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찌감치

손바닥소설


 

멀찌감치

일요시사 0 1307
모처럼 하루 시간을 비워둔 날이다. 이참에, 생각해둔 이야기나 정리해볼까. 버켄헤드 도서관을 향해 걷는다. 차는 도서관 인근, 동네에 세워두었다. 도서관 가까이는 30분 한정 주차라서, 멀찌감치 세워두고 발품을 판다. 풍광 좋고, 장서 많고, 한국 책 코너도 있는 버켄헤드 도서관이 발길 향하게 하는 쉼터다. 

사실, 내 몸은 지금 불덩이다. 요즘 들어 부활 시기를 앞두고 택시 일이 바빴다. 여러 일에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서 몸과 마음이 고갈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Burn out? 걱정스러워하는 아내의 권유로 집에서 푹 쉬기로 했다. 아내가 일터에 나가고 혼자였다. 뭔가 허전했다. 쉬며 둥 구는 일이 영 마뜩 치가 않았다. 쉬엄쉬엄 나갈 준비를 했다. 반바지, 반소매 센들차림에 륙색 하나. 가볍게 집을 나섰다.

버켄헤드 도서관 1층에 자리를 잡는다. 하버 브리지 한쪽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버켄헤드 메디칼 센터’ 간판이 오른쪽 건물 위에서 나를 마주 본다. ‘내게 치료 기운이라도 주려나?’ 기대에 바다가 그림을 보여준다. 하얀 요트 셋이 사이좋게 미끄러져 간다.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 벌써 오클랜드에 초가을 기운이 선선하게 배어있다. 

옆 좌석에는 70대가량의 할머니가 노트북을 켜놓고 건반 치듯 뭔가를 쓰고 있다. 혹시 작가분 아닐까? 한참을 치다가 머리 들어 창밖, 바다를 바라다보신다. 나도 백지에 연필로 정신없이 끼적거린다. 한참 후 머리 들어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요트 셋이 사라지고 다른 요트 몇 대가 자리를 바꿔 오가고 있다.

‘누죽걸산’ 스마트폰 카톡 창에 웬 사자성어(?)가 뜬다. 뭘까? 전혀 들어보지 못한 단어다. 한참 지나자 답변이 뜬다. ‘걸어야 산대요, 누우면 죽는대요.’ ‘뭔 감?’ ‘ㅎㅎ’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치열한 고통 속에 있을 때,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보는 것. ‘누죽걸산’이 오늘의 내 모습과도 무슨 연관이 있나? 집에서 누워 마냥 쉬려다가 걸어 나왔으니… . 옆 좌석 할머니가 두어 시간 뭔가를 몰입해서 노트북에 치더니만 일어나신다. 잠시 후, 은발의 긴 머리 여성이 그 자리에 앉는다. 대학생인가. 두툼한 전공 책을 펼치고 열심히 본다. 나도 그쯤에서 일어난다. 가까스로 이야기 초안을 건졌다.

한국식품점에 들러 쌍화탕 한 박스를 산다. 두어 병, 밥 공기에 따라 전자레인지에 데 펴 마신 후 취안을 할 생각이다. 파나돌 한 알도 곁들이면서. 목에는 수건으로 감고서~ 그동안, 몸살감기 때 대처했던 방식이다. 

예기치 않은 일로 정상적인 일상이 흐트러질 때, 좀 멀찌감치 떨어져 다른 일에 빠져 보는 것. 내 소소한 문제 해결법이다. 아픈 덕에 미뤄둔 글 감 하나를 정리했으니 밑진 장사는 아니다. 집 앞뜰에 활짝 핀 선홍빛 나팔꽃 한 송이가 멀찌감치서 나를 반기며, 나팔을 분다.  

‘빰빠라 ~” 



저자 프란시스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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