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2)] 엄마의 옷가지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2)] 엄마의 옷가지

일요시사 0 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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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니 살갗에 와 닿는 공기가 차다. 이제 뉴질랜드의 여름이 슬슬 가려나 보다. 우리 집의 구조는 침실, 옷 방, 화장실이 연결되어있다. 화장실을 가려고 옷 방을 지나는 데 꿉꿉한 냄새가 난다. 부모님 계신 집에서 나던 장작 때는 냄새다.

 한국에서 부모님의 옷장 정리를 하다가 내가 입을 만한 옷을 몇 벌 골라서 가져왔다. 얇은 옷들은 빨고 두꺼운 옷가지는 햇볕에 한번 살짝 데쳐서 옷장에 걸었다. 옷 안에 배어있던 냄새가 다 빠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모님 집에서 옷을 가져왔다고 하면 역시 “딸들은 도둑년이야. 시집을 가도 친정에만 오면 싹 다 가져가”라고 추측하기 쉽다. 그러나 나도 할 말이 많다. 

 

 20년 전 이민을 결정할 때는 나와 남편, 아이들의 앞날만 생각했다. 뉴질랜드에 와서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어느 날 문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올해 부모님 연세가 팔십.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가슴을 훅치고 올라왔다. 

 남편에게 내 마음을 충분히 설명하고 2주 동안 부모님 댁에서만 머물렀다. 그전에는 시댁이 늘 먼저였다. 시댁 식구에 대한 지명방어전을 끝마치고 동창,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고 나면 친정 부모님 집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이 삼 일밖에 안 되었다. 외국에 사는 딸은 그저 몇 해에 한 번 며칠 손님처럼 왔다 갔다. ‘이번에는 좀 길게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맛있는 음식도 해드리고 좋은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부모님과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함께 살았다. 대학교를 서울로 진학하고 직장을 얻고 바로 결혼을 했다. 이민 오기 전에도 명절 때나 잠시 얼굴을 뵈었다. 거의 30년 만의 동거는 절대 쉽지 않았다. ‘효도’를 하고 싶어 하는 내게 부모님은 협조해 주지 않았다. 힘들게 일어서는 엄마를 옆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스웨터와 바지 사이로 삐져나온 속옷이 좀 이상하다. 엄마가 아빠의 속옷을 입고 있다. 엄마는 수줍게 웃는다.

 “그냥 편해서.”

 밥을 먹다가 보게 된 아빠의 옷깃 사이 러닝이 낡아서 올이 많이 풀려 있다. 

 “러닝 새것 없어?” 

 말투는 어느새 반말 반 존댓말 반으로 변해있다. 내가 부모님보다 세상을 훨씬 많이 안다고 생각하던 대학생 때 부모님에게 쓰던 말투가 다시 나온다. 

 부모님 방에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옷이 너무 많았다. 그 많은 옷 사이에 여동생이 보낸 속옷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있다. 비늘 포장지를 일부러 소리 나게 찢었다. 스티커 상표도 하나하나 손톱으로 후비어 파냈다. 

 “왜 이러고 살아….”

 팬티는 팬티대로 러닝은 러닝대로 아빠, 엄마 서랍에 나누어 정리했다. 딸애들이 어렸을 때 옷장을 정리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느낌이 묘했다. 낡은 속옷은 부모님께 여쭤보지도 않고 버렸다.

 처음에는 속옷만 정리하려고 했는데 일이 점점 커졌다. 외출을 한번 하려고 하면 엄마는 원하는 옷을 쉽게 찾지 못했다. 결국, 같은 옷만 입으셨다. 

 

 나의 옷장 정리법. ‘2년 원칙’을 사용했다. 2년 동안 안 입은 옷은 무조건 재활용 통에 넣는다. 2년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주워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옷을 옷장에 묵혀두기보다 그래도 쓸만할 때 재활용 통에 넣어야 다른 사람이라도 잘 입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옷 입은 적 있어?”

 “아니…. 그거 네가 첫 봉급 타고 사준 옷이잖아.”

 30년 전 옷이다.

 “아, 그거…. 아버지 정년으로 퇴임할 때 받은 거야.”

 20년 전 옷이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한 번이라도 입었냐고?”

 목소리가 앙칼지다. 엄마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힘이 없어진다. 인민재판이라도 하듯이 분위기는 살벌하다.

 “그거 비싼 거야. 몇 번 안 입었어. 새 거라고.”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절박해진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엄마 목소리 톤이 살짝 밝아진다.

 “너 입을래? 이거 브랜드야.”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래, 뉴질랜드에 가져가서 입을게. 나 줘.”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그렇게 해서 주섬주섬 챙긴 옷이 다섯 상자가 넘는다. 엄마는 아까워서 한 번도 옷을 버린 적이 없다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도저히 다 가져올 수는 없었다. 엄마 몰래 세 상자는 재활용 통에 넣고 두 상자만 뉴질랜드로 부쳤다.

 

 두 달 뒤 뉴질랜드에 옷이 잘 도착했다고 한국에 전화했다. 

 “그래. 그거 지인짜 좋은 거야. 네가 가져가서 잘 입으면 나도 얼마나 좋니.”

 엄마 목소리가 밝으니 나도 기분이 좋다.

 나는 엄마에 견줘 키도 조금 크고 살집도 있다. 엄마의 바지는 나에게 껑충하니 짧다. 윗도리도 겨드랑이가 끼어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엄마의 옷은 전부 검은색, 회색 아니면 하얀색이다. 나는 밝은 파랑이나 보라가 어울린다. 옷 스타일도 뭐라고 딱 꼬집어서 설명은 못 하지만 한국과 뉴질랜드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가져온 엄마의 옷을 얼마나 자주 입게 될지 모르겠다. 아마 옷장에 계속 걸려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2년 뒤 이 옷들을 한 번도 안 입었다고 쉽게 재활용 통에 넣지는 못할 것 같다.

 

필명: 아보카도 나무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SISA님에 의해 2018-07-02 20:55:22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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