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95) 감사하라!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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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95) 감사하라!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라 <시편 136:1~26>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예배로 모였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감사의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에 내 안에 감사가 가득하고, 설교 후에 함께 [감사]라는 찬양을 부를 때에도 우리 안에 감사가 넘쳐나고, 성찬을 행할 때에 주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감사가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오늘의 감사가 우리의 일평생의 삶으로 계속 이어져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하는데,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말씀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찬양입니다. 2절에는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3절에는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한마디로 비교 불가를 뜻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보십시오. 4절에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 5절에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 6절에 “땅을 물 위에 펴신 이.”, 7절에 “큰 빛들을 지으신 이.”, 8절에 “해로 낮은 주관하게 하신 이.” 9절에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한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기에, 본래 하나님과 대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너무 거룩해서 부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갖게 되니,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마주 대할 수도 없는, 그 이름조차 감히 부를 수도 없었던 존재인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이요 은혜입니까? 그럼 우리가 할 것은? 감사 뿐이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감사보다 불평을 만들며 살아가곤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자녀됨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 축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내 삶의 부족한 것, 어려운 것만 생각하며 원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날마다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11절에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본문 10절부터 22절까지를 보면, 한 가지 큰 사건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부터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이르는 여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의 축복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럼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 그리고 가나안까지의 여정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나요? 우리는 여기서 우리 자신의 인생여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에 우리는 애굽에 종살이하던 백성들처럼 죄에 묶인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홍해를 건넌 백성들처럼, 세례를 받고 구원 받은 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의 보혈로 영적 죄사함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 후로는 우리에게 영적 가나안, 즉 천국의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길에 있어서 우리 주님께서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여기에 딱 다윗의 고백이 어울리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목자가 되시사 앞으로의 모든 삶도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걸음을 지켜 보호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주의 인도하심에 감사 찬양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신은 다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안 그럴 듯 합니다. 말이 안됩니다. 신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손에 죽임 당하시고, 이게 말이 안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행하시나요? 진짜이기 때문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짜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매 절마다 스물 여섯 번에 걸쳐서 똑같은 후렴구로 찬양합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서 인자하심은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고자 끝까지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변함없는 사랑, 진짜 사랑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그렇기에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말씀합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서도 기억해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비천하다.” 아주 볼품 없는 존재라는 거죠. 우리가 저 산 위에, 빅토리아 마운틴, 원트리, 이런데만 올라가도 저 아래 있는 모든 집들이 작게 보이고,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에 우리가 그렇게 초라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존재인 우리를 기억해주셨다는 거예요. 

  

이어서 24절에도 말씀합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전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우리의 대적이 누구인가요?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내 마음을 섭섭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세상의 유혹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이용하여 우리를 시험에 들고 실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영적으로 나약해질 때, 내 믿음을 흔드는 일들이 생길 때, 더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주의 십자가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모든 악한 영의 세력, 대적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큰 감사, 본질적인 감사의 제목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악 중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죽으시고, 그 대신 우리에게는 영생의 기쁨과 천국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 찬양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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