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Takapuna Grammar School에 재학중인 13학년 오의찬입니다. 2002년 3월, 저는 처음으로 뉴질랜드 땅을 밟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과 맞춰 뉴질랜드로 이민 오기로 결심한 저희 가족은 그렇게 한국을 떠나 낯선 땅으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뉴질랜드와 한국을 오갔던 시간 동안 많은 경험도 하고 어려움도 겪었지만, 뉴질랜드에서 수학하는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2년전에 고등학교를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자주 이사를 하면서 전학의 경험이 많았기에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두려움은 없었지만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전학이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이라는 국제 고등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12학년 초에, 기존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국제고등과정을 이수함으로써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을 기르고 국제적인 관점으로 시야를 넓히고 싶은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IB는 기존의 학교에서 이수했던 뉴질랜드 고등학교 과정 NCEA와 달라 낯을 가리는 것 같이 어렵고 생소했습니다.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주변의 걱정도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 낯섦을 포용하고 공부를 하는 과정은 힘들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제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끈기와 노력의 힘을 되새기며 저 자신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고 그에 비례하여 제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이 커질 수 있었습니다.
2012년 봄, 저는 한국학교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만으로 15살 어린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었으며 돌봐 주었습니다.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본인의 시간과 열성을 쓰는 일이야 말로 주체적 봉사활동이라면, 저는 이 때 제 삶의 첫 주체적 봉사활동을 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제가 현지 생활을 오래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현지인들의 습관적 기부문화였습니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이러한 재능 기부를 통해 자신이 좋은 일도 하면서 자기계발을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저도 뉴질랜드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갖가지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소통의 힘이었습니다. 학교 후배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한국학교>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무용 부 아이들이 무용하는 것을 돕고 YMCA의 Holiday Programme에서 어린 아이들과 놀이를 하면서 어울리고 Compassion Korea를 통해 편지를 번역하는 일 등을 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고 여러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의 장점이었습니다. 언어를 여럿 할 수 있다는 점은 저의 봉사활동의 폭을 넓혀주었고 또 봉사활동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2002년 초, 만으로 5살때 처음 오클랜드 한국학교에 입학한 저는 2005년 초에 잠시 한국을 가게 되어 한국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살 때 한국학교 도우미로 한국학교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토요일 무용 반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벌써 2년 넘게 코끼리반의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저에게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기간 중 가장 큰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활동을 꼽으라면 단연 학교 신문을 창간하는 일이었다고 말할 것 입니다. 학교 신문을 창간하고 싶다는 목표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국제 사면 위원회의 한 일원으로서 억압받고 평등하지 못한 위치에서 살고 있는 분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 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저는 학교 선생님과 함께 학교의 학생들이 쓰고 볼 수 있는 학생 신문을 창설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첫 도전이었던 만큼 원했던 학생신문 창간의 목표는 난관에 부딪혀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재학 중인 학교에 전학을 와서도 학교 신문 창간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 결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 몇과 성심 성의껏 도와주시는 선생님을 만나 학교 신문을 창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한테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에 비로소 현실화된 학교 신문 창간의 꿈은 많은 노력과 인내를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듯이, 평소에 미디어와 신문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작년에 청소년 국회에서 청소년 기자단으로 선발되어 청소년 국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사회 곳곳에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작년 청소년 국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내년에 오클랜드 법학대학과 상경대학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저의 단기적인 목표는 오클랜드 법대와 상대에 진학해 전문 지식을 쌓아 시야를 넓히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사람과 사회가 중심이 될 수 있는 르포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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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의찬 학생 장학생 수상 소감
제11기 한국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은 저에게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일시적인 축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뉴질랜드 내의 한국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기쁘게 다가왔습니다.
한국학교에서 도우미 선생님으로 봉사하고 이번 한국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과정에서 저는 뉴질랜드에서 자라온 젊은 한국인으로서의 역할이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기도 했고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연구해 보았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저는 빗자루를 든 청소부와 같은 존재가 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항상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청소하여 제가 다녀갔던 그 길을 저의 동생들이 걷기 시작할 때 즈음에는 조금 덜 고단하고, 조금 덜 어렵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 저도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의 노력과 그 속에서 얻어진 경험 덕을 보았을 것이고 저도 이제 그 선배들에게 받은 가르침과 도움을 저보다 어린 친구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잘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크게 다가오는 정체성에 관한 혼란스러움 그리고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은 소속감의 결여 때문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저의 후배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것이 한국학교 장학생의 의무인 것 같습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르포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 차갑지 않게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평가 받지 않는 따뜻한 필체로 담아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 간다 하더라도 저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에서 자라온 모든 한국인들이 저희가 한국인이고, 또 뉴질랜드에서 자라온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저희의 가장 멋진 형용구라 여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