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4) 회 복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4) 회 복 <에스겔 11:14~21>

지금 이스라엘은 포로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저들은 이방 땅에서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하지도 못하는 현실입니다. 포로된 현실, 예배가 무너진 현실 속에서 안타까워하는 주의 택함받은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주시는 회복의 메시지가 본문의 중심 주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곧바로 성전재건공사에 착수합니다. 중간에 방해도 있었습니다.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성전재건을 이루어냅니다. 재건된 성전 앞에서 많은 이들이 울었습니다. 감격의 눈물,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옛 성전과 달리 너무나도 초라한 성전의 모습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더 화려하게 재건하게 하실 수는 없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을 향해 영적인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그저 빼앗긴 땅을 회복하고, 무너진 성전을 멋지게 재건하고.. 이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되고,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고, 주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의 영적 믿음의 공동체성이 회복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의 백성들을 향해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와 같습니다. 그것을 실현해가는 공동체가 교회요, 또한 성도입니다. 

  

우리가 지난 2년이 넘는 시간동안에 코로나의 상황, 락다운의 현실, 주일에 마음껏 교회에 갈 수 없는 현실들을 겪어왔는데, 돌아보면 마치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시절과도 같습니다. 이제 회복을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은 꽤나 멀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정말 이루어가야 할 회복은 성령충만함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고, 성도들간에 뜨거운 사랑의 교제와 섬김이 있고,  이를 통해서 “아! 저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구나. 주의 택함 받은 이들이구나.”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던 초대교회 ‘에클레시아’의 회복입니다. 참석을 넘어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했던 회복이 이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회복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원하신 회복의 역사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정결입니다. 


정결은 회복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우리가 흔히 정결과 거룩을 같은 의미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결은 과정이요, 거룩은 완성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결은 부정함을 씻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룩이란 이와는 달리, 정결함을 확증받아 이미 거룩해진 상태를 뜻합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라기의 말씀을 보았는데, 말라기는 성전재건이 완성된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완전한 회복은 보이지 않습니다. 재건된 성전에서 예배하는데, 아무 짐승이나 제물로 드립니다. 흠없는 제물을 드리는 것을 귀찮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불만만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누가 저 성전 문을 좀 닫아 버렸으면 좋겠다.”고 탄식하시기까지 하십니다.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러는 걸까요? 회복을 위한 첫 걸음, 정결의 부재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포로생활 중입니다. 그속에서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우리가 왜 이렇게 포로가 되었을까? 예루살렘성전이 왜 무너졌을까?” 자신들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포로생활 중에도 똑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지금 이 처지가 되었는데,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원망을 하고, 여전히 죄악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그냥 기도만 하는 거예요. “하나님! 회복시켜주소서.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소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옵소서.” 지난 날에 대한 회개 없이 막연한 회복만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 신앙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떤 이유에서건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본문 18절입니다.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리라.” 정결함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정결은 회복을 향한 첫 걸음입니다. 또한 정결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는 영적인 과정입니다. 정결한 삶을 통해 거룩함으로 나아가,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변화입니다. 


변화는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 삶에 이루어가시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잘 이루어갈 때에, 우리 삶에 주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본문 19절과 20절에 보면, 변화와 축복의 열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 삶에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또한 자녀손들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에, 20절 말씀과 같이 나는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잘 지켜 행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주의 말씀 따라 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어지는 결과가 20절 후반부입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향해서 주시는 가장 확실한 축복의 말씀이요, 가장 완벽한 회복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모든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나요? 하나님의 만지심을 통한 내 심령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 안에 주의 마음이 품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내 마음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바꾸어갑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 모습을 세상 속에 증거하게 됩니다. 주의 만지심을 통한 변화, 그 속에서 회복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크신 복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경고입니다. 


우리가 오늘 회복에 관한 말씀을 보고 있는데, 제일 처음에 회복의 첫걸음인 정결은 거룩으로 향합니다. 이어서 나로부터 시작된 변화는 축복의 열매로 이어집니다. 그럼 경고는 무엇을 지향할까요? 유지입니다. 정결함과 변화, 이를 통한 거룩과 축복을 잘 유지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보통 ‘경고’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경고 자체는 절대로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경고는 내 삶의 평안을 이어가게 하기 위한 안전장치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도로에서나, 공원에서나, 어디에서든지 수많은 경고를 보게 됩니다. 경고를 잘 지키는 것은 분명 나에게 유익이 됩니다. 반대로 경고를 무시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본문 마지막 21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는 너희들 혼내고 싶지 않으니까 절대,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변화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안내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사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경고를 무시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라가 갈라지고,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다시금 크신 사랑으로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십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발!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바르게 살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또 혼내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면서 주의 말씀을 듣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의 뜻을 깨닫는 것, 또한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때로 경고를 받는 것,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모든 삶의 작은 부분까지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때로는 책망하시고, 때로는 힘들게 하시면서까지,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주의 경고의 메시지를 잘 깨달아 알고, 언제까지나 정결한 삶, 변화된 삶, 이를 통한 주의 회복의 은혜 안에 거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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