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8 ; 가넷의 꿈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8 ; 가넷의 꿈

일요시사 0 457 0 0

밝아오는 새 아침, 첫 날이다. 세상 바람 불어도, 붉은 해는 넘어가고 푸른 달이 다녀간 자리. 뉴질랜드 무리와이 비치에서 가넷 갈매기의 날개 짓이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가넷의 군무가 태평양 바다 위에 장관을 이룬다. 


아침 활강 시간에 모든 가넷 무리들이 나와 목청 돋워 흥을 돋운다. 하늘에서 바닷속으로 쏜 살처럼 수직 낙하도 한다. 홰를 치며 온 몸을 털고 하늘아래 바다 위에 곤두박질도 친다. 월드컵 럭비 결승전에 보내는 관중들의 환호소리처럼 온 바다 위로 가넷들의 절정 한마당 소리가 넘쳐난다. 온 세상에 펼쳐져 간다.



갓 날기 시작하는 새끼들은 어미들 격려의 날개 짓과 응원에, 몸이 공중 부양되듯 가볍게 뜬다. 온 무리가 하나 되어 즐겁게 나는 축제의 순간이다. 가느다랗게 얼굴 내미는 아침 빛 줄기를 받으며 전율적인 군무를 펼친다. 돌아갈 본향을 향한 혼신의 날개 짓인가. 하늘의 검붉은 기운과 바다의 검푸른 용솟음이 포효로 휘몰아친다. 새로운 역사를 써 간다. 고국에서 떠나와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이민자의 삶과 같다.



호주 타스마니아로부터 삼천 키로미터를 무리 지어 날아온 가넷 갈매기. 뉴질랜드 무리와이 비치에 날개를 접으며 평생 함께 하기로 만난 짝이다. 서로 일편단심 민들레로 죽을 때까지 삼~사십 년, 살 인연이다. 행여 한쪽이 먼저가도 혼자서 산다는. 


진흙을 물어다 둥지 테두리를 차곡차곡 쌓는다. 직경 삼십여 센치의 둥지에 나뭇가지 하나를 양쪽에서 함께 물고 온다. 둥지 안에 놓으니 딱 맞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암꿩만한 가넷 갈매기 짝이 기뻐 서로 스킨십 애무를 진하게 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이 통하니 저리 좋은 것, 꿈이 있어서이다. 꿈은 새로운 활력이다.



해로운 천적 접근이 어려운 바다 바위, 맨바닥에 새끼를 위한 보금자리 둥지를 튼다. 흙과 나뭇가지 그리고 부드러운 풀섶으로 심신이 쉴 안식처를 만든다. 더불어 사는 세상, 외따로 홀로 있는 집이 이니라 집단 군락지에 집을 짓는다. 함께 살아야 힘이 된다. 전체를 위한 작은 힘이 모여, 바위 위에 넘볼 수 없는 가넷 갈매기의 요새지가 성스럽다. 이민 와 세월이 갈수록 더불어 사는 힘이 소중함을 안다.



바위둥지에 낳은 알을 비바람에도 꼭 품고 꿈쩍 않는다. 초연한 성불이다. 고요 속에 생명이 꿈틀거린다. 간절한 꿈을 그리도 오래, 진지하게 품고 있다. 드디어 토, 독~ 알 속에서 새끼가 부리로 가녀리게 쪼아댄다. 어미 가넷이 환희에 벅차 그 부분 알 껍질에 톡, 톡~ 응답을 보낸다. 알이 부화하는 천지 개벽이다. 


줄탁동시 전설이 쓰여지고 있다. 쫘~ 악~ 알이 갈라지자 새끼가 바둥댄다. 젖어있는 새끼를 위해 알 속 액을 어미가 황급히 들이킨다. 새끼가 날개를 투, 둑~ 털고 일어선다. 이제 됐다, 세상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새끼를 바라보는 가넷 갈매기 짝의 사랑스러운 눈 길… . 뉴질랜드에 서서히 홀로서기를 하는 자녀들을 지긋이 뒤에서 바라보는 부모 마음 같다.



생애시작이 홀로였듯이 하루의 시작도 둥지 나서면 홀로다. 둥지 짝과 살면서 바깥에서 동료들과 더불어 어울리지만 그래도 홀로다. 가슴속에서 잠자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속 깊이에서 서려 나오는 찬란한 고독에 눈을 감는다. 마음은 앞서 푸른 창공아래 높푸른 바다 위를 건너 타스마니아 고향으로 날고 있다. 


둥지에서 꼼짝 않고 알을 품듯이, 이 아침에도 새로운 꿈을 안고, 비상을 꿈꾸며 위안을 한다. 아! 새로운 날이여, 날 수 있는 날이여! 더불어 함께 살면서 때론 홀로여도 이런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지금 여기, 마음은 벌써 고국을 날아 부모형제 친지를 향한다. 남태평양 바다의 활기찬 가넷 바다 기운을 화살기도로 쏴 올린다. 





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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