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9) 하나님의 시선 속에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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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9) 하나님의 시선 속에 있는 나 <창세기 46:1~7>

사람은 누구나 ‘주인공 의식’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여러분 자신을 향해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인공 의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어떤 대단한 일을 해야만, 내가 주목 받고 있어야지만 주인공이 아닙니다. 적어도 내가 신앙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시선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믿는다면, 주인공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제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하나님의 시선 속에 있는 나”. 내 삶의 모든 모습이 하나님의 시선 속에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우리가 교독문으로 읽었던 시편 139편의 고백과도 같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시선 속에 살아간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야곱은 아들 요셉처럼, 아버지 이삭처럼, 그리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형 에서는 하나님의 시선 밖의 인생을 살았기에, 주인공의 자리를 놓치고 맙니다.  따라서 내가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시선 속에 거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주의 말씀 붙잡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 가지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간 야곱의 모습 속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며, 하나님의 시선 속에 있는 나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믿음의 가문을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곳 브엘세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본문 1절에 말씀하죠.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지금 야곱은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도중에 가나안의 가장 남쪽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왜 야곱의 일행이 애굽을 향하고 있나요? 죽은 줄로 알았던 요셉,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흉년 중에 살 길이 없는데,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서 야곱의 가문 전체를 초청했기에,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야곱은 수많은 장소 중에서도 브엘세바에서 예배의 단을 쌓았을까요? 성경에서 브엘세바라는 지명이 처음 나오는 것이 창세기 21장입니다. 지난 시간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서로 평화조약을 맺는 장면이 나왔죠. 그 조약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이미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우물을 파고 평화 조약을 맺었는데, 그곳이 바로 브엘세바입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아브라함은 그 땅에 에셀나무를 심고, 하나님을 향해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후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터전을 잡고 살아갑니다. 이어서 이삭이 그 땅에서 계속 살면서 아버지가 판 우물물을 마시면서 살았는데, 이삭이 강성해지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그 우물을 메워버리고, 이삭을 쫓아낸 거죠.  그리고 야곱, 그가 형 에서를 속이고 하란으로 떠나는데, 그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곳이 브엘세바였습니다. 야곱은 이제 가나안을 떠나면서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봅니다. 그러면서 3대를 걸쳐 살아온 그 땅,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브엘세바에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그렇다고 이삭의 하나님이 다르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다른 게 아니죠. 창세기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 가문에 대대로 이어내려오는 신앙의 유산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도, 가문에도, 이러한 신앙의 유산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이, 어머님이 섬기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하나님이 나의 자녀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 자녀의 하나님이 내 손주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러한 믿음의 대를 이어갈 신앙의 터전이 있고, 예배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우리 가문의 브엘세바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시선 속에서, 예배하면서, 기도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또한 내 자녀손들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 주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우리 가문을 믿음의 가문으로 견고하게 세워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반드시 나와 함께하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어떤 두려운 상황이나 염려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에, 꼭 가긴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될 때에, 누군가 와서는 “권사님! 집사님! 내가 같이 가줄게요.” 그러면 이게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이보다 더 큰 든든함이 어디 있을까요? 야곱은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면서 예배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즉시로 응답하십니다. 4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창세기를 이끌어가는 4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이른 바 4대 족장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입니다. 저들을 보면 각자 정말 힘겹고 어려운 삶이 많았습니다. 


세상말로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인생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이 후에 애굽의 바로 앞에 가서 말하죠.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입니다. 내 선조들에 비해서는 짧은 인생길이었지만,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험악한 인생” 그 한 마디에 야곱의 모든 고난과 아픔과 회환이 담긴 인생이 그려집니다. 사실 그의 인생에 “험악한 인생” 이런 표현 정도는 애교입니다. 정말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정도의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이 지금까지 이를 수 있었던 힘은 단 하나입니다. 그 옛날 벧엘에서 야곱에게 주신 말씀. 창세기 28장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의 삶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이삭이,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 흉년 중에도 백배의 결실을 얻는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 아브라함과 이삭이 똑같이 브엘세바에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들었던 말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기에 이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심을 내가 분명히 보았다.” 우리 전후 좌우에 계신 분과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시선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필요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때마다 시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으로 채우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 깨닫게 되죠.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에게도 인정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심이 분명히 보입니다.” 하나님의 시선 속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크신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습니다. 


오늘 제목이 “하나님의 시선 속에 있는 나”입니다. 제가 오늘도 이 제목을 잡기 위해서 상당히 고심하고 기도하고 묵상했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오늘 특별히 하나님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신 크신 계획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아주 큽니다. 오늘 제목에서 뜻하는 시선은, 이렇게 현미경처럼 요 앞에서 우리를 확대시켜서 보시는 그런 게 아니라, 저~ 멀리서 나를 보시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바라보시고, 뿐만 아니라, 내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의 흐름까지 다 보시는 하나님의 크신 시선을 뜻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 야곱 한 사람을 보십시오. 처음 1절에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여기 보면 야곱을 향해서 “이스라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두 번이나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는데, 그래도 계속 두 이름이 겹쳐서 사용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1절에는 “이스라엘”인데, 또 2절에는 “야곱아 야곱아!” 이렇게 나오죠. 이게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호칭이 사용될 때는 보통 야곱 한 사람, 한 개인보다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의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면 뭔가 권위도 있고, 실수도 하면 안되고,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에 야곱이라고 하면 여전히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이 더 부각됩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마치 나래이션처럼 야곱의 일가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야곱”이라는 호칭이 사용됩니다. 그러다보니 8절에 독특한 표현이 나오죠.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이스라엘과 야곱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 안에 담고자 하는 의미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입니다. 예전에 야곱이 밤에 하란 땅으로 야반도주 할 때는 한 개인의 연단을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주시고, 일평생 야곱을 이끌어가시면서 그의 신앙을, 인격을, 성품을 다듬어가십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시점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오늘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3절에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지금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은 야곱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거죠. 왜요?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애굽은 죄악의 도시를 상징하거든요. 그럼 왜 이삭 때에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야곱에게는 두려움 없이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지금 가나안은 처음 아브라함이 정착할 때의 그 가나안이 아닙니다. 가나안도 이제 이미 우상숭배로 가득차 있습니다. 야곱의 가문, 그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애굽으로 모으십니다. 그럼 애굽은 가나안에 비해 정결한가요? 그렇지 않죠. 애굽은 더합니다. 이집트신화를 보세요.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습니까? 우상숭배의 제국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야곱의 일가는 고센 땅에 따로 모여 살게 됩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하는 사람들을 부정하게 여겼거든요. 그래서 야곱의 가문은 고센 땅에서 따로 모여 살아갑니다. 애굽이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서, 7년 흉년 중에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앞서 보내셔서 애굽의 모든 실권을 가진 요셉의 보호 아래 따로 구별되어서 평안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하나씩 이루어갑니다.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도 같은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 너희들이 400년간 타국에서 종살이를 할 것이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큰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해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지금 기근이 들었지? 왜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야지? 왜 지금 이런 문제가 생겼지? 어떻게 지금 이렇게 복된 일이 생겼지?” 그 모든 일 속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하나님께서 지금 큰 그림을 그려가시는 중에 있구나. 그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나이구나.” 성경에는 늘 말씀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십시오.” “우리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동시에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시선 속에 있는 나, 하나님께 기쁨이 될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믿음의 가문을 세워가십시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증거하십시오. 그 속에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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