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3) 행복이 넘치는 교회(2) 서머나교회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3) 행복이 넘치는 교회(2) 서머나교회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역시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특별히 로마황제에 대한 숭배가 최초로 시작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서 에베소에는 “아데미신전”이 있었는데, 이곳 서머나에는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무역을 하는 항구도시인 동시에,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도 있는 곳이니까, 이 곳의 경제적인 형편이 어떠했을까? 아주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황제숭배로 인한 부요함이 있다면, 반대로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쓰디 쓴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겠죠. 그럼에도 서머나교회는 믿음을 지켜갑니다. 그렇기에 다른 대부분의 교회들과는 달리 서머나교회를 향해서는 칭찬만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칭찬을 받는 것이 그냥 되던가요? 아니죠. 서머나교회 성도들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과 환란, 그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견뎌낸 믿음의 견고함이 있었기에 칭찬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서머나교회를 향한 칭찬과 격려가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와 모든 성도님들에도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가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영원한 영적 부요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네 삶은 언제나 명확한 한계에 묶여 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절대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것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모하고 누려야 할 것은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부요함이나 평안함을 넘어선 영원한 영적 부요함입니다. 본문 9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여기 보면 서머나교회 교인들의 삶의 형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환난과 궁핍”입니다.   

  

서머나는 항구도시입니다. 무역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이 세워져 있기에, 로마정부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습니다. 모든 경제적인 요건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좋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환난과 궁핍의 삶을 지내야 합니다. 왜 그런가? 지금 서머나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부요함의 근본이 황제숭배에 있었거든요. 그럼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다른 일반 사람들은 어느 도시 사람들보다 더 부요한데, 기독교인들은 어느 도시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환난과 궁핍의 삶을 살아갑니다.

  

저들을 향해 오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합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가 큰 돌에 짓눌려지는 것과 같은 환난을 당하고, 생존의 문제까지 직면한 궁핍을 당하는 현실, 내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너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들이 지금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희에게 영원한 영적 부요함이 있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육신의 삶에 당할 환난과 궁핍은 아무리 길어도 100년 전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영적 부요함은 영원한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영원한 영적 부요함을 사모하고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고난 앞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는 두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큰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 누군가 나를 욕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일을 행하고는 발각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말씀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렇다면 오늘 서머나교회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무엇인가요? 본문 10절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고난이 하나님 안에서 당하는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머나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주를 위한 고난입니다. 그 고난의 현장에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로서, 고난 앞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장차 받을 고난의 내용도 나오죠.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라.” 실제로 당시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받아 옥에 던져졌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시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시험에 굴복하여 믿음을 저버린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사도 요한은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앞으로 당할 고난이 있겠지만, 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라는 시험도 있겠지만, 절대로 굴복하지 말라.” 이어서 굴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근거도 제시합니다.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여기서 “십일”은 어떤 특별한 상징이 담긴 숫자가 아닙니다. 고난의 끝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생명의 관이 예비되어 있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를 향한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고난 앞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생각할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고난의 문제로 나를 뒤흔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난은 결국에는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이겨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두려움으로 영적으로 바로 서고, 하나님 안에서는 주님 주시는 담대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삶의 현실을 마주할 때에라도, 하나님 안에서 넉넉히 이겨 승리함으로 복된 삶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입니다. 그 사랑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본문 10절에 말씀합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앞 부분은 이미 설명드렸고, 마지막에 어떤 당부를 하고 있습니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에 합당하게 우리 믿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죽도록 충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장차 받을 고난이 있어도, 마귀가 옥에 던져 넣고 우리를 시험할지라도, 변함없이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죽도록 충성하라.” 다시 말해 “죽어도 충성하라.”라는 것입니다. 서머나교회의 현실은 마치 큰 돌로 짓누르는 것과 같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궁핍이 있었습니다. 장차 받을 고난과 마귀의 시험을 지금 현재도 겪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성도들은 죽으면 죽었지, 믿음을 져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칭찬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을 권고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어서 11절 마지막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 한 번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할 때에, 둘째 사망을 면하고, 영적인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서머나교회의 충성된 신앙인들과 같이, 내게 주신 모든 직임과 직분과 사명,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든 삶에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예비하신 생명의 관을 얻는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 또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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