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7 ; Bird를 잡다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7 ; Bird를 잡다

일요시사 0 394 0 0

오클랜드 날씨 치고는 환상적인 날이다. 멀리서 밀려오는 새하얀 파도를 바라다본다. 드넓게 펼쳐지는 Muriwai 비치 골프장 앞에 서니, 가슴이 벌써부터 설레어 온다. 


구름도 없고 거센 바람도 없다. 아침기운 따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너울거림에 골프공이 잘 안 보인다. 그게 하나 탈이다.



매일 택시 운전을 하다 보면 운동도 필요하고 정보 교환도 좋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을 골프치는 날로 정해온 지 벌써 몇 년이 되어간다. 


저마다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다 한 달에 하루만이라도 탁 트인 대자연속에서 골프를 친다. 


각양각색의 승객들하고 빚어지는 천차만별의 해프닝을 서로 터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고국의 대중목욕탕 같은 게 없는 뉴질랜드다. 그러던 터라 게임을 마치고 모두 샤워장에 들러 발가벗고 시원스레 샤워도 한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면서 옷을 갈아입다 보면 문득 고국의 목욕탕 향수를 맛보는 느낌이 든다.



인심도 후하고 음식도 푸짐한 교민식당에 저녁 식사 차 함께 모여 앉아 고기 구워가며 상추쌈에 술 한잔씩 서로 들이키면 딱이다. 


정말이지 그 동안 쌓였던 피로와 힘들었던 일들이 봄날 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지고 만다. 소시민적인 우리들에겐 이런 게 바로 작은 천국을 맛이다.



골프를 하려면 그래도 제대로 치는 사람들처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꾸준히 쳐야 감각도 유지되고 치는 맛도 난다. 


겨우 한 달에 한 번씩 치게 되니 칠 때 마다 또 새롭다. 결국 동료 운전기사들 보다 더 많이 치고 가장 많이 걷는 것은 항상 내 몫이 돼 버린다.


이래 하나 저래 하나 운동은 해야 하는데, 이렇게라도 푸른 대 초원 위를 걸어서까지 운동량을 보충하니 그도 좋다 봐야지. 


일하다 말고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골프공보다 먼저 푸른 하늘을 난다.



잃어버린 감각을 살려 겨우 드라이버 샷이 되는가 싶으면 세컨 아이언 샷이 죽을 쑨다. 그러니 걷고 치고 또 걷게 마련이다. 


5번 홀이었나 싶다. 드라이버 샷이 제법 잘 맞아 그 기분을 살려 세컨 아이언샷을 했는데, 맞는 소리도 경쾌해서 기분이 그만 골프공을 따라 하늘을 날았다. 


세상에서 쌓인 스트레스 덩이가 가슴에서 빠져나갔다.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새 하얀 공의 궤적이 그런대로 볼만했다. 


아니 나한테도 이렇게 연속해서 잘 맞을 때도 있나? 의아한 눈으로 지그시 공을 바라보다 말고 소스라치게 외치고 말았다. “아이고 머니나!”



새 한 마리가 뚝 떨어졌다. 뛰어가 보니 참새 한 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그대로 내동댕이쳐 있었다. 날아가던 bird(?)를 잡은 거였다. 


함께 골프를 치던 키위들이 다가와 보더니 “우~ 웁스!” 하고 물러선다. 아연실색 할 수 밖에…. 도대체가 말이 안 떨어진다. 


파(par)도 하나 못 잡고, 보기(Boggie)게임도 못하면서 Bird(?)를 잡다니!?



Birdy를 잡으랬지, 누가 살아있는 Bird를 잡으라고 했나? 그야말로 말이 안 나올 일이다. 골프치러 왔으면 얌전히 골프나 칠 일이지, 왜 잘 놀고 있는 참새를 잡느냐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안이 벙벙하다. 일도 못한 사람이 일을 저지른다더니 바로 그 짝이다. 손 위에 올려놓은 참새는 벌써 저 세상으로 갔고, 가벼운 바람에 꼬리 깃털만이 펄럭인다.



새를 나무아래 숲으로 옮기고 그 위에 검불로 덮어줬다. 죄도 없이 노닐다가 그만 제삿날이 됐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연못에 무심코 던진 돌 하나가 평화롭게 잘 헤엄치며 노는 개구리네 가족에겐 초상집을 만든다더니 바로 그 경우다. 


동화책, 우화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일을 저질렀으니 어떡한다? 그나마도 못 치는 실력에 이젠 양심까지 죄의식으로 가득 차다 보니. 


다음 샷부턴 심하게 땅을 파거나 애꿎은 공 머리만 때리고 만다.


세상을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애꿎게 비명횡사한 작은 새 생각만 하다가 가까스로 게임을 마치게 됐다.



동료 기사들에게 Bird(?)를 잡은 내 이야기가 큰 화제였다. 실력이 그렇게 늘었냐며 순진하게 놀라는 이도 있었다. 


바보처럼 그저 웃고 말았다. 조촐하게 자체적으로 만든 시상식에서 기대치도 않았는데, 특별상(Birdy)으로 쓰인 고추장 한 통을 받아 들고서 얼떨떨했다. 


그 동안 택시 골프 모임에 자주 못나왔더니 택시 골프모임에 빠지지 말라고 격려차 주는 주최 측의 배려였다.



그런데 왜 이번 골프 게임에선 아무도 Birdy를 잡지 못했을까? 일찌감치 살아있는 Bird를 한 마리 잡는 바람에 그만 나머지 Birdy는 놀라서 기겁하고 도망을 간 모양이다. 


“참새야! 내가 정말 잘 못했지. 지면을 통해 용서를 빌게. 잘 가고 편히 쉬렴.”



종일 내내, 고추장 매운맛이 진하게 내 마른 속을 데우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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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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