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6 ; 성악설(性惡說)

교민뉴스

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6 ; 성악설(性惡說)

일요시사 0 466 0 0

식사 후, 써니가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쳤다. $42. 네 식구의 저녁 식대치곤 조촐한 가격이다. Tasty Food, 월남 음식 맛이 개운하고 담백해서 좋다. 가족과 함께 음식점을 나서려던 순간,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꽂혔다. 구석에서 네 식구가 음식을 들고 있었다. 써니 머리에 번쩍 스파크가 일어났다.


‘아니, 저 여편네, 배 째라 진상 아냐? 남의 돈 떼먹고도 음식은 배 터지게 시켜먹는구먼. 남의 돈 빌려 가고 안 갚으며 어떻게 이런 데는 잘도 올까, 염치가 있어야지.’


식탁 위에 음식 접시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커 나는 딸들이야 무슨 죄가 있나. 문제는 배 째라 여편네와 그 옆에서 우거적 우거적 먹는 남편이다. 눈이 확 뒤집힐 지경이라 확 한마디 쏘아대려는데, 남편 피터가 팔을 확 잡아챘다. 그대로 밖으로 나오자니, 화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야 확 달려들어 돈 내놓으라고 호통치며 우세라도 시켜버리고 싶었지만, 애들 보는 앞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남편이 근처에 있는 노스코트 맥도날드 점으로 차를 댔다. 아들 딸아이에게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부부는 쓰디쓴 롱블랙 커피를 시켰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써니는 그 쓰디쓴 커피를 홀짝 다 마셔버렸다. 빈 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열 뻗친 성정을 못 이겨 애민 커피만 축내고 있었다. 뉴질랜드 이민 와서 저런 진상을 만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써니가 배 째라 여인을 만난 건, 10년 전 이민 초창기였다. 장기 사업 비자에 필요한 자영업으로 런치바(Lunch Bar)를 운영하며, 파트타임으로 일 할 사람을 구할 때였다. 아는 사람이 배 째라 여인을 소개해줘 일을 시켰다. 어떻게든 일을 잘 배워 풀타임으로 일하려는 열의를 보였다. 써니는 특별히 신경 써주며 일을 가르쳤다. 


쉬는 날, 처음으로 두 집안이 저녁 식사를 근사한 식당에서 함께 했다. 배째라 남편을 통해 들은 그 집안 사정에 써니와 남편은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뉴질랜드 와서 저렇게 일이 안 풀리는 경우도 있구나 싶었다.


이민 와서 배 째라 남편은 남의 집 잔디 깎아주는 일을 했다. 계절을 타는 일이어서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다. 보슬비 내리는 날, 경사가 심한 땅 잔디를 깎다가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 


작동 중인 잔디 깎이 기계와 넘어지며 굴러떨어졌다. 왼쪽 무릎이 크게 다쳐 병원 치료도 받았지만, 후유증이 심했다. 하던 일을 접었다. 부동산 에이전트 공부를 하여 중개사로 활동했다. 다행히 몇 년간은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돈을 좀 만지며 살만하다 싶었을 때, 문제가 터졌다. 성사됐다 싶었던 부동산 매매에 큰 하자가 생겨 철퇴를 맞았다. 매입자가 뉴질랜드 부동산 협회(REA)에 컴플레인을 한 거였다. 불법 개조한 집, 사실을 공지하지 않은 채 판 게 화근이었다. 


매입자가 은행융자 승인을 받아 계약했는데, 그 사실이 밝혀지며 기각되었다. 매매는 취소가 되었다. 십 만불의 계약금도 허공에 붕 떴다. 물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당연히 부동산 에이전트 자격도 1년간 정지되었다. 다시 여러 일을 찾아 나섰다. 

하루에 백 불씩 주는 건축공사 인부로도 나가봤다. 너무 고된 일이고 체력이 달린 데다, 어깨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배 째라 남편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가운데 집안 경제는 더 나락으로 빠졌다. 배 째라 여인은 그런 남편을 대신해 생활 전선에 뛰어든 거였다.


한 달 뒤, 써니와 남편은 배 째라 여인에게 풀타임일을 주었다. 배 째라 여인도 고마워하며 자기 비즈니스처럼 일했다. 1년을 잘 다녔다. 어느 날부턴가 얼굴에 먹구름이 끼고 수척해지는 배 째라 여인을 보면서 Lina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고국의 배 째라 여동생이 폐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라고 했다. 마침 그 때, 써니는 5년을 운영해오던 런치바 일을 접고 다른 사람에게 가계를 넘기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유는 손목 인대가 늘어나면서 깁스를 하고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버텼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런치바에서 김밥 스시 메뉴가 잘 팔리고, 학교에도 일부 급식 주문이 밀리면서 일손이 바빠 무리한 탓도 컸다. 김밥 마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계를 중국 사람에게 넘기고 잔금을 받던 날이었다. 배 째라 여인이 써니와 남편 앞에서 울먹였다.


“도와주세요. 하나뿐인 여동생이 죽었어요. 한국에 가서 언니로서 뭐라도 도움을 줘야 하는데 돈 좀 빌려주세요. 비행기 표와 여분의 돈, 약 만불 정도… .”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성심성의껏 일해준 인연. 가계를 접어 일자리까지 잃은 상황. 한국 여동생이 암으로 사경을 헤매다 죽은 일. 사정이야 어렵지만, 이민 사회에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써니와 남편은 그 날밤, 고민에 빠졌다. 어렵사리 결론을 내렸다. 친 인척 친구도 없는 가운데, 오죽하면 저러겠나.


“일단은 한국 다녀오세요. 만불 마련했어요. 돈은 돌아와서 형편 되는대로 차차 갚으세요.”


배 째라 여인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고개를 연거푸 조아렸다. 써니와 남편도 마음이 착잡했다. 가계 판 자금 십만 불에서 만불을 뚝 떼어준 것이다. 한국에 다녀온 뒤, 배 째라 여인은 자꾸 변명을 이어갔다. 


남편이 다시 부동산 에이전트 일을 시작했으니, 좀 기다려달라 했다. 집 판매 계약이 성사 중이라 곧 돈을 받는다고 했다. 한 달을 그렇게 질질 끌고 갔다. 


그런 중에 교민 중국 음식점엘 갔다가 그 가족이 외식하는 걸 봤다. 배 째라여인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 남편도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이들 앞에서 뭐라 큰소리도 못 쳤다. 배 째라 여인이 다가와 나직이 이야기했다.


“다음 주부터 제가 일을 해요. 제가 받는 급여에서 주당 백 불씩이라도 계속 갚을게요. 기다려주세요.”


믿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 백 불씩 입금이 되었다. 두 달 간은 꾸준히 이어갔다. 석 달째부턴 입금이 끊겼다. 한 달간 소식도 없었다. 모임이 있어서 글렌피드 발렌타인 뷔페 레스토랑에 갔다가 또 배 째라 가족을 만났다. 


써니와 남편이 두 눈을 의심했다. 거기 와서 외식할 돈이면 입금 먼저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사람을 어떻게 보고 저리도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급기야, 써니가 쫓아가서 한마디 던졌다.

“지금 뭐들 하신가요? 음식이 넘어가요? 빌린 돈부터 갚아야 할 게 아닌가!”


“어디다 대고 죄인 취급하는 거요. 딸아이 생일이라고 외식 좀 하는 건데?”


배 째라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대들었다. 써니는 기도 안차다는 듯이 응수했다.


“애들한테 부끄럽지도 않나?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지!”


“돈 좀 있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거요, 지금? 애들 앞에서 그렇게 얘기해도 돼?”


“아니, 저 여편네가 완전히 배 째라네! 남의 돈 귀한 줄도 알아야지!”


“그래, 나 배 째라요. 어쩔 거요? 지금 없어서 못 갚는다는데, 웬 위세야?”


옥신각신, 말싸움이 몸 싸움으로 번질 즈음, 회원들이 뜯어말렸다. 레스토랑을 나가며 배 째라 남편이 한마디 툭 던졌다. 활활 불타는 장작에 기름을 확 끼얹는 격이었다.


“돈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접니다.”


“사람이 먼저 돼야 없는 돈도 들어오지. 먼저 사람이 되라구!”


참다못한 써니 남편이 배 째라 남편 귀에 대고 쐐기를 박았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교민사회 물이 흐려진다니까. 경찰에 고소해야 정신 차리겠구먼. 남의 돈 떼먹고도 뻔뻔한 저 얼굴 좀 보라구!”


“말 잘했어, 당신. 그래 경찰에 고소해봐. 이 나라 법, 돈 없어서 주당 일 불씩 갚겠다고 하면, 당신들 계속 기다리는 수 밖엔 없어. 누가 힘드나”


“저런 거지 도둑 심보! 그러니 빌어먹기에 십상이지.”


드디어 남편들이 치고 받기 일보 직전에 레스토랑 스탭들이 나와 뜯어말리고 경찰에게 전화를 들었다. 위기감을 느꼈는지, 배 째라 여인이 남편과 애들을 데리고 슬그머니 밖으로 사라졌다.


​***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다. 가치도 없는 일에 너무 사로잡혀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써니가 남편에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어찌 보면 그 인생이 불쌍하기도 하고, 배 째라 여인, 어째야 좋아?


“못 받은 몇 천 불로 속에 천불이 나겠어. 생사람 잡을 일은 없어야지. 그동안 성선설을 믿어왔는데, 이번 일로 성악설(性惡說)도 인정하게 되는구먼. 세상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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