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지

손바닥소설


 

안녕하신지

오문회 0 1532
  출근길에 비교적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가는 방향의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낯은 익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못한다. 서양 사람들처럼 누구를 만나던 “하이!” 하고 지나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에게는 그런 정서가 없다. 오히려 서로 눈을 안 맞추려고 애써 외면한다. 시선이 마주치면 “안녕 하세요” 정도의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낯익은 사람들인데도 그렇다. 

 초등학생인 우제를 알게 된 것도 출근길에서였다. 우연한 기회에 말을 건넸다. 키가 작아 저학년인 줄 알았는데 5학년이라며 부끄러워하던 녀석을 아침마다 만난다. 저쪽에서 오다가 나를 발견하면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다. 내 눈길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어지간히 가까워지면 나는 그 애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쏠’톤으로 소리친다. 

“안녕~”  그러면 그 애는 쑥스럽게 웃으며 살짝 허리를 굽힌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안녕”소리에 기분이 좋아지고 엉거주춤한 그 아이의 허리인사와 수줍은 웃음을 보는 일 또한 큰 즐거움이다. 

 “안녕”이라는 인사말은 그렇게 마주 보며 나누는 것이다. 그냥 스쳐 지나도 다정하고 친밀하다. 그런가 하면 언제 들어도 뒤끝이 상큼하게 들려서 좋다. 받침 “o” 때문인가 보다. 동그랗고 환한 울림이 잠시 서로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런데 같은 안녕이라도 만날 때 내는 소리와 헤어질 때의 그것은 다르다. 만났을 땐 짧고 경쾌하게, 헤어질 때는 길게 여운을 남기며 멀리 띄운다. 

“안녀~o!" 끝을 길게 끈다는 것은 마음속 아쉬움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일 게다. 정다운 인사말, 안녕은 서로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끼리나 주고받는다. 아니면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다정한 마음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어른께는 맞대놓고 쓸 수가 없다. “안녕 하십니까”로 고쳐야 한다. 보다 깍듯하고 수직적으로 들린다. 그렇게 좋던 어감도 조금은 반감되는 느낌이다. 상하의 관계에서는 격식이 다정함을 밀어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녕은 격의 없는 관계에서만 빛을 발한다.

 나는 ‘안녕’ 다음으로 ‘안녕하신지’라는 인사말을 좋아한다. 아마 어느 노랫말이 남긴 여운 때문일 것이다. 주고받는 것이 인사라고 한다면, 안녕하신지에는 혼잣말 같은 쓸쓸함이 배어있다. 일방통행이다. 이 말은 안녕처럼 수평적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시공간이 다른 삼차원적인 인사말이다. 그래서일까, 공중으로 날아 가버린 풍선 같기도 하고 어두운 밤하늘을 그으며 떨어지는 유성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안녕하신지는 그렇게 기억 속에는 있으나 만날 수 없는 그 사람에게 보내는 메아리 없는 인사말이다. 꼭 한 번은 만났으면 싶은 사람, 그러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할 때 쓰는 말이다. 그것도 남이 듣도록 겉으로 소리 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만 보내는 인사다. 볼 수 없어서 더 간절한 사람,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 얼마나 변해 있을까, 가끔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이 세상 떠나기 전 오다가다 우연처럼 만났으면 싶은 사람, 바람결에라도 소식이 묻어올까 기다려지는 사람.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길을 걷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안녕하신지” 그러자 금세 안개 같은 입자들이, 나를 감싸며 피어 오르는 것 같다. 보라색도 같고 연두색도 같고 그런가 하면 가뭇없이 사라져가는 저녁 놀빛 같은 어스름이기도 하다. 어쩌면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빚어내는 무채색의 색조이리라.  샌드드로우잉 하듯 모였다 흩어지며 살아나는 얼굴.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 모습은 정말 그 사람이 맞기나 한 건지, 옛날 그 버릇은 아직도 여전할까? 웃을 때 양 볼에 패이던 긴 볼우물은 이제는 주름으로 남았을까.

 그 많던 사연을 뒤로 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 풀 길 없는 아쉬움을 강물에 띄워 보내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나. 우리 서로 헤어지며 ‘안녀~ㅇ’이라고 인사말이라도 나누었던가. 앞만 보고 걷는 내 앞에 짙은 회한이 돌부리처럼 나를 멈춰 세운다. 

“안녕하신지~”  한 번 더 되뇌어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먼 하늘을 바라본다. 그가 이런 나를 본다면 예전처럼 빙그레 웃어줄까? 아니면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릴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한 마디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단번에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여 줄 것 같지만 지금은 아득하게 멀기만 한 사람.

 새삼스레 빛 바랜 그리움이 옅은 향기처럼 감돈다. “안녕하신지”가 마술처럼 불러다 준 그런 사람 하나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차라리 행복한 일이지 싶다. 오히려 그런 사람 하나 없이 저무는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더없이 삭막하고 쓸쓸한 일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안녕하신지”는 어쩌면 나를 위한, 나에게 건네는 인사인지도 모르겠다. 

저자 이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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