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0); 여호와 하나님!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0); 여호와 하나님! <출애굽기 3:13~15>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저 애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라.” 이에 모세는 본문 13절과 같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나를 보내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너를 보냈냐고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리이까?”  

  

모세의 이러한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본문 15절 중반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여기에 처음 하나님의 이름을 밝히십니다. “여호와!” 

 

분명한 것은, 그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삶의 주관자가 되시고, 나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은 나에게 어떠한 분이신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주시기에 앞서 1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모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물은 것인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본래 태어나고 살았던 애굽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고, 신의 이름에 따라서 능력과 활동범위가 정해집니다. 따라서 오늘 모세가 하나님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묻는 것은, 단순히 이름 그 이전에, “당신께서는 어떤 영역을 주관하시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이걸 묻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율 안에 존재합니다. 세상에는 나 혼자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인과율 밖에 계신 존재임을 드러내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시편 90편 2절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모든 것 앞에, 모든 것 위에, 모든 것 밖에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 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밝히 증언하십니다. “내가 곧 나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 스스로 계셔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거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자체의 주제는 하나님의 이름이지만, 출애굽기 3장 전체로 확대시켜 보면, 하나님의 모세를 향한 소명과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으로 임재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럼 왜 모세에게 이러한 사명이 주어진 것일까요? 오늘 말씀의 주제가 이름인데, 이름에는 상당히 많은 의미가 담겨집니다. 그럼 모세의 이름에 담겨진 뜻은 무엇인가요? 출애굽기 2장 10절입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은 더더욱 아닙니다. 애굽의 공주가 물에서 건져냈기 때문에 “모세 – 건져냄”이라고 지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섭리로 모세를 레위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십니다. 다른 아이들의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게 하십니다. 나일강에 던져졌음에도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게 하십니다. 또한 히브리 사람인 걸 다 알지만, 그래도 애굽 왕궁에서 자라게 됩니다. 애굽의 공주가 유모를 구하는데, 모세의 어머니인 요게벳을 만나게 하십니다. 요게벳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기 아들을 직접 키우게 되는데, 애굽의 공주에게 양육비까지 받습니다. 그 속에서 모세는 유대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압제 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랜 시간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불어 광야의 모든 삶 속에서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엘림에 이르게 하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심으로 안전하게 지켜 보호하십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계획하신 완전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심으로 믿는 자로 하여금 죄악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지옥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죄의 종 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에 믿음으로 동참한 우리들, 이제는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모세는 건져냄을 받았기에, 건져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 죄악에서 건져냄을 받았기에, 나아가 다른 사람을 구원 – 죄악 속에서 건져내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자로서, 그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복음의 역사를 전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6절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의 종살이를 하였지만, 그 모든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지켜보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과 가나안까지의 여정으로 이끄시는 이유도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부르시던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이삭을 거쳐, 야곱을 지나, 요셉, 그리고 400여년을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이삭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야곱의 시대는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이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에, 또한 주님 앞에 깨어 기도할 때에, 오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까지고 신실하게 이어집니다.

  

나의 삶 속에서 예배하고 수고하고 헌신하는 그 모든 열매를 혹 내가 지금 당장 거두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더 큰 것으로 내 자녀에게 이어주십니다. 또 그 후손에게 이어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삭에게, 이삭에게 예비하신 축복이 야곱에게, 야곱에게 선포하신 축복이 요셉에게,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 그 후손에게 계속 이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이름 앞에서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이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요, 내 자녀의 하나님이요, 내 손주들의 하나님이요, 내 후손의 하나님이시다.” 내 믿음을 견고히 세워갈 때에,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이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본문 15절 마지막에 말씀합니다.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하라.” 우리 하나님은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언제나 변함없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늘 거하시는, 또한 그 변함없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유산을 우리 자녀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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