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50; 작가 - 위티 이히마에라 (Witi Ihima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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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50; 작가 - 위티 이히마에라 (Witi Ihimaera)

일요시사 0 374 0 0

<1944년 2월 7일~>


잊혀 가는 마오리 문화, 활자에 담아 생생히 부활시켜 


『웨일 라이더』로 세계가 인정해 주는 작가로 확실하게 굳힌 

위티 이히마에라는 그 뒤 작품 활동에만 힘썼다.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 출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Dear Miss Mansfield』(맨스필드 양에게)는 

문학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마오리 눈으로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을 다시 구성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한 권의 책이 삶을 바꿀 수 있다.’

 출판업자나 책방 주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톨스토이나 헤밍웨이 또는 생텍쥐페리가 쓴 명작 한 권으로 삶의 목표를 세운 사람이 많다. 책은 또 다른 ‘길이요 생명’이라고 자신한다.

 특별히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거나 아니면 문자가 있어도 영향력이 없는 경우에는 민족 고유의 사상을 알려주는 데 책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본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 그들이 지닌 정(情)과 한(恨)을 책에 담아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 위티 이히마에라는 그런 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History Maker)이다.



어렸을 때 벽에다 소설 줄거리 써놓아

 위티 이히마에라는 1944년 2월 7일 기즈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시골 농장 구석진 방 한 칸을 자기만 아는 작품으로 채웠다. 마음속에 소설 줄거리가 떠오를 때마다 벽에 한 줄 두 줄 써내려갔다. 철부지 어린아이 장난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진지했다.

 이히마에라는 해밀턴과 기즈번에서 초중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오클랜드대학에 들어갔다. 공부에 별 흥미가 없었던 까닭에 대학을 4년 동안 다녔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내몰리듯 고향 기즈번으로 돌아와 지역신문(Gisborne Herald) 수습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그것도 잠시, 웰링턴에 있는 우체국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근무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곤 했다. 그 가운데 한 편이 시사주간지 『리스너』(Listener)에 실렸다. 제목은 <더 라이어>(The Liar, 거짓말쟁이). 그의 이름이 키위에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빅토리아대학에서 시간제(Part Time) 수업 과정을 통해 학사 학위를 받은 뒤 1970년 제인 클레그혼(Jane Cleghorn)과 결혼한 위티 이히마에라는 영국으로 떠났다. 아내 간청에 떠밀려 간 영국에서 그는 창작 활동을 왕성히 펼쳐 나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에게는 글쓰기에만 매달린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위티 이히마에라는 1972년 『포우나무, 포우나무』(Pounamu, Pounamu: 보석 ‘비취’를 뜻함)를 펴냈다. 마오리가 쓴 첫 작품집이었다. 그전까지는 어떤 마오리도 단편소설집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이듬해에는 소설 『탕이』(Tangi, ‘장례’라는 뜻)를 출간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몬태나상(Montana Book of the Year)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마오리들의 문화와 사상도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오리 역사에 자부심 강해

 위티 이히마에라는 작가와는 조금 동떨어진 길을 걷기도 했다. 노먼 커크 총리는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해 외교관으로 기용했다. 파격에 가까운 그 인사는 위티 이히마에라가 18년을 호주, 미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마오리 문화와 역사를 외부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 

 위티 이히마에라가 작품을 쓰면서 가장 많은 비중을 둔 것은 마오리 문화와 역사였다. 파케하 눈이 아닌 마오리 눈으로 바라본 마오리족을 문학 작품 속에 녹여 그들의 설움과 자부심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소수 민족이 겪은 슬픔과 기쁨을 대변한 이야기꾼이란 수식어는 이히마에라를 따라붙는 꼬리표가 됐다.

 그의 대표작은 1987년에 내놓은 『웨일 라이더』(The Whale Rider)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25만 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다.(뉴질랜드에서 펴낸 책으로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훗날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청소년이 꼭 봐야 할 영화’ 목록에 올랐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열세 살의 케이셔 캐슬 휴스(Keisha Castle-Hughes)가 아카데미 최연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위티 이히마에라가 뉴욕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3주 만에 써낸 『웨일 라이더』는 수천 년 전 고래 등을 타고 뉴질랜드(아오테아로아, Aotearoa,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뜻)로 온 마오리 선조 이야기이다. 남자아이만 마오리 부족의 대를 잇는 일이 당연한 현실에서, 한 소녀의 눈으로 마오리족의 삶과 전통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웨일 라이더』로 세계가 인정해주는 작가로 확실하게 굳힌 위티 이히마에라는 그 뒤 작품 활동에만 힘썼다.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 출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디어 미스 맨스필드』(Dear Miss Mansfield, 맨스필드 양에게)는 문학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마오리 눈으로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을 다시 구성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작품 속에서 게이 양성애자 얘기 담아

 위티 이히마에라는 많은 책을 펴냈다. 그 가운데 『더 메이트리아크』(The Matriarch: 여자 가장)와 『불리바샤-킹 오브 더 집시즈』(Bulibasha-King of the Gypsies, 불리바샤-집시의 여왕)는 그에게 세계가 알아주는 출판물에만 주어지는 몬태나상을 받게 해 주었다. 이 두 소설은 마오리들만이 가진 삶의 질곡과 환희를 잘 묘사했다는 평을 들었다. 

 어느 날 불쑥 위티 이히마에라는 자기는 게이(gay)라고 밝혔다. 두 딸을 두긴 했지만 결혼한 지 13년 만인 1983년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다. 아직까지 이혼 절차를 밟지 않은 그들은 매스컴을 통해 평생토록 친구로 지내겠다고 했다.

 커밍아웃 이후 위티 이히마에라는 양성애자와 게이들 이야기를 담은 『나이츠 인 더 가든스 오브 스페인』(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 스페인 정원의 밤)과 『디 엉클스 스토리』(The Uncle's Story, 삼촌이야기)를 펴냈다. 성 소수자로서 겪는 고충을 담담하게 서술한 두 권의 책은 평단에 잔잔한 반향을 불러왔다.

 위티 이히마에라는 소설을 쓰는 일 외에도 여러 가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음악가가 됐을 것이라는 그는 오페라에 깊게 빠져 직접 가사를 썼다. 아울러 명시 선집, 연극 대본과 어린이 책 같은 여러 갈래를 넘나들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마오리는 또 다른 모양의 

뉴질랜드 사람” 주장

 마오리를 대표하는, 아니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위티 이히마에라는 마오리를 넘어 남태평양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오리는 또 다른 모양의 뉴질랜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마오리 작가들을 위한 협회를 세우고 마오리 게이와 양성애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글을 쓰며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위티 이히마에라는 2004년 빅토리아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디스팅귀시트 뉴질랜드 오더 오브 메릿’(Distinguished New Zealand Order of Merit, 키위 가운데 그해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주는 공로 훈장)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역사 없는 민족이 없듯이 문화(문학)가 없는 민족도 결코 있을 수 없다. 문학으로써 마오리 문화를 세상에 알린 위티 이히마에라는 뉴질랜드에서 참말로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을 바꾼' 인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글_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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