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25 ; 딱 내 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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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아모르파티 25 ; 딱 내 얘기네!

일요시사 0 776 0 0

“선배님 ! 잘 만났심더. 이놈의 마누라땜시 죽겠심더. 아, 글쎄 저녁밥을 주는데 기분이 상해서 그냥 나왔심더. 식탁에다 밥그릇을 툭 던지면서 먹으라는 겁니더. 제가 뭐 거지입니꺼? 밥그릇을 소리 나게 던지게. 우쩌믄 좋십니꺼?”


“후배는 나보다 나은데. 난 밥상도 못 받아보고 그냥 나왔어. 그래서 샌드위치 사서 이렇게 먹고 있잖아 지금. 같이 먹을 거야? 마침 한쪽 남았는데.”


토요일 저녁 주유소 한켠에서 택시 손님을 기다리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다. 지나치던 후배 택시 기사가 인사를 하더니만 볼멘 하소연을 쏟아낸다.


“괜찮심더. 그런데 선배님도 그렇심니꺼.”

“뭐, 그럼 나는 특별한 사람인줄 알았어? 똑같아. 내도 좋은 일, 속상한 일 다 있어.”

“고~뤠~ 요?”


위로 받고 싶었던 후배가 위안이 되었나, 격앙된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진다. 그 얼굴에 쓰인 독백이 사뭇 편안한 느낌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선배님 얘기가 딱 내 얘기네. 괜히 혼자만 끙끙거렸나?’


나 역시도 아내와 무던히도 부딪치고 치열하게 살아 온 것 같은데, 그러기를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다. 이제 조금 눈을 떠가나 싶은데도 아직도 새롭다. 어떨 땐 아내는 말 그대로 매직 성(城)이다. 요술을 품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른다. 정말 아무 잘못도 없는 것 같은데 나한테 괜히 퉁퉁거리는 날, 그대로 맞받아치다가, 참~나… . 결국은 본전도 못 찾고 불편한 심기만 안은 채 수그러들었던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럴 때 그 허탈감이라니. 그러다 어느 때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내가 ‘그날’ 이라는 매직에 걸린 것을. ‘각성의 칼날(?)’이랄까. 일상 의례히 내가 악셀 페달이라면 아내는 브레이크 페달인 편이다. 브레이크 자주 밟아 그리 문제될 것 없단다. 남자답게 악셀 밟기라도 하다가 꼭 문제가 되고 만다고. 그런가.


답답한 마음에 악셀을 못 밟아 툴툴거리다 보면 저 만치 앞에 경찰이 스피드 건을 들이대고 있다. 그만 불평이 슬그머니 들어가 버린다. 나의 관능이 아내의 직관에 또 그만 두 손 들고 만다. 아내는 한 달에 한 번씩 다운로드라도 받는가. 매직 순환 의식(Ritual)? 이를 거치고 나면 ‘칼날 같은 직관’이 한층 더 매섭다. 이를 알고부터 아내를 이길 생각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둘 다 똑같으면 처음엔 좋지만 평생 그렇진 않다. 서로 다르면 더 넓은 영역의 세상을 살게 되는 맛도 있다. 사계절이 똑같이 봄인 것과 각기 다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세상은 확실히 다르다. 


후배가 곧 그 세상에 들어서서 아직 좌충우돌 중이다. 관능과 직관의 부딪침이다.


***


의욕과 열정이 앞선 젊은 성직자가 사목 활동에 힘이 들어 존경하는 스승 성직자를 찾아갔다.


“스승님! 성직자로서 고뇌와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찌 해야 합니까?”


“아직껏 나도 그렇다네! 그래서 지금 사탕 하나 입에 물고서 그 생각하고 있잖아. 자네도 한 알 먹어 볼 텐가. 그 고뇌가 사탕 녹듯 사라질지 어디 아는가?” 


‘아니, 스승님도 그런 생각을… . 어쩜 딱 내 얘기네’


젊은 성직자의 답답하기만 한 문제가 봄 눈 녹듯이 스르르 날아간다. 스승 성직자로부터 좋은 위로 말씀이라도 들으러 갔는데 우문현답이다. 직설적 가르침이 아니라 잔잔한 공감의 물결이다. 왜 존경 받는 스승이고 그 옆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지를 알 것 같다.


무릇 사람들은 가르침 받기 보다는 어쩜 감동 받기를 원하는 지도 모른다. 가르침은 상대가 주는 것이지만, 감동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민자로서 외국에서 산다는 게 좋은 일도 많지만, 때론 힘들고 외로울 때도 많다. 속 털어 놓을 자 적으니 하늘에 대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우쩌믄 좋십니꺼?”


사람들은 몰라도 하늘은 알고 땅도 아니 그렇게라도 하소연해보는 것이다. 즉답은 없다. 곧 바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돌고 돈다. 우회의 답을 우연 속에 감동으로 넣어 두는 게 아닌지. 알아듣고 볼 수 있기까지는 내 선택이다.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속 사람들의 재기를 통해서, 온갖 풍상이 서린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면서 새 힘을 받아 가게 한다.


비 오고 을씨년스럽던 뉴질랜드 날씨도 시간 앞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파란 하늘아래  빛나는 햇살이 창문으로 쫙 넘쳐 들어 퍼진다. 밤새도록 틀어 두었던 제습기가 집안의 습기를 한 통씩 빨아내는 것을 봐도 참 대단하다. 방안 공기에 별로 잡히지도 않은 수증기가 출렁출렁 물 한 통으로 모아지다니. 시간만이 그리 한다. 


방향성 있는 기다림이 꼭 세상을 바꾸어 준다. 우쩌믄 좋습니까? 애닳다고 서둘러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문제라 생각되는 것을 저만치 던져놓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세상이 바뀐다. 기다리는 시간이 채워지고 나서야 문제가 녹아내린다. 그래서 아픈 사람에겐 시간이 의사도 되는가.


***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어디 거저 생겨났겠는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만 봐도 어쩜 딱 내 얘기다. *





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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