뒤로 내리 5선의 국회의원으로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2020년, 같은 지역구에서 노동당 저신다 아던 여성 총리와 맞붙어 패했지만, 여유 있는 국민당 서열로 비례대표직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국 교민들과 아시안 이민자들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한국 대통령이나 정계 관계자들이 방문 올 때는 앞장서 한국을 대변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중국계 국회의원이 없어 그 몫까지 한다. 뉴질랜드의 여성 파워를 그대로 전수하여 그 기운을 쏟는 코리언 키위, 슈퍼우먼이다.

 

겁주고 빵 주는 티켓, 여성 경찰!

특별 업무라서 분초를 다투는 긴장감으로 택시를 몰았다. 한국 손님이 전화로 긴급히 부탁한 일이었다. 오클랜드 국제 공항이라고. 비행기를 타려는데 여권을 집에다 두고 왔다는 것. 서둘러 자기 집에 가서 여권 좀 갖다 달라고. 그것도 노스쇼 북쪽에 있는 집에서 공항까지라니. 족히 40분은 걸리는데. 전화 받은 나도 당황했다. 마침 북쪽에서 쉬던 터라 곧 그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여권을 가지고 집밖에서 기다리다 건네주었다. 얼른 받아 공항 쪽으로 달렸다. 하도 급해 쌍 깜빡이 비상등을 켜고 몰았다. 어지간히 밀리는 도로에선 추월을 계속했다. 공항 목전에 신호등이 노란 신호등으로 바뀔 때, 그대로 통과했다. 순간, 뻔쩍대는 경광등과 사이렌 소리가 내 차를 덮쳤다. 


경찰차였다. 걸렸다. 젊은 여자 경찰이 내 차를 막아섰다. 조급한 모습으로 손님 여권을 들어 보여 줬다. 급하게 달렸다. 지금 바로 이 여권을 전해줘야 손님이 비행기 탄다고 사정했다. 내 말에 질세라 경찰도 빨리 뭔가를 쓰며 말했다. 


-급하게 나도 벌금 티켓을 끊어주겠다. 법은 법이다. 꼭 지켜야 한다. 

경찰이 건네주는 벌금 티켓을 받아 넣고, 그대로 공항청사 앞으로 달렸다. 기다리던 손님이 전해준 여권을 받아 채며 봉투 하나를 내게 던져주었다.


택시를 공항 밖 주유소 근처에 세웠다. 우선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고 거울을 봤다. 머리 헝클어진 남자가 씩 웃었다. 


택시로 돌아와 벌금 티켓을 눈여겨봤다. 신호등 위반 150달러? 속도위반 80달러? 우와? 이런? 입이 벌어졌다. 오늘 온종일 장사한 것 다 날렸네? 

순간, 시선이 티켓 아래로 내려가다 두 눈이 똥그래졌다. Warning Notice?

벌금 티켓인데, 이번은 경고장으로 그친단다. Keep the rule!

경찰 아가씨! 겁주고 빵 주는 당신도 원더우먼으로 등업한다. 부디 행운이~



뉴질랜드에 핀 야생화, 원더우먼이여!

1893년 뉴질랜드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최초의 나라다. 여성 지도자 케이퍼 셰퍼드가 당시 32,000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보내 통과되었다. 그 후예, 원더우먼이 대를 이어 여성파워가 엄청 센 나라다. 현직 총리인 저신다 아던을 포함한 3명의 여성총리 활약상도 대단하다. 현직 제 1야당 당수도 여성이다. 정말 야전의 투사들이다. 당신은, 초원에 코 박고 풀 뜯는 어린 양인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 나선 여전사인가? 뉴질랜드 곳곳에 당신이 살아있어 이민자들도 살만하다. 기쁨과 평화 주는 당신이 고맙다. God bless you!*


http://ebook.sundaysisa.com/810/page/1 


499d4ea576c52528f40e2fc5885cf74d_1615934893_462742.jpg 

뉴질랜드 10달러 지폐에 새겨진 ‘케이트 셰퍼드’



499d4ea576c52528f40e2fc5885cf74d_1615934916_543606.jpg
저신더 아던 뉴질랜드 현직 여성 총리


499d4ea576c52528f40e2fc5885cf74d_1615934934_382719.jpg
국민당 멜리사 리 의원 ©국민당 홈페이지




백동흠

email : francisb@hanmail.net

mob : 6427 289 2992

20 Mandeville Place Albany Auckland Newzealand 0642

2015년<에세이문학> 등단

2017년<재외동포 문학상> 수필 대상 수상


499d4ea576c52528f40e2fc5885cf74d_1615934964_620963.jpg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