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년간 Pansy Wong 장관과 Murray McCully 장관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교민들 사이에서는‘청소년 진로 상담사’로 활약하였던 이준영씨. 이제 그는 국선변호사로 전업해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뉴질랜드에 정착하게 된 그는 이민사회에서도 솔선수범하고 진취적인 청년으로 손꼽히고 있다.
어릴 적 자신이 격어왔던 혹은 주변에서 봐오던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젤 큰 걱정거리인 진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청소년 진로 정보의 날’을 주최해 오던 그가 올해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하여 이번 달의 시사 인터뷰 주인공 ‘진로 정보의 날’ 오프닝편 으로 그를 결정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일요 시사에서 만나 본 그는 끈임없이 발전해 나가고 자신의 미래를 책임있게 짊어 나가는 청년임을 알 수 있었다.
Q. Pansy Wong 외교부 장관과 Murray McCully 장관의 보좌관으로 활동하시다가 국선변호사로 이직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주력하고 계신 일과 근황을 알려주세요.
저는 지난 2년동안 Pansy Wong 장관과 Murray McCully 장관의 지역구 보좌관으로 근무했고, 작년 7월에 Public Defence Service에서 국선변호사로 이직했습니다.
Public Defence Service 는 정부기관으로 국선변호사 약 40여명이 오클랜드 시내, 마누카우, 와이타케레, 노스쇼어에서 근무하고 있고, 저는 노스쇼어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노스쇼어 법정에서 형사법(Criminal) 피고측 국선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로 형법관련 업무를 하고 구체적으로는 음주운전, 폭력, 마약, 절도, 사기 등의 형법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Public Defence Service는 개인 클라이언트한테서는 의뢰를 받을수 없고, 형사고발에 스스로 변호할 재정적 조건이 되지 않는 피고인들만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및 목요일은 노스쇼어 법정에서 당직 국선변호사(duty lawyer) 근무도 하고 있습니다. 당직변호사는 법정에 변호사 없이 출두한 피고인들을 그 당일만 변호해주는 일을 합니다.
Q. 보좌관을 그만두시고 국선변호사로 이직 결정 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새 출발을 하게 되신 이유가 있다면?
저는 2007년에 오클랜드 대학교 법학과/컴퓨터 과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 임명도 2008년에 받았기에 언젠가는 변호사로 이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좌관으로 2년간 근무하면서 뉴질랜드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배웠다고 생각했기에 쉽게 이직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피고측 변호사는 매일 문제가 있는 피고들과 법정에서 지내기 때문에 현재 뉴질랜드의 큰 문제인 범죄문제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현 직업을 통해 뉴질랜드의 교육 부족 문제가 범죄자를 양성난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 문제 해결에 더욱 공헌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당직 국선변호사 자격증은 작년 초에 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취득하였고, 6월쯤에 Public Defence Service에서 자리가 난 것을 보고 지원하여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Q. 대학 졸업 후 보좌관이 되신 계기가 있었나요? 본래 정치에도 관심을 두고 계셨는지요.
보좌관이 된 계기는 변호사 연수 시절 뉴질랜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 Pansy Wong 국회의원의 보좌관 자리를 오퍼 받게 되면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뉴질랜드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당시 뉴질랜드의 교육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뉴질랜드 교육 개혁에 공헌을 해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은 교육열이 너무 높지만, 그에 비해 뉴질랜드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조금 더 교육열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 후 뉴질랜드를 떠나고 있고, 남아 있는 학생들의 교육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데다가 이로 인해 경제 발전이 더딘 것으로 판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좋지 않으니 대학졸업생들에게 높은 연봉을 오퍼할 수 없고, 그 결과로 더 많은 인재들이 떠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많은 대학교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를 떠나 더 높은 연봉을 쫓아 미국이나 한국으로 들어갈 생각도 있었지만 뉴질랜드에서 만족스럽게 자랐고 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에 공헌하고자 이러한 커리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로 Pansy Wong 장관의 보좌관으로 있는 동안 ‘고등학생들을 위한 진로 정보의 날’행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Murray McCully 장관의 지역구 보좌관을 지내면서도 계속하여 이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Q. '고교생을 위한 진로 정보의 날'은 어떤 의미의 행사인가요? 그리고 올해 (지난 금요일)에 주최되었던 행사에서 준비하셨던 과정 중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요?
진로 정보의 날은 뉴질랜드에서 교육을 받은 20대의 청년들이 자신의 직업 분야에 대한 정보를 솔직하게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알려주는 비영리 목적의 무료 행사입니다.
각 강연자는 5분안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장단점, 연봉, 라이프 스타일, 어떤 이들에게 맞는 직업인지, 추후 커리어 등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때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전해주는 행사입니다.
현재까지 변호사, 의사, 경찰, 고등학생 교사, 자동차 판매원, 은행원, 회계사, 요리사, 스튜어디스, 약사, 치과의사, 호텔 매니저, 인테리어 디자이너, 간호사, 카이로프랙터, IT 컨설턴트, 토목기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영어 강사, 의상 디자이너, 건축사, 음악 치료사 등 다양한 직업에서 종사하는 이민1.5세/유학 출신 20대 청년들이 강연하였습니다. 행사 이후에는 더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어 제 개인 연락처도 제공하였습니다.
진로 정보의 날은 2008년 오클랜드에서 처음으로 시작했고, 2009년에는 오클랜드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행사를 하였습니다. 작년엔 인원 수가 적어 시행되지 못했지만 올해 2011년에 열린 행사에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으로 무사히 잘 끝마쳤습니다.
그러나 올해 진로 정보의 날 준비중에 가장 어려웠던 것 중에 하나는 도네이션 모금이였습니다. 교민 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 도네이션을 받는 것이 어려웠지만, 다행이도 예전 강연자들도 도네이션을 하고 꾸준히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히도 행사 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올해는 총 18명의 강연자가 참여하여, 많은 강연자들과 서로 정보를 나눠야 하는 데 모두 바쁘다 보니 서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Q. '진로의 정보의 날로인해 고교생들에게 가르키고자 하는 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리고자 하는게 있는지요?
아직까지도 너무 많은 고교생들이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삶을 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현재 선택한 5-7가지의 과목 내에 자신의 미래를 제한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행사를 통해서 “고등학생 때는 ‘너무 늦었다’ 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을 인식 시켜주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학교 점수가 잘 안나온다고 낙심하고, 지금 영어가 안된다고 더 높은 학위를 쫓아가지 않고, 자신이 현재 공부하고 있는 과목이랑 관련이 없다고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아 놓지는 다양한 미래 가능성 등 안타까운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고등학생 때에는 말 그대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 어떠한 미래도 꿈꾸고 현실화 시킬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인식 시켜 주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면 더 큰 목표도 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 꿈과 희망이 있으면 자신 인생에 진정한 밑거름이 될 10대를 대충 살지 않고,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번 행사에서 중요하게 학생들에게 알려주고픈 것은 유학생들은 영주권도 염두에 두고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유학생들이 전공을 살리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영주권을 취득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예: 일본어/중국어 전공) 유학생들은 뉴질랜드에서 비싼 학비 내면서 지내는데 그래도 되도록이면 영주권이 나올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여 뉴질랜드에도 기여하고 본인에게도 좋고 부모님께도 효도하는 유학생들이 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최대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인생 설계도를 그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를 향해서 건설적으로 달려가는 것과 목표 없이 달리다가 도착한 곳을 목표라고 합리화시키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자신의 10년 후에 모습을 그려보고, 그에 맞추어 열심히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과외 활동도 하다 보면 자신의 목표를 초월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공부하는 것은 잠시지만 공부 이후 자신이 살아야 하는 삶은 평생입니다. 조금 힘들 수 있어도 힘을 내어 열심히 공부하면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학창시절 때는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을 명심하고 “나라고 성공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Q..이준영씨께서는 어느정도 꿈을 이룬 분들도 많이 만났을텐데요. 이준영님이 그동안 보시면서 느끼신 개인적으로성공에 대한 의미를 정의 해주신다면?
저는 이 행사를 2008년도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성공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습니다. 죽기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봤을 때 웃으며 후회없이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성공일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만 봐도 고등학교 때 더 공부를 열심히 할껄, 혹은 더 열심히 놀아볼껄 하고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모두가 후회하지 않을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고, 공부해보고, 놀아보고, 일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Q..이준영님 생각하시는 지금 자신의현재의 모습과 꿈을 위해 달려온 과거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신다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기억해보면, 아마도 기회가 되는 모든 것들을 시도해봤던 것 같습니다. 10대 20대는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고 즐기면서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싶고, 계속해서 끝없이 도전하고 즐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혼자만 즐거운 것 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만족스럽고 즐거운 삶을 같이 살아나가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곳 교민들에게 인사나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현재 해외동포 숫자가 약 70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타 국가들은 이민역사가 길기때문에 한인이더라도 한국어를 못하는 이민 2, 3세가 많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이민 역사가 짧은데다가 국제화된 시대에 인터넷 및 비교적 저렴한 항공료로 인해 1.5세대 2세대들이 한국어를 잊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민분들은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고 한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여 한국과 뉴질랜드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1.5세대와 2세대들이 자랑스럽게 자라나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사랑을 보답할 수 있게 계속해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진로정보의 날에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고,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관심과 사랑으로 격려하여 같이 꿈을 키워주셨으면 합니다.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021 410 884나 nz84joon@hotmail.com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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