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만나요

손바닥소설


 

금요일에 만나요

일요시사 0 1148
학교 앞 문방구 안쪽으로 놓여진 길다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먹던 달콤한 떡볶이며 튀김들이 아직까지도 내 미각을 간지럽히는 건 아마도 그 시절의 이야기들과 맞물려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얀색 깃을 빳빳하게 세우고 남들 앞에서는 한없이 도도한 척 내숭을 떨다가도  친구들과 얼굴만 마주쳐도 웃음꽃이 피어나던 사춘기 여학생이 떠오르기도 하고, 대학 새내기 시절 미팅에 소개팅에 하루를 멀다하고 드나들던 종로의 분식집들에서 만났던 그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사람, 사람들……  내 추억속에 그 골목길은 참 정겹고 좋았었는데…..  이렇게 그리운 것도 하나 둘, 잊혀져 가는 것도 더하기 셋 넷….   오늘 만나는 팟타이 아줌마는 먼훗날 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지하 주차장에서 부터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를 총총 뛰어오는 한국 아가씨를 보니      금요일이 돌아왔구나…..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은 것 처럼 새삼 스럽다. 언제나 처럼 이쑤시개 3통을 사가지고 바삐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일주일을 마무리 할 시간이 다가오는 금요일 오후, 한국에서 였다면 불금을 위해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이 시간 쯤 난 언제나 처럼 똑같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금요일에 만나는 손님은 여느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천천히 걷는 사람이 없고 모두들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오고 또 급히 뛰어 내려가는 사람들… 나이트 마켓 사람들이다. 

일주일에 한번 이곳을 찾아와 고소한 기름 냄새를 가득 풍기고 활기찬 에너지를 몰고오는 그들을 만나면서 난 금요일을 보내고 또 새로운 일주일을 맞이 할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아가씨가 뛰어 내려간 뒤로 타일랜드 아줌마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들어온다. 일주일동안 잘 지냈냐는 인사를 걸걸한 목소리로 건네면서…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얼굴로, 후덕한 미소로 찾아오는 그녀가 난 참 좋다. 
일회용 장갑, 행주, 수세미 등등 주방용품들을 사가지고 가는 그녀의 야시장 주방은 마치 자신의 주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집에서 쓰는 프라이팬, 국자, 그릇들이 그대로 야시장 한가운데로 자리를 옯긴 것같이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이 그녀와 닮아 있었다. 
그녀가 만든 팟타이도 그녀를 닮아 소박한 맛이다. 타이 레스토랑에서 파는 정통 팟타이가 아니라 그냥 가정 주부가 집에서 뚝딱 만들어 주는 그런 모양과 맛이다. 내가 가면 치킨도 듬뿍, 부추와 숙주도 넘칠 만큼 담아주는 정 떄문에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일이 허다하지만 난 그래도 감사히 그녀의 정을 가득 담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편으로 드는 생각……  이 하얀 비닐 봉지에 팟타이가 아니라 떡볶이, 튀김, 순대 이런 것들이 담겨져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학교 앞 문방구 안쪽으로 놓여진 길다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먹던 달콤한 떡볶이며 튀김들이 아직까지도 내 미각을 간지럽히는 건 아마도 그 시절의 이야기들과 맞물려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얀색 깃을 빳빳하게 세우고 남들 앞에서는 한없이 도도한 척 내숭을 떨다가도  친구들과 얼굴만 마주쳐도 웃음꽃이 피어나던 사춘기 여학생이 떠오르기도 하고, 대학 새내기 시절 미팅에 소개팅에 하루를 멀다하고 드나들던 종로의 분식집들에서 만났던 그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사람, 사람들……  내 추억속에 그 골목길은 참 정겹고 좋았었는데…..

<한끼줍쇼> 라는 프로그램은 이경규, 강호동이 게스트와 함께 어느 동네에 불쑥 찾아가 저녁 한끼를 함께 하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뭐 이런 방송이 있나 싶게 별 흥미를 못 느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난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나름으로의 방식으로 그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정릉의 어느 골목길이 이렇게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바뀌었구나….혜화동의 저 골목은 그대로 있네…  대학로 저 공연장에서 본 뮤지컬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거리는 전혀 알 수 없는 외국같이 느껴지는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그대로 남아있어 줘서 고맙고, 더 넓고 예쁘게 바뀌고 발전해서 신기한 마음에 방송을 다시 보게 되는 애청자가 되었다. 
이렇게 그리운 것도 하나 둘, 잊혀져 가는 것도 더하기 셋 넷….
오늘 만나는 팟타이 아줌마는 먼훗날 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내 인생 최고로 우울한 순간, 최고로 열심히 살았던 지금을 기억하면서 그리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수현  Almaz33@naver.com
한국에선 방송작가로 활동했고 현재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한 가운데서 그들과의 만남을 즐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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