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6) 행복이 넘치는 교회(5) 사테교회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6) 행복이 넘치는 교회(5) 사테교회 <요한계시록 3:1~6>

사데는 금 산업과 염색업으로 인해서 엄청난 부유함을 누리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소아시아 도시들에 비해 황제숭배가 약했던 곳입니다. 다른 도시들은 황제숭배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세금 감면의 혜택도 받았습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황제숭배에 열을 올립니다. 하지만 사데는 이미 부유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황제숭배 같은 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데교회 성도들은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들에 비해 좋은 여건 속에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는 일도 없었고, 우상숭배나 황제숭배에 대한 강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데교회 역시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겁니다.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나 자신을 바라보고, 우리 교회를 바라보는 것.” 사데교회를 향한 책망의 말씀, 회개의 촉구, 그리고 칭찬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인으로, 교회로 세움 받고자 결단하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내 신앙의 깊은 곳을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1절에 예수님께서 사데교회를 향해 주시는 평가입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이어서 2절에도 말씀합니다. 사데교회의 두 가지 특징입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 그리고 “하나님 앞에 행위의 온전함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도, 어려움도 없습니다. 게다가 사데지역은 종교심이 많은 지역이었기에 교회가 쉽게 부흥되었습니다.  이 곳 사데에 사는 사람들도 경제적으로는 풍요를 누리고 있었지만, 전쟁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었고, 생명의 위협이 늘 가까이 있었기에, 종교심이 많았습니다.

  

종교심이 많았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믿음도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다고요?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나님 앞에 너의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겉과 속이 다릅니다. 마치 회칠한 무덤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번영과 풍요 속에 영적인 허기에 빠진 이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지만, 겉으로 볼 때는 뭔가 대단한 부흥을 이루어가는 것 같았지만, 교회에 모인 숫자도 많았고, 교회도 함께 풍요를 누렸지만, 신앙의 열심도 다 좋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사데라는 도시의 모습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풍요 속에 영적인 빈곤이 가득했던 교회가 사데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요? 내 신앙의 깊은 곳은 어떤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신앙의 깊은 곳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말 아름다우려면, 내 깊은 곳은 더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 정말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행위의 온전함을 이룰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내면 깊은 신앙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하나님께 크게 칭찬 받는 우리 교회,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때로는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그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말씀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에게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요, 준비된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 

  

본문 3절도 같은 말씀이죠.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언제나 기회는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 주를 위해 헌신할 기회, 예배하고 사명 감당할 기회, 언제나 기회는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기회가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본문 3절에 예수님께서 세 가지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았는지, 내가 예수 십자가 부활이라는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지키라!” 이건 신앙의 훈련입니다. 내가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면, 준비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은 “회개하라!” 회개는 180도 돌이킴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준비된 모습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삶을 다하고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을 바라보며, 기회가 있을 때에 준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함”으로, 주님 만날 그 날을 준비하는 삶,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이 가장 복된 날이 되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앞서 사데교회를 향한 책망과 회개의 길을 제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는 칭찬의 말씀을 주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오늘 사데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 무서운 책망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데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갑니다. 모두 다 죽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들을 이끌어가는 소수의 남은 자, 정말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일마다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모두 다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갑니다. 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네가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죽은 자로다.” 하지만 그 속에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또한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이 시대의 남은 자,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데교회의 “사데”가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사데가 바로 남은 자라는 뜻입니다. 남은 자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남은 자로서 합당하지 못한 모습, 그럼에도 그 이름이 “사데 – 남은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가는 합당한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남은 자가 되어, 정말 살아 있는 자가 되어, 마치 어둠 속에 빛과 같은 존재로 세상을 비추어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겉모양을 꾸미는데 취해 있을 때에, 주의 말씀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세워갑니다. 그러할 때에 저들은 예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예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 받아도, 겉으로 볼 때 아무리 신앙이 좋아보여도, 예수님께서 “네가 죽은 자다. 너의 온전함을 찾을 수가 없다.” 말씀하시면 끝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구원의 은혜는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내 신앙의 깊은 곳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순간,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여” 준비된 모습을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남은 자, 예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 이기는 자에게 예비된 흰옷을 입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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