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13)] “너 이름은 뭐예요?”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13)] “너 이름은 뭐예요?”

일요시사 0 2081

 <사진: 김인식> 

 

 꼬맹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아무런 의심 없이 사람을 쳐다보는 눈과 꾸미지 않는 모습이 좋다. 그뿐만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생각에 맞장구칠 때는 재미있다.

  사월 말이었다. 마이랑이 베이에 있는 유치원을 지날 때였다. 울타리 옆에서 놀고 있는 여러 명의 동양 아이들을 봤다. 순간 한국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녕”하고 다가섰다. 아무런 대꾸가 없기에 다시 걸었다. 대여섯 발자국을 옮기는데 뒤에서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안녕”하면서 아이들 옆으로 다가갔다. “유치원에 다니는 게 재밌니?”라고 물었다. 재미있다는 대답과 함께 이름과 나이를 알려준다. 다들 영어로 된 이름이다. 다섯 살이라고 하는데 서너 살 정도로 보인다. 다들 손자뻘이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한 아이는 예전에는 김치를 물에 씻어 먹었다고 자랑스럽게 알려준다. “지금도 먹니?”하니까 안 먹는다고 한다. 또 다른 아이는 들고 있는 인형의 이름도 알려준다. 한국 이름이다.

  유치원 선생님이 궁금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무슨 얘기를 하느냐고 묻는다.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대충 설명해줬다. 그들에게 “바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한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너 이름은 뭐예요?”라고 묻는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내 이름은 인화에요”라고 알려줬다.

 다섯 살짜리 아이한테 너 이름이 뭐냐고 들었는데도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What is your name?”을 한국말로 하면 “너 이름은 뭐예요?”가 되잖아 하며 웃는다.

  윈저 파크를 향해 걸어가는데 내 이름을 묻던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아이에게 알려줬던 이름을 되새긴다. 그러다가 ‘내 이름값은 하나?’라고 자신에게 묻는다.

 

  아버지가 내 이름의 뜻을 설명해 준 기억이 없다. 그냥 인화의 ‘화’가 돌림자라고만 알려줬다. 우리 형제들은 선화를 위시해 영화, 인화, 경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이 여자다. 분명히 아버지는 이름 짓는 사람에게 자식들의 생년월일을 알려주며 사주에 맞게 지었을 거다. 어릴 때 다른 사람들이 여자 이름이라 생각하는 내 이름이 싫었다. 물론 그런 이름을 준 아버지도 원망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성은 다르지만 똑같은 이름을 가진 학생을 만났다. 그때부터 인화라는 이름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다. 얼마 전 구글에 들어가 내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전라남도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정인화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사는 남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외롭지 않다. 그들은 주어진 이름대로 잘살고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작명가들은 이름을 지을 때 몇 가지를 고려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뜻이 좋으면서 부르기 쉬어야 한다. 평생 들어야 하니 싫증 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남이 기억하기 쉽고 의미 있는 멋진 이름이면 더 낫다고 했다.

  좋은 이름을 주면 이름값을 한다고 들었다. 나는 이름의 뜻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이름값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이름값도 못 한다는 소리를 시골에 계신 친척 어른들한테 듣긴 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잘못했다 하니까 시무룩한 표정으로 마루에 걸터앉곤 했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은 ‘주둥이만 튀어나와서’란 말을 덤으로 던지면서 혀를 찼다. 그럴 때마다 키만 큰 소년의 가슴은 아팠고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중학교 때였나. 한문 시간에 내 이름의 ‘인’은 동방 또는 범을 뜻하고 ‘화’는 온화하고 화목하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범 즉 호랑이 같은 성격이나 특징은 없으니까 동방 인(寅)자와 화할 화(和)자를 이용해 뜻풀이하자고 생각했다. 여러 번의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동방에서 태어난 정(鄭)이라는 성을 가진 사내가 세상을 온화하고 화목하게 하는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자’ 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든 이름 뜻대로 살지 못했다.

 키위들이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렵다 해서 영어로 된 이름을 고려해 봤다. 편히 살고 싶은 마음에 존(John)을 생각해 봤다. 존 정(John Jung)을 몇 번 부르다 보니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어준 인화가 가장 낯익고 편해 계속 쓰기로 했다. 나중에 존의 뜻이 ‘신에게 사랑받는 자’라고 들었다. 나에게는 신에게 사랑을 받는 거 보다 아버지의 사랑이 더 중요했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을 때 나름 불안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름을 바꿀까도 생각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심리이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내 이름이 인생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름대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타고난 사주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름은 후천운을 열어 준다고 했다. 아버지가 지어주고 내가 만들어 낸 뜻대로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더니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다.

   

  다음에 마이랑이 베이를 갈 일이 있으면 그 유치원에 들러야겠다. 지난번에 보았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또 “안녕”하며 다가설 거다. 내 이름은 인화라고 알려줘야지. 그리고 “너의 이름은 뭐니?”라는 말도 꼭 해야겠다.

글_정인화 

 

[글쓰는 사람들]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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