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손바닥소설


 

차례

일요시사 0 1292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24년의 뉴질랜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의 요즘 체감온도를 말하자면 금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겨울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춥다는 생각이다.  
비가 많이 온다는 것도 한국처럼 장마나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니고 연일 제멋대로 부슬비를 뿌려대는 것이라 화끈한 폭우가 아니라면 쨍 한 햇살이 그리울 때가 많다.  영하의 기온도 아니면서 은근히 털옷을 입게 하고 몸을 오그라지게 하는 오클랜드의 추위는 을씨년스런 뉴질랜드 교민 경제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아 이제 그만 추석이 그리워 진다.

추석(秋夕)은 한가위로 부르기도 하며,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서 설날과 더불어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한'이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란 '가운데'를 나타낸다. '가위'란 신라 시대 때 여인들이 실을 짜던 길쌈을 '가배(嘉排)'라 부르다가 이 말이 변해서 된 것이다. 금년도 추석은 음력으로도 그렇지만 양력으로도 9월의 가운데인 15일이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다. 추석에는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추석이 오면 고국의 국민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를 흔히 '민족대이동'이라고 부른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듯이 멀리 올라가서 우리 조상들 역시 자손이 번성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풍족한 삶을 원하고 있기에 가족과 친척이 한데 모여 화목한 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 사는 우리의 2세들에게 추석은 그저 부모님 세대의 명절로만 여기며 조상들의 숨은 뜻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어 안 스럽다.  이것은 우리 기성세대들의 잘못으로 필자는 간주한다.
아이들에게 일년에 두 번 정도는, 즉 설날과 추석에는 반드시 가족들에게 모여 화기애애한 혈육의 정을 나누어야 하고 조상까지는 안 가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거나 기도로 모임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1993년 이민 왔을 때는 교민들이 여기서 성묘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적지 않은 교민들이 가족 단위로 성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만큼 세월이 흘러 세대 교체를 하고 있다는 진리일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명절 때가 되면 당연히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새 신을 신고 큰집에 차례 지내러 가는 추억이 새롬 새롬 머리 속에 맴돈다.  큰집에서는 차례 준비를 하느라 큰엄마 작은 엄마들이 부엌에서 분주하고 맛있는 녹두전 부칠 때 나는 냄새가 지금도 침을 삼키게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명절 차례 행사에 불참한 가족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족간에 멀어져 가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차례에 참석한 한 친척은 성경책을 손에 들고 조상에게 절 하는 것을 거부하여 분위기가 어색했던 기억도 난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두고 기독교인들은 조상들에게 절하는 것을 금기 시 하고 있다는 말에 큰 아버님은 “아니 설날에 부모에게 세배하는 것과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 무엇이 크게 다르냐”고 큰소리가 난 기억도 나고 결국은 ‘그럴려면 조상들이 화를 낼 것이고 부정 타니 오지 말라”고 한 사건도 있었다.

똑 같은 하나님을 모시며 똑 같은 성경을 바이블로 공부하는 천주교인들은 기독교인들과는 다르게 조상에게 절을 하며 차례를 지낸다니 주목해 볼만한 사안이다. 

필자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1930년대까지 천주교는 죽은 이 앞에서 절을 하고 그들을 섬기는 조상 제사를 미신 행위로 여겨서 제사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선조들을 공경하는 민족적 풍습인 제사가 과연 교리에 어긋나는가라는 의문이 일어나자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에 “제사 의식은 그 나라 민속일 뿐,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는 훈령을 내려 제사에 관한 교리를 정리했다. 이 때부터 천주교는 제사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존경을 표현하는 민속적 예식으로 인식하고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제사 절차상 조상에 대한 효심이 지나쳐 미신적인 요소로 변질된 부분이라든지, 하느님만을 섬기는 천주교의 교리에 걸맞지 않게 생각되는 행위는 금지된다. 천주교의 명절 미사는 가톨릭 전례와 한국인의 전통 제례가 합쳐진 모습을 보여준다.   설이나 한가위 등의 명절에는 본당 공동체가 미사 전이나 후에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조상에게 대한 효성, 추모의 공동 의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알려준다. 

차례 때문에 가정의 불화와 화목을 해치는 문제가 있을 시 천주교에서는 교통정리를 해 주는 교황이 있다면, 기독교에서는 누가 있는가? 죽은 사람은 우상이고 절하면 안 된다는데 그러면 전 세계에 설치되어 있는 동상들은 무엇이며, 특히 뉴질랜드에서 매년 7월27일 한국전쟁 정전 기념식에서 바위를 보고 거수경례를 하는 참전 용사들의 거룩한 예의는 무엇인가.
기독교 지도자로 누가 기독교인들에게 ‘조상에게 절하면 안된다’고 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필자는 기독교인인데 60세 중반을 치 달으면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아 더욱 많은 가르침이 필요한 소인임을 인정한다.   다만 근거없는 아집과 편견은 불화를 낳고 합리적 사고는 화해와 이해력을 도모하여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떨치지 못한다.
우리 민족의 커다란 명절인 추석을 보름 남긴 지금, 뉴질랜드 밤하늘에는 그럴듯한 보름달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끊임없이 내려대는 빗줄기가 걷힌 오늘 밤, 남십자성 하늘아래 필자가 쳐다보는 보름달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이를 보는 순간 울컥한 마음으로 향수에 젖는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옛날 한국에서 겪었던 잊지 못할 나만의 추억에 잠겨보는 시간을 갖다 보니 오히려 행복한 마음에 미소가 나온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조상들이 말했다는 풍족하면서도 흐믓한 마음을 금년에도 한껏 맛 보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입을 벌려 웃고 싶다.  

우리는 곧 보름달이 뜨는 추석을 맞이할 것이다. 기다려 진다. 
추석 명절이 오면 날씨도 풀릴 것이고 화창한 여름으로 건너뛰는 가을이 되기 때문이다.  
추석 명절이 오면 멀리 사는 형제나 자식들이, 찾아 올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석 명절이 오면 그냥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앤돌핀이 다시 돌아 새로운 마음 가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달을 쳐다보면서 여인들이 출산을 기원하고 농부들이 풍년을 감사해 했듯이, 가족의 평화와 함께 지금껏 고생해 왔던 이민생활이 다소라도 윤택해지고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유종옥 / Senior Consultant
전 한국신문 발행인 (johnyoo54@hotmail.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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