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8); 내가 걷는 이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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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8); 내가 걷는 이 길이 <창세기 26:1~4, 19~22>

창세기에 보면 여러 가지 삶의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이삭입니다. 사실 이삭이라고 하면, 4대 족장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에 상당히 비중이 적은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 부름 받은 인물로서,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대단한 인물이죠. 야곱은 축복에 대한 사모함에 있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요셉의 삶은 인생역전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 이삭은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말씀하신 약속의 자녀라는 타이틀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본문에 담긴 이삭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입니다. 특별히 믿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걸음, 인생 전체가 오늘 창세기 26장 한 장에 다 압축되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으로는 일부분만 읽었지만, 전할 메시지는 26장 전체입니다. 그 속에 담긴 이삭의 인생사를 통해, 나 자신의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걺음, 즉 예수 믿는 자로서 “내가 걷는 이 길이” 어떠한 길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어떠한 길로 이끌어가실 것인가? 말씀에 비추어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주의 말씀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우리는 믿는 자로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 의지하여 사는 삶입니다. 본문의 주인공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본문에 보면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있었는데, 또 다시 흉년이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이번 흉년이 예전의 흉년을 떠올림만큼 기록적인 흉년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3장에 아브라함은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래서인지 본문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예전에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너는 애굽으로 가지말고, 이 땅에 그대로 머물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네가 이 땅에 머물면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축복의 약속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이에 6절에 말씀합니다.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땅에 거한 것, 흉년 중에도 피하지 않고, 그 땅에 그대로 머문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믿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 성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 주의 말씀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순종의 여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분명하게 말씀하죠. “네가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주리라.” 주변 환경을 바라보면 떠나야 합니다. 지금 주어진 현실을 보면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 자리에 머물라.”고 말씀합니다. “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애굽이라고 하면 죄의 자리, 당장의 즐거움을 위한 자리를 상징합니다. 반면에 이삭이 머물던 가나안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모세의 출애굽과 여호수아의 가나안 입성시대, 그 이전에 이미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그 순간부터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물라.”는 것은 지금 당장 보여지는 즐거움, 평안, 살 길 찾아가지 말고, 너의 판단과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 의지하여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한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 붙잡고 사는 겁니다. 내가 말씀 묵상하면서 내 안에 꽂혀진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귀 기울일 때에 내 심령에 새겨지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새겨지는 한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없으면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모하는 한 말씀, 내가 늘 부르는 찬송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그 찬송을 부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걸어갑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오직 주의 말씀 의지하여 살아갈 때에, 주의 복된 약속의 성취를 이루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뜻하지 않은 고난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의 삶에 늘 빠지지 않는 것이 뜻하지 않은 고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 땅에 거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면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게 풀려져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7절에 보면 이삭이 아내인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이는 장면이 나오죠. 왜요? 리브가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내라고 말했다가는 그 마을 사람 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갈까봐 그런 겁니다. 이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도 똑같은 일을 했었죠. 그 때 사라는 남의 아내 될 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삭의 이런 유약한 모습으로 어려움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그 땅의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흉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농사를 지어서 백 배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들도 심히 많고, 엄청난 부요함을 이루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딱 앞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이러한 축복의 때에, 뜻하지 않은 고난의 문제가 오는 거예요. 흉년이었는데, 이삭은 농사를 지어서 백배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그 지역의 다른 사람은 흉년으로 어려움을 당하는데, 이삭은 오히려 흉년의 때에 놀라운 축복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해피 할 터인데,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죠. 좋은 일이 있으면 늘 주변에서 시기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의적이었던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막아버립니다. 얼마 전까지 도움을 주었던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합니다.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은 어쩔 수 없이 처소를 옮겨 새로운 터전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 우물을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와서 우물을 빼앗습니다. “야! 여기도 우리 땅이야. 그러니까 이 우물도 우리 거야.” 당시에 물을 빼앗는다는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큰 고난의 문제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삭은 또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쫓아와서 우물을 빼앗아버립니다. 그래서 처음 빼앗겼던 우물 이름을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이라 이름하고, 두 번째 빼앗긴 우물을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라고 이름합니다. 

  

이삭이 저들에게 해를 끼친 것이 있나요? 이삭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나요? 이삭이 한 것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그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면 축복만 있어야죠. 그러면 적어도 그 땅에서만큼은 좋은 일만 있어야죠.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고난을 당합니다. 

  

믿음의 길 가운데 언제나 뜻하지 않은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 대처하는 나의 믿음의 반응입니다. 더 하나님께 다가서는 기회로, 더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바로 신앙의 성숙이요, 그 뒤에 하나님의 계획을 내 삶에 이루게 됩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때로 뜻하지 않은 고난으로 가시밭길 같을지라도, 믿음으로 이겨 승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결국에는 선한 길로 이끄십니다. 


제가 처음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에 부임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전하는 메시지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가십니다. 이건 목회자 이전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의 저의 확고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시편 18편 1절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이어지는 50절까지를 보면, 왜 다윗이 이렇게 선언하는가? 그 이유가 그려집니다. 시편 18편에는 이런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 이후,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이후, 줄곧 하나님 앞에, 사울 왕 앞에 충성하였지만, 뜻하지 않은 원수들의 공격과 사울의 쫓김을 받아야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원수들과 사울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움 받게 됩니다. 그 때 감격스러운 고백으로 올려드린 신앙의 고백이 시편 18편입니다. 저 스스로도 지난 삶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 이렇게 광림의 제단에서 쓰임 받고 있는 것, 이 곳 뉴질랜드까지 와서 이렇게 귀한 성도님들과 함께 행복하게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늘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앞서 살펴본대로 이삭은 우물을 파고 빼앗기고, 또 파고 빼앗기고를 반복합니다. 쫓겨나고, 빼앗기고, 또 빼앗기고... 고난에 고난에 고난이 겹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22절에 말씀합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에섹이라는 다툼을 넘어서고, 싯나라는 대적을 넘어섰더니, 르호봇을 얻게 됩니다. 르호봇의 뜻은 “번성함”입니다. 다툼과 대적을 넘어서 번성함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다툼이라는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해야 합니다. 대적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르호봇, 하나님 예비하신 번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이 뿐만이 아니죠. 이후에 이삭은 또 하나의 우물을 더 파는데, 그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합니다. 그 뜻은 “맹세의 우물”입니다. 24절에 하나님께서 축복의 약속을 또 주셨거든요.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이삭을 쫓아냈던 아비멜렉과 이삭의 우물을 빼앗았던 그랄 목자들이 이삭을 찾아옵니다. 저들은 이삭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와 너 사이에 언약을 맺으리라. 우리가 서로 평화하자.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 이삭을 힘겹게 만들었던 이들이 오히려 이삭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선한 길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믿는 자로서 이 세상에서의 걸음이 끝나는 날, 어디에 이르게 될까요? 천국 문 앞입니다. 그 길에 수많은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있겠죠. 아픔과 슬픔도 있겠죠. 염려와 근심도 있겠죠. 억울함과 분노도 있겠죠. 고통과 고난도 있겠죠. 하지만 믿는 자는 결국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이보다 더 선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들로 인해 낙심하지 않습니다. 저 앞날에 예비된 천국의 소망, 뿐만 아니라, 지금 내 눈 앞의 에섹과 싯나를 넘어서 르호봇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브엘세바의 약속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체험하고 증거하는 길, 하나님 가장 기뻐하시는 길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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