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9) 어둠 속의 빛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9) 어둠 속의 빛 <출애굽기 12:1~1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마지막 밤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이 밤은 두려움의 밤이요, 근심의 밤이요, 재앙의 어둠이 드리워진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밤은 12장 42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요? 어둠의 밤에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비추어졌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계속해서 어둠 속에 있는듯한 답답함이 있습니다. 애굽의 노예생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일제강점기 속에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어둠이 짙은 그 밤, 애굽에게는 심판의 밤이요 죽음의 밤이요 절망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밤이요 생명의 밤이요 소망의 새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둠 속에 임한 하나님의 빛입니다. 그 빛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슬퍼합니다. 아쉬워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력이 쇠해지고, 기억력도 쇠해지고, 정신력도 쇠해지고, 그 어느 것 하나 뭔가 혁신되어가는 것보다 다 사그라져가는 쪽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시간의 속성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다른 시간이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둘 다 헬라어로 시간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중에서 크로노스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카이로스의 시간은 어떤 특별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내게 될 그 밤의 시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1919년 3월 1일은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노릇을 하면서, 애굽의 시간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는 이 시간을 새로운 첫 달로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어제까지가 노예의 시간이었다면, 이 밤이 지나면 이제 자유인의 시간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1945년 8월 14일까지가 일제 강점기, 억압의 시간이었다고 한다면, 1945년 8월 15일부터는 새로운 광복의 시간이요, 자유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우리나라의 광복의 시간이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믿기 이전까지의 모든 삶이 흑암에 거하는 삶이었다면, 죄와 사망의 그늘에 묶인 어둠의 시간이었다고 한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 시간, 우리들은 빛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럼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주의 말씀 붙잡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 속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는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시간 속에는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어둠 속의 빛,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주의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0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21절부터 27절까지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언하는 장면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거죠. 그리고 2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그럼 앞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내용은 딱 하나입니다. 유월절 규례에 대한 말씀. 마지막 장자의 죽음을 말씀하셨고, 피할 길을 알려주셨고, 백성들은 그대로 행합니다. 

  

앞서 재앙이 임할 때를 보면, 우박재앙이 내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흑암재앙에서도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짐작컨대, 다른 재앙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곳은 구별하여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구리 재앙이 와도, 독종의 재앙이 와도, 파리와 이의 재앙들이 와도 별 문제 없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내면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에서는 하나님께서 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 온 애굽 땅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주의 말씀대로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들의 집에는 사망의 기운이 미치지 못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명을 보존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무엇인가요? 주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마지막에도 이렇게 정리하시죠. “주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주의 말씀, 그 위에 설 때 우리에게 살 길이 열려집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 어둠과 같은 세상 속에 빛이 되시는 주의 말씀, 그 속에 담겨진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어린 양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임할 마지막 재앙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비의 시간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라신 사건이 일어난 때가 바로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그 피를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구원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흠 없는 어린 양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애굽에서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흠 없는 어린 양의 피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어린양의 피로도 그 엄청난 죽음 속에서, 애굽의 모든 집안에 임한 죽음의 역사를 이겨내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친히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큰 생명의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짜보라. 피가 흐를 것이다.” 예수님의 피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그 밤에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문설주에 피를 바릅니다. 피는 생명을 뜻하죠. 그 집안에 장자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흠 없는 어린 숫양이 대신 죽임을 당하고, 그 피로 말미암아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재앙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린 양의 고기를 함께 먹습니다. 배부르게, 넉넉하게 먹습니다. 이것으로 저들은 광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의 육적인 양식을 삼습니다. 실상은 오늘 한끼 식사일 뿐이지만, 광야 40년 인생길의 준비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출애굽, 이 어둠의 밤을 지나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어린 양의 능력을 힘입어 나아갑니다. 마치 광야와 같은 인생길,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함께 계셔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의지할 때에, 우리에게 영적인 구원의 기쁨이 임합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할 때에, 간구하는 모든 제목마다 응답하시는 삶의 축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 더불어 3.1운동 104주년를 기념하며 예배하는 이 시간, 우리 안에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이 깊이 새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4년전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벌였던 이들의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저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작지만 확실한 소망의 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이 결국에는 온 나라를 향한 만세 운동으로 번져나갔고, 그 빛이 작은 불씨가 되어서 광복의 역사가 일어났고, 오늘날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 안에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갈 때에, 어둠 속의 빛과 같이 세상을 밝혀가는, 주의 빛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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