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사 리 의원님과 교민들이 보다 가까이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 만들고 싶다.”
뉴질랜드의 유일한 한국계 국회의원인 멜리사 리 의원을 곁에서 보필하는 조정현 보좌관은 방송인 출신이다. UBC 울산방송을 시작으로 PSB(현 KNN), 서울 MBC, TBN 부산 교통방송, 부산 KBS, UBC Green FM 등의 방송국에서 다수의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도 방송 활동을 이어갔다. TBN 부산 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라는 심야 올드팝 프로그램 진행 당시에는 팬카페가 생길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조 보좌관은 당시를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때’로 꼽는다.
그런 그가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때, 제2의 서막을 열었다. 평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교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우연히 국회의원 멜리사 리 의원실 보좌관 모집 공고를 보게 되면서 보좌관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올 3월에 업무를 개시한 조정현 보좌관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기 위해 하루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지만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처럼 설렘과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채용공고에 적혀있던 ‘매일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란 의미 모를 문구가 이제는 확실히 이해가 될 만큼 다채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조용히 제 역할을 수행하는 조정현 보좌관의 각기 다른 하루를 시사인터뷰를 통해 들어보기로 한다.
보좌관 일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친절한 사람들 속에서 지쳐있던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곳에서 교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던 중 한국계 국회의원 멜리사 리 의원실의 보좌관 모집 공고를 보게 되면서 부족함을 뒤로 하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보좌관으로서 처리하고 있는 업무는 어떤 것인지,
처음 구인공고를 보았을 때 매일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보고 매일 다른 하루의 의미가 한번에 와 닿지 않았지만 이제 그 말을 확실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의원실 카카오톡 그룹에 속해 있는 785명의 교민분들과 소통을 합니다. 그룹 내에 있는 모든 분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문의와 응답, 그리고 의견 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지역 사무실에서는 그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을 주로 해결하지만 멜리사 리 의원님의 경우 국민당 내 다민족부 대변인인 관계로 Mt. Albert 지역 주민들의 민원 해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도 많은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뉴스 기사 모니터링을 비롯해서 한국 교민들에게 필요할 만한 주요 기사와 정보를 번역하여 공유하는 일도 하고 있고, 의원님을 다양한 행사에 초청하고자 하는 각 행사 관계자들과 스케줄 조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의원실 내 다른 보좌관들과 협력하여 의원님의 의정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을 뒤로 하고 도전을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첫 출근 당시 느낌과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3월 초 첫 출근을 했으니 이제 9개월정도 되었습니다. 처음 합격 통보를 받고 2박 3일을 앓아 누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놀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보좌관직을 지원했을 때, 설마 내가 합격할 수 있겠나… 도전하는데 의미를 두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원을 했는데, 막상 합격을 하고 나니 스스로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과 나의 부족함이 행여나 의원님의 의정활동에 누가 되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이 밀려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해외에서 일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과연 5선 국회의원의 보좌관직을 수행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첫 출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쳐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긴장감 속에서도 일을 조금씩 즐기기 시작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하루 일과를 더욱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간 보좌관 업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9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분들과 소통을 했습니다. 그 분들 중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해 도움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요. 의원실에서 해결해 드릴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들의 경우 사실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감사인사를 받을 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요. 몇달 전 100세 어르신께 총독과 오클랜드 시장의 생신 축하 카드를 전해드린 일이었습니다. 생신 축하 카드를 미리 신청하면 날짜에 맞춰 어르신께 전달될 거라는 멜리사 리 의원님의 조언을 받고 이를 신청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잘 받았다는 어르신의 감사 인사 말씀을 듣고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00세 생신을 맞이하셨다는 것은 정말 축하를 받을 일이기에 한국이었다면 지역 뉴스에서 다루어졌을 법한 좋은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여러가지 여건상 특별한 축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특별한 축하의 기회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많은 부분에서 정보의 부재로 우리 교민들이 받지 못하고 있는 혜택이나 요구하지 못하고 있는 권리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부분에서 우리 교민 여러분이 소외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뉴질랜드 사회는 어떤 곳입니까.
이민자로서 분명 불편한 점도 아쉬운 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민을 선택하고 이곳에 터를 잡은 이상 잘 극복해서 다음 이민 세대들에게 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기존 교민들이 뉴질랜드 내 한국 사회를 잘 닦아 놓으셨기에 제가 향수병 없이 뉴질랜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저는 정착해가는 과정에 있기에 좋은 점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맑은 공기와 아침을 깨워주는 새들의 노래소리,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깻잎, 파, 부추, 딸기 등 깨끗한 식재료들. 겨울이면 앞마당에 피는 동백꽃과 이맘 때 만날 수 있는 장미, 그리고 향기로운 이름 모를 꽃들과 포후투카와 나무. 이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곳에서 친절하고 소박한 현지인들 또한 저에게는 선물같은 존재들입니다. 저는 이만한 장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일한 한국계 의원님의 보좌관으로서 교민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서 뉴질랜드 유일무이의 한국계 국회의원의 존재만으로도 교민 여러분께 든든한 힘이 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곳에서 성장하고 있는 코리안 키위 꿈나무들에게도 역시 한국계 국회의원은 의미 있는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장하는 어린이들이 멜리사 리 의원님과 보다 가까이서 만나고 소통하며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의원님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듣고 배우고, 또 아이들의 생각과 꿈을 공유하며 앞으로 뉴질랜드를 이끄는 한국계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민자로서 혹은 이민 2세대로서 충분히 주류사회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의 한계없이 끊임없이 성장해 나갈 수 있음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며 현재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에 대해 전해주세요.
한국을 떠나면서 계획없는 삶을 살자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계획을 세우니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않고 너무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계획을 빨리 이루기 위해 싫음을 싫다고 표현하지 못 하고 좋음을 감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무언가 일을 한다는 것이 이유 없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쉼없이 달려왔던 삶에 지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그냥 하루 하루 물 흐르는대로 그러나 주어진 24시간에 충실함을 잃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을 챙기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주어진 일을 하는 것에 부족함이 있으면 그것을 채우기 위한 시간을 가지고, 때론 하늘도 올려다보고 들판도 바라보며 여유를 느끼는 시간에도 소홀함 없이 살고자 합니다.
글 박성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