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19 ; 빅토리아 폭포

교민뉴스


 

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19 ; 빅토리아 폭포

일요시사 0 821 0 0

앤디와 레이몬드가 아프리카 사막 한 가운데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뜨겁던 한 낯의 태양이 사그라지고부턴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온 세상이 까만 맨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방팔방 어디에도 불빛 한 점 없는 세상~. 광야 적막이었다. 모래 위 텐트에서 나와 올려다 본 하늘에 희미한 별이 박히기 시작했다. 우두커니 시선을 허공에 쏘아 올렸다. 점점 쏟아지는 은하 별 세계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급기야 온 세상을 삼킬듯한 별나라 은하 천국이 열렸다. 사막 야생의 땅이 사리지고 무한 세상 밤 하늘이 열렸다.


​“우와~ 레이몬드의 고향, 아프리카에서 저런 별나라를 직접 마주하다니~”


“앤디! 뉴질랜드에서 아프리카에 온 선물이야. 뭉클한 태곳적 신비, 꽤 다른 맛이지?”


​***


뉴질랜드, 플래쳐홈스 건설회사에서 만난 인연이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별 꽃을 피우고 있다. 앤디가 7년 근무한 고참이었다. 2년뒤 입사한 레이몬드가 함께하며 5년이 흘렀다. 이번 부활절 연휴를 끼고 둘 다 4주간 휴가를 냈다. 함께 레이몬드 고향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온 앤디에겐 엄청 큰 충격의 시간이었다. 아프리카 상륙. 몇 년간 고대하고 기다린 휴가였다. 그냥 휴가만 온 게 아니었다. 

레이몬드가 고향에 마을 회관을 지어주고 싶다 해서 손을 보태줄 겸 온 발길이었다. 뉴질랜드 하우스 빌딩 경험이 많은 베테랑 목수로서 아프리카에 보시할 기회가 생겼다. 야생의 땅 아프리카에 발 디디며 숨가쁘게 움직였던 빼곡한 여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세상에선 눈을 뜨고 보면 앞만 보였다. 아프리카 밤 사막에선 눈을 감고 보니 모든 것이 다 보였다.

레이몬드 고향, 짐바브웨 마타벨랜드에 마을 회관 한 채를 땀 흘려가며 지어준 일. 마을 사람과 함께 통 돼지 바비큐를 하며 나눈 온정.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두 손을 하늘높이 올리며 외쳤던 감격. 이제 사막에서 밤 하늘을 보며 우주 찬가를 부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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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짓는 마을 회관 공사에 앤디는 그동안 건축 공사에서 쌓아온 열정을 다 쏟았다. 큰 야자수 옆에 터를 잡았다. 좀 넓은 공간에 모여 함께 놀고 머무는 공간, 한국식 정자처럼 특색 있게 지었다. 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뒤, 기둥 들을 세웠다. 튼튼한 나무를 가로 세로로 연결했다. 나무 프레임 골조를 완성하고 지붕 골조를 이었다. 허리춤 높이에 나무 판자로 바닥을 깔았다.

두 목수가 두 주간 뚝딱거리니 어엿한 회관이 위용을 드러냈다. 회관 주변 조경까지 다 마쳤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자잘한 일들을 도왔다. 회관이 완성되는 날, 한 동네 어른이 명패를 만들어서 회관 정면 벽에 붙였다. 뉴질랜드에서 와 지어준 기념으로 NZ HOUSE라 써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앤디가 돼지 한 마리 값을 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푸짐한 통 돼지 바비큐 잔치를 벌였다. 

앤디는 짐바브웨 사람들과 순박한 온정이 오가는 시간을 진하게 느꼈다. 바쁜 삶의 여정을 떠나와 이런 시간을 가지니 영혼에 단비가 내리는 듯했다. 작은 역할이나마 한데서 오는 존재감에 뭉클했다. 동료 레이몬드도 흡족한 얼굴이었다. 앤디 마음에 평화의 물결이 일었다.

***


여행을 좋아한 앤디에겐 빅토리아 폭포를 보는 게 오랜 꿈 중의 하나였다. 빅토리아 폭포! 그동안 말만 들어왔지 않은가. 세계 3대 폭포라 일컫는 나이아가라와 이과수는 예전에 구경했다. 남은 빅토리아만 못 본 상태였다.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한국에서 무역회사 다닐 때 출장 가서 둘러봤다.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는 뉴질랜드에서 트래 킹 팀과 함께 다녀왔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는 다르게 다가왔다. 그저 여행이나 트래킹이 아니라 지역 주민 삶 속에 들어가 일한 뒤 받은 큰 선물 보너스였다.

마을 회관 공사를 마친 뒤, 레이몬드가 지프차로 여행 안내를 했다. 앤디에겐 스쳐 지나는 주변 아프리카 풍경이 신비한 세계였다. 빅토리아 폭포에 다다르자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우레와 같이 가슴을 울렸다. 입을 다물 정도의 장엄한 대자연 서사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규모에 그만 압도되고 말았다. 무려 108m 높이에 폭은 1.7km가 넘고 쏟아지는 물량은 1분에 5억톤이라니? 말로 표현 못 할 대 장관이었다. 앤디는 그만 화석처럼 우뚝 서 버렸다. 하얀 물보라에 쌍무지개가 곳곳에 피었다. 폭포수 뒤로는 맑고 파란 하늘, 그 앞에는 천둥 치는 물안개! 경이로운 압권 그 자체였다.


Mosi Oa Tunya, The Smoke which Thunders!


얼마나 그렇게 서있었을까? 레이몬드가 어깨를 툭 쳤다. 그제야 앤디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 이런 세상이 다 있었구나! 앤디 폐부에 쌓인 응어리가 말끔히 씻어 내린듯했다. 대자연의 씻김굿 속에 빨려 들었다. 세상에서 말로만 들었던 다이돌핀에 감전되었다. 감성이 팍팍 변해갔다. 모르핀, 엔도르핀, 바이돌핀, 그리고 최상의 단계인 다이돌핀이 온 몸을 불살라버렸다. 눈을 떠보니 다른 세상이었다. 갑자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펼쳐졌다. 박지원이 끝도 없이 광활한 중국 요동벌판에 압도되어 속 울음을 터뜨렸다는 가슴 벅찬 감동 같은 게 올라왔다. 장엄한 대자연은 사람을 감전시켰다. 세상에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이런 대 장관은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경이롭고 숙연할 뿐이었다. 수 억년의 신비가 현대에도 버젓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몫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예술작품이었다. 신의 손길에 겸허히 고개 숙였다. 못살고 어려운 아프리카 짐바브웨를 먹여 살리는 효자라고 했다. 레이몬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왜 은혜로운 대자연을 이런 아프리카 야생의 터에 숨겨두었을까?

1.7km 폭의 폭포 주변을 걸어서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비옷을 입었는데도 물폭탄에 옷과 신발이 흠뻑 젖어버렸다. 경치 좋은 전망 포인트마다 번호가 붙어있었다. 1번부터 16번까지. 영국 탐험가 리빙스턴이 발견해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으로 불려진 빅토리아 폭포! 짐바브웨와 잠비아 경계를 흐르는 잠베지 강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폭포! 여행은 사람을 멀리 그리고 높이 들어올려줬다. 광활한 대자연의 시야로 좁디 좁은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작은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란다. 100년 인생에 무에 그리 얽매어 사냔다. 다 부질없는 욕심에 갇혀 눈앞이 어두워지는 것을 경계하란다. 앤디의 눈과 귀와 가슴이 뻥 뚫린 시간이었다. 가슴을 짓눌렀던 바위덩어리들이 다 밀려 떨어져 나갔다. 부활의 은총 폭포수가 휘몰아 내리쳤다. 물 폭탄이었다. 이번 부활절은 성당이 아닌 대자연 앞에서 폭포 세례를 받았다. 앤디가 묵주를 꺼내 침구하며 가슴에 십자 성호를 그었다.

***


아프리카에 왔으면 꼭 보고 가야 한다고 레이몬드가 강조한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 대서양 연안을 따라 형성된 1600여 km의 사막이 천 년의 우주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스러웠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붉은 모래 사구를 따라 온종일 운전했다. 짐바브웨의 북서쪽 이웃나라 나미비아는 국토의 80%가 사막이었다. 모래 속의 철분이 산화해서 다른 사막에서 못 보는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사막에 붉은 곡선의 사구가 물결모양으로 일렁였다. 파란 하늘과 붉은 사구가 만나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저녁이 되자 용광로처럼 붉게 달아오르던 태양도 지평선 아래로 빨려 묻혔다. 찬란하다는 인간 역사도 시간 앞에 예외가 없다.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랴. 사막의 밤이 깊어갔다. 남 아프리카의 야성, 광야가 찬란한 밤을 고스란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




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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