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22 ; 한 번에 한 가지씩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22 ;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요시사 0 770 0 0

집에서 나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조금 전, 집을 나오면서 차고 문을 내리고 왔나? 못내 미심쩍어서다. 차고에서 차를 몰고 나오고 나서, 차고 문을 내린 것도 같고 그냥 나온 듯도 싶다. 요즘 수시로 깜빡깜빡 한다. 집 앞에 당도하니, 차고 문은 얌전히 내려져 있다. 괜한 걱정이었다. 스스로 겸연쩍다. 오히려 차고가 미안해하며 한 마디 건넨다. ‘차고 문을 내릴 때, 소리 내어 “차고 문!”하고 외치면 잊지 않을 걸요.’


도로 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는 중이다. 나이 든 남자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려는 모양새다. 도로 가운데는 하얀 빗금이 쳐진 트래픽 아일랜드가 있다. 막 발을 떼려다 멈춘다. 이쪽 편 도로에 차가 멀리서 온다. 조금 있다 건너려고 움직인다. 그러다 다시 멈칫한다. 저쪽 편 도로에 차가 지나간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렇게 하기를 셀 수도 없이 반복한다. 양쪽 도로에 차가 없을 때까지 내내 기다린다. 보다 못한 트래픽 아일랜드가 손짓한다. ‘이곳가운데로 와서 섰다가 건너면 쉽게 되잖아요.’


오클랜드 병원에서 연로한 할머니를 택시에 태운다. 출발하려는데 어느 환자분이 암(癌) 병동이 어디냐고 묻는다. 내려서 알려 주다 그만 시간이 조금 지체된다. 그때, 차 안에 타고 있던 할머니가 날 보고 버럭 외친다. “My time!” 화들짝 놀란다. 타자마자 택시가 가지 않으니 지청구를 날린 것이다. 남에게 관심 가진 나더러 자기 시간에 왜 집중하지 않느냐는 당연한 주장이다. 내 오지랖이 무색해진다. 한 가지에 집중하라고 등짝에 죽비를 맞은 기분이다. “Sorry~”


아내는 찌개를 끓이면서 전화도 받고 음악도 듣는다. 중간에 빨래를 가져다 널기도 한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나보다 훨씬 많은 듯싶다. 양쪽 뇌의 교통이 원활한가? 다른 일들을 동시에 처리한다. 나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처리하게 되어 있는가? 한 가지 일에 몰입하면 다른 것은 들리지도 않는다. 컴퓨터에 뭘 치다가 빠져, 야단을 듣곤 한다. “밥 다 식겠수!” 아내의 핀잔을 듣고서야 벌떡 일어선다. “언제 밥상 차려놨지? 미안~”


글에서도 한가지씩이 통한다. 김훈 작가의 글을 자주 읽는다. 이유는 글의 단순함과 깊이에 매료되어서다. 뉴질랜드의 겨울 밤, 시린 달을 보는 듯하다. 투명하고 명징하다.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깊은 인상을 준다. 한 문장에 하나의 이야기만 녹여내는 맛! 상황을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스케치하듯 보여준다. ‘Show, Don’t tell’. 주어와 동사라는 뼈대만 가지고 사실을 그리듯 써내려 간다. 그의 담론에 빠져든다. ‘살아있는 글이란 사실에서 나온다. 사실(fact)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에 바탕 해서 의견을 만들어야 한다.’ 한 문장에 꼭 필요한 것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진격해 나간다. 문장에 힘이 있다.


밥상머리에서 TV 리모컨 스위치를 드는 순간,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밥 먹을 땐 밥이나 드슈~” 밥 먹기 전에 아내 퉁을 먼저 먹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생활 10계명에도 있는 내용. 내 입으로 여러 차례 이야기 해놓고도 깜빡 한다. ‘가족과 밥 먹을 땐 TV를 끈다.’ 늦게나마 아내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와~ 된장 찌개 맛이 딱 이네!” 고국방문 차 다녀오며, 아내가 가져온 된장 맛이 입안에 감긴다. 처남 댁 고향, 보길도에서 공수해온 된장 맛의 진가를 느끼는 밥상머리다.


한 순간 한가지씩만 제대로 하면 그만인데… .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일에 빠지는 것. 차려진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우러나는 깊은 맛을 볼 수 있다. 몇 가지를 겸해서 하면 건성으로 하기 십상이다. 한 가지에 몰두와 집중이 필요하다. 운전할 땐 운전만 한다. 책볼 때는 독서삼매에 빠진다. 이야기할 땐 상대의 입에 집중한다. 옛 선인의 말이 다시 들린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 단순 철학이 깔끔하다.’ ‘살 때 열심히 살다가, 갈 땐 미련 없이 간다.’


‘한 번에 한 가지씩’ '많은 일을 해내는 가장 빠른 길은 한 번에 한 가지씩 처리하는 것이다' 이런 좌우명까지 삼아 살아간 이들도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세상에 지혜로운 조언이다. 나이 들수록 복잡한 것을 동시에 하기가 어렵다.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나를 마치고 나서 다시 하나를. 초저녁에 뜬 달이 밤중에 나와 보니 딱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한 뼘씩 한 뼘씩, 구름에 달 가듯 여운을 남기며 미끄러져 간다.*



 

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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