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4)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가? 누가복음 19: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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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4)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가? 누가복음 19:41~48

수많은 무리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으로 향하시던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성을 바라보시며 우십니다. 본문 41절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본문에는 그냥 “우시며”라고 되어 있지만, 울음도 여러 종류가 있죠. 그런데 본문의 “우시며”의 헬라어 원문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면 통곡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무리들의 환영을 받으시면서도 왜 성을 바라보실 때에 통곡하셨을까요? 그냥 눈물 한 방울 흘리셨으면, “감격하셨구나!” 이런 느낌일 수도 있을 터인데, 통곡을 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어지는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에 임할 임박한 환란 때문입니다. 그 환란 속에 고통을 겪게 될 백성들을 향한 애통의 마음으로 통곡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그만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종려주일,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예수님의 통곡의 눈물이 우리 심령에도 흐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믿음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자 믿음으로 결단하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시면서 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2절입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사 대속의 제물이 되신 것, 그 본래 목적 자체가 평화를 위함입니다. 누구와의 평화요?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이미 여러차례 말씀드렸듯이, 구원은 평화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심판과 징계를 받았는데,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평화의 관계가 불화의 관계가 된 것이죠. 이러한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관계를 깨뜨린 요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수님께서는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를 믿는 자에게 구원의 역사가 임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탄식과 같이, 이러한 “평화에 관한 일”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거예요. 지금 예루살렘성에 살아가는 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거예요. 


이어지는 43절과 44절에 보면 예루살렘성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실제로 예루살렘성은 A.D. 70년, 로마의 티투스장군에 의해서 함락되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때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때는 어떨까요? 이보다 훨씬 더 참혹합니다. 티투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성이 점령당할 때의 고통은 최고가 육신적인 죽음의 고통입니다. 한 인간의 육신이 가장 참혹하게 고통을 당하면서 죽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이 우리 모두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준비된 심령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에, 그 날이 두려움과 심판의 날이 아닌, 말할 수 없는 복된 영광의 날이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언제나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기억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지금 정말 붙잡을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곧바로 제일 먼저 찾으신 곳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성전에 들어가시사 장사하는 자들을 다 내어 쫓으시고 말씀하십니다. 46절입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시편 137편을 보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시절을 배경으로 한 말씀이 나옵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여기서 시온은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거기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었습니다. 왜 울었나요? 포로로 끌려온 신세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된 현실 때문에? 굶주린 상황 때문에? 포로로서 내일을 알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아닙니다. 저들이 거기서 울었던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화려한 성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크고 화려한 성전에서 매일 피의 제사가 끊이지 않고, 종교적으로 아주 번성하는 모습입니다. 저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해서 성전 앞마당에서 돈을 바꾸어주고, 최상급의 번제물로 사용될 짐승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배에 대한 사모함은 그 어느 때보다 무뎌졌습니다. 주를 찾는 간절함은 그 어느 때보다 헤이 해졌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통곡하십니다. 당장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장사꾼들을 다 내어 쫓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참된 예배가 사라지면 끝입니다. 존재 가치가 사라집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성전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예배가 사라지고, 기도가 사라지고, 주를 향한 찬양이 사라지면 끝입니다. 형식적인 예배의 모습만 남아있으면, 그곳은 박물관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인 주의 몸 된 교회에서 주의 십자가 의지하여 주님 앞에 예배할 때에, 우리 주님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 큰 은혜로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날마다 십자가 구원의 확신을 새겨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근래에 여러차례 말씀드렸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안에 담겨진 뜻이 무엇인가요? 잘 들으라는 것? 그 정도가 아니죠. 잘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담겨진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내 안에 잘 새기고, 내 삶에 그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귀한 은혜의 말씀을 선포하심에도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들은 거꾸로 읽어갑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께서 전하신 생명의 말씀이 저들에게는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올린 기득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명예와 권세를 다 무너뜨리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온힘을 당해서 진리의 말씀을 막아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어떤가요? 48절에 말씀하죠.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일반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다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들이 도리어 가진 것이 없으니까 순수하게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그렇기에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제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저렇게 꼬아서 알아듣기 힘들게 하신 말씀이 있으시던가요? 오히려 내 마음이 세상적인 생각들로 뒤틀려 있기에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거죠. 


주의 말씀 앞에서, 내 생각으로, 내 경험으로 판단하고 재단하기 이전에, 그대로 받아 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운동을 배우고, 어떤 자세를 배우더라도, 가장 잘 배우는 게 뭔가요? 그냥 있는 그대로 따라하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냐? 이렇게 하면 더 낫지 않냐? 꼭 그렇게 해야 하냐?” 그전에 그냥 그대로 따라하는 겁니다. 그러면 깨달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대할 때에도 순수한 믿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 안에 담겨진 은혜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 말씀이 나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은혜로 체험됩니다. 거기에 살 길이 열려집니다.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살 길을 찾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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