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6 ; 떠나는 날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6 ; 떠나는 날

일요시사 0 455 0 0

돌아서는 발길이 영 마뜩잖다. 송아지를 떼어놓고 일터로 향하는 어미 소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울까? 가다 말고 멈춰서 다시 뒤돌아본다. 


한겨울 산비탈 그늘에 하얀 눈 덮인 곰 바위 같다. 넋을 놓고 그냥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앙상한 나무가 바람에 씻기듯 목도 헛헛하다. 


그래도 그런 것 아니다 싶어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녀석을 깨끗하게 샤워까지 시켜 하얀색이 더 빛나게 새 옷으로 입혀주었는데… . 


저 말 못하는 바위 같은 녀석은 이내 마음을 알려나 몰라. 꿈쩍도 않고 묵묵히 앉아 있는 속내가 편치만은 않겠지.


온 사방에 습한 기운이 내리깔리고 겨울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떠나는 것과 남는 것은 어디나 있게 마련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잘 만났던 사람과도, 고맙게 살았던 집과도, 몸담고 함께 했던 차와도 때가 되면 아쉽지만 안녕하며 손을 흔들게 된다. 


8년의 정을 떠나보내는 시간이다. 그동안 탔던 오래된 차를 트레이드하면서 새로운 차를 샀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녀석과도 떠날 때가 이렇게 오다니.


몰던 차를 자동차 판매점에 놓고 새 차를 타고 나오려니 가슴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눈을 질끈 감고 가속 페달을 서서히 밟는다.


녀석은 힘이 장사인 불도저 같았다. 사람들은 팰컨(Falcon)이라 불렀다. 팰컨 이름답게 매사냥꾼처럼 오클랜드, 해밀턴, 오레와까지 누비며 날아다녔다. 


녀석의 출신은 포드 자동차로, 이름은 팰컨, 성능은 4,000cc 흰색 왜건 차량이었다. 내 손발이 되어준 택시로 입적되고서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지구를 열두 바퀴 정도 돌았다면 얼마만 한 거리인가? 고국까지 스물네 번을 왔다 갔다 한 궤적이다. 숫자로는 48만 킬로미터다. 


달린 길 위에 서리고 어린 우여곡절과 애환이 추억으로 남았다. 경주마를 고르듯 심사숙고한 끝에 처음 녀석을 데리러 포드차 판매점에 들렀을 때가 눈에 그림처럼 선연하다. 


늠름한 기상에 새 차 특유의 왁스 냄새까지 풍기는 이 녀석 엉덩이를 흡족한 마음으로 땅땅 두드려 주었던 첫 만남. 


녀석도 한눈에 척하니 새 주인을 알아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반겼다. 경주마 위에 올라타듯 상쾌한 기분으로 차에 들어앉았다. 


채찍을 휘두르듯 키를 꽂아 돌리자 시동 소리마저 경쾌하고 우람했다. 부릉부릉! 강력한 힘은 물론 질주 본능도 탁월했다. 8년 전, 겨울이었다.


4,000cc에 왜건 타입이라 첫 운전이 조금은 낯설어서 버거웠다. 웬만한 트럭 정도의 허우대라 좁은 골목에서는 한두 번 회전해서는 돌아 나오기가 힘들었다. 


손님 넷이 타면서 여행용 가방 몇 개를 실어도 끄떡없는 적재용량이라 거뜬했다. 짐이 많은 손님을 태울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졌다. 


공항 가는 손님, 소형 이삿짐 나르는 손님, 쇼핑물품 나르는 손님, 큰 휠체어를 탄 손님, 손이나 발 깁스를 한 환자들에겐 왜건 타입의 택시가 필요했다. 당연히 바빴다. 


손님 집 문 앞까지 태워 줘야 할 경우가 많아, 좁고 경사진 진입로까지 들어갔다가 나올 때면 뒷목이 뻣뻣했다. 


비라도 오는 경우엔 브레이크 밟는 오른쪽 허벅지와 발에 긴장과 조바심이 더해 후들거렸다. 녀석과는 한 몸이라 녀석도 굉장히 떠는 듯 했다.


운전 조건이 참 난해한 여건에서 만난 숱한 손님들을 태우고 내려주다 보니 매일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듯했다. 


서서히 나를 수행자로 만들어 주었다. 나중엔 어떤 경우에도 자연스레 운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팰컨, 이 녀석이 묵묵히 제 역할을 잘해주어서 가능했다.


녀석이 한 5년은 상머슴처럼 온갖 일도 마다치 않고 아프지도 않은 채 잘 뛰었다. 그러던 녀석이 최근 3년간은 병치레 같은 고장이 잦아 고치러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아쉽지만 떠날 때가 온 걸 받아들여야 했다. 나야 참고 다닌다쳐도 택시 손님한테는 새로운 서비스를 해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녀석 덕분에 가슴에 남는 인생 선배 같은 분도 많이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선배가 아니라 인품이 따뜻하고 배려있는 자기 세계를 품은 분이라서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고국에서 다니러 온 소설가 시인 가수 사진작가 분이나 이곳 수필 작가를 태우면서 그런 점을 더 느꼈다. 


자기 생활에서 보고들은 것을 소재로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이라 똑같은 풍경을 대하면서도 바라보는 시선과 대화 내용이 달랐다. 보람된 시간이었다. 


그분들 덕분인지 나도 운전하다, 뭔가 가슴에 느낌이 오면 한쪽에 차를 세우고, 노트에 한창 끼적거리는 습관이 들었다. 이런 때 녀석은 내게 서재 역할을 해주었다. 


차 안에는 보는 책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메모 노트가 100권을 넘어갔다. 고맙게도 이 녀석과 함께 하면서 수필 등단과 소설 등단의 소식도 듣게 되었다. 


창작의 산실 역할을 해준 녀석의 앞좌석 뒷좌석 트렁크 바닥의 감촉이 아직도 아스라하다. 큰 사고 없이 내 손발이 되어준 녀석이 참 고맙다. 


떠나는 날, 오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 나의 애마, 팔콘~ 안녕~ㅠ. 





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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