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에 도전해 이명(耳鳴)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호익과 실버데일에 진료소 운영…교민 어르신 대상 무료 청력 검사도 계획
‘소리를 다스리는 남자.’
청능사 김휘홍을 노스쇼어(North Shore)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토요일 오후, 조금은 바쁜 시간.. 사방에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 사이에 ‘우리 소리’도 섞여 들어갔다.
휘홍을 만나기 전까지 청능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어렴풋이 보청기 같은 것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교민 사회에서 흔한 직업이 아니었고, 내 주위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크고, 박력이 있었다. 어쩌면 귀가 어두운 손님을 상대하느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커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소리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해 토해 내고 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조금은 색다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청능사(Audiologist) 얘기를 들어보자.
대학 졸업장 받고도 진로 정하지 못해
휘홍은 1995년 12월 부모를 따라 이민을 왔다. 그의 나이 열둘,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친 상태였다. 다음 해 노스쇼어에 있는 머레이스 베이 인터(Murrays Bay Intermediate) 2학년(Year 8)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있었다. 키위도 아닌 한국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한 것이다.
“제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끼워주지 않았어요. 나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냥 상대하기가 좀 거북해 그랬을 거예요. 대신 키위 친구를 사귀게 됐어요. 그 덕에 영어 실력이 금방 늘었지요. 칼리지 저학년 때까지 키위 친구랑 놀다가 고학년이 되면서 한국 친구를 많이 만났어요. 저도 피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이었던 거지요.”
랑기토토 칼리지(Rangitoto College)를 거쳐 오클랜드대학 바이오 메디컬 사이언스(Bio Medical Science)과에 입학했다. 3년을 공부해 졸업장까지 받았지만, 진로를 쉽게 정할 수 없었다. 한두 해 더 여러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좀 늦게 ‘오디올로지’(청력학, Audiology)라는 학문을 알게 됐다.
“제가 교회(한우리교회)에서 음향을 맡아 봉사하고 있었어요. 소리의 매력에 빠져 있던 차에 이 학문을 내 직업으로 연계해 일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하얀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서 그 무언가 새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요.”
휘홍은 2008년 오클랜드대학 청력학 석사(Master of Audiology) 과정에 도전했다. 모두 60명이 서류 심사에 합격했고, 12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혀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청능사는 비교적 최근 뉴질랜드에 생긴 직업이다. 오클랜드대학과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있는 캔터베리대학에서 해마다 각각 12명을 모집하고 있다. 전에는 호주 청능사들이 뉴질랜드에 들어와 일을 하곤 했다. 휘홍은 한국인 1호 청능사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인 청능사는 열 명도 안 될 정도로, 한인 사회에서 색다른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십 병원과 그린레인 클리닉에서 근무
그는 졸업 후 어린이 환자들이 있는 스타십 병원(Starship Hospital)과 그 밖의 환자들이 찾아가는 그린레인 클리니컬 센터(Greenlane Clinical Centre)에서 근무했다. ‘소리를 찾아주는 일’, 그게 휘홍의 임무였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여러 이유로 청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돌봐 주었어요. 어르신들이야 노화 과정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제 작은 도움으로 그들이 ‘새(new) 소리’를 얻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제 직업에 자긍심도 가졌고요.”
휘홍은 국립 병원에서 5년 동안 일을 했다. 그 사이 그는 호익(Howick)에 진료소를 하나 냈다. 병원 일을 줄이고, 자기 사업에 나선 것이다. 진료소 이름은 ‘포커스 히어링’(Focus Hearing). 1년 뒤인 2015년 11월, 오클랜드 북쪽에 있는 실버데일(Silverdale)에 한 곳을 더 냈다. 일이 바빠 국립 병원 일은 그만두었다. 사업으로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다.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도움말은 무엇일까?
“먼저 학점이 좋아야 해요. 제가 알기로 전체 평균 점수가 A-는 되어야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어갈 거에요. 입학하기 전에 저 같은 청능사에게 도움말을 먼저 얻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특별히 이 일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봉사에 가까운 일인 만큼 기본적으로 사람 관계가 무난해야 해요. 꼭 청능사로 일하지 않더라도 보청기 회사에 진출할 수도 있어 전망은 좋다고 봐요.”
보청기, 치매 예방에 좋아
휘홍이 지금 주로 하는 일은 보청기 관련 일이다. 자연스럽게 나이 드신 손님이 많다. 한국 어르신들과는 달리 키위 어르신들은 보청기 사용률이 높다. 사회생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서다.
“보청기가 치매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소리가 잘 안 들리면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울증에 걸리게 돼요. 그 결과 치매가 올 수도 있지요. 근육처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안 쓰면 나빠지는 것처럼, 소리도 그렇거든요. 보청기가 그걸 보완해주는 거죠.”
한국 할아버지와 할머니 쪽으로 얘기를 돌렸다.
“보청기가 필요한 때인지를 어떻게 아나요?”
휘홍은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답을 했다.
“검사해 보면 금방 알죠. 나이가 예순이 넘으면 2년마다 한 번은 청력 검사를 해보시라고 말씀드려요. 큰 비용이 드는 게 아니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청력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가 되면 다시 소리를 찾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휘홍이 생각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소리는 ‘락’(즐거울, 樂)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도, 대화도 소리의 일부분이잖아요. 만약 그게 없다면 삶의 기쁨도 줄어들겠죠. 제 일이 그 ‘락’을 계속해서 이어주거나, 다시 찾아주는 거라는 점에서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요.”
소리는 ‘락’,음 악·대화도 소리의 일부
소리는 ‘락’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평소 소리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사는 게 보통 사람의 삶이다. 그런데 만약 자연의 소리를, 새들의 지저귐을, 손주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참 슬픈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휘홍의 일이 뜻이 깊다는 ‘뒤늦은’ 생각을 하게 됐다.
“제 손님 가운데 한 분이 제가 만들어 드린 보청기를 낀 뒤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새 삶을 얻었다’는 말이었어요. 그분이 펑펑 우셨어요. 남의 얘기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신 거예요. 그때만큼 제 직업에 자긍심을 가진 적도 없어요. 앞으로도 소리를 찾아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요.”
휘홍의 앞날 꿈은 무엇일까?
“제 개인 진료소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박사 과정에 도전하고 싶어요. 특별히 이명(耳鳴, Tinnitus) 연구에 관심이 많아요. 생각보다 이쪽 분야에 연구할 게 늘어나고 있어요. 제가 그 한몫을 잘 감당해, 귀 건강을 지키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연재물의 기획 의도 가운데 하나는 1.5세 전문가들이 한인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한인 사회가 더 단단해지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인 사회에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에게 좀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요?”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휘홍의 입에서 답이 금방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노인분들께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했어요. 전에 그분들을 찾아 무료 청력 검사를 해주기도 했는데, 최근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못 했거든요.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노인분들이 많이 계신 곳을 찾아다니며 제가 가진 재능을 기부할 생각이에요. 결코, 비즈니스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신조,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자’
휘홍이 갖고 있는 삶의 신조는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자’다. 적어도 사람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전문가로서, 자기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나아가 자기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힘을 실어주겠다는 신조로 무장되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특하게 느껴졌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생각을 평생 유지해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귀 전문가’ 한테서나 들을 수 있는 ‘색다른’ 정보를 함께 나눈다.
귀지는 될 수 있으면 파지 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귀지가 어느 정도 있어야 벌레를 막는다. 꼭 파내고 싶다면 면봉 대신 귀이개를 사용해라.면봉은 귀지를 안으로 밀어 넣어 더 안 좋다.
동양 사람 귀지는 물기가 적고 바삭바삭하지만 서양 사람 귀지는 유분이 많다. 점액질이라 찐득찐득하다는 말이다. 유전학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청능사 김휘홍.
소리를 다스리는 그가 더 많은 이들에게 새 소리의 기쁨을 선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태초에 말씀(소리)이 계시니라”라는 성경(요한복음) 구절처럼, 휘홍의 일이 ‘소리’를 계속해서 있게 해주는, 그래서 삶의 ‘락’이 쭉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